[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잡초(雜草)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다. 잡초는 생명력이 강하다. 잡초는 일부러 심지 않아도 씨앗이 날아와서 뿌리를 잘 내리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잦은 외침과 지배 계급의 착취로 민중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잡초처럼 잘 살아왔다. 그래서 백성을 뜻하는 다른 말로서 민초(民草)라는 표현이 있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백성을 잡초로 비유한 것이다.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잡초도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 먼저, 잡초의 나쁜 점은 무엇일까? 잡초는 농부에게는 아주 귀찮은 존재다. 텃밭을 가꾸거나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이름도 모르는 온갖 풀이 땅에서 솟아난다. 잡초는 얄밉게도 자라는 속도가 빠르다. 제때 뽑아내지 않으면 잡초는 2주일만 지나면 논밭을 쉽게 점령한다.
논밭에서 잡초를 뽑아내는 것을 ‘김매기’라고 말한다. 전통 벼농사에서는 벼가 자라는 동안에 세 번 정도 김매기를 했다. 처음 김매기를 초벌, 두 번째는 두벌, 세 번째는 세벌이라고 했다. 초벌과 두벌매기는 호미로 매고, 세벌은 손으로 잡초를 뽑아내었다. 김매기는 예방이 중요한데 “상농(上農)은 풀을 보지 않고 김을 매고, 중농(中農)은 풀을 보고야 비로소 김을 매며, 풀을 보고도 김을 매지 않는 것은 하농(下農)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손으로 잡초를 뽑지 않고 제초제를 사용한다. 논농사에서는 제초제를 두 번 사용한다. 모내기를 한 뒤 3~5일 이내에 잡초가 나오기 전에 토양처리 제초제를 한번 뿌린다. 잡초가 이미 난 뒤에 모가 자라서 잎의 수가 3~5개일 때 경엽처리 제초제를 사용한다. 밭작물도 대개는 제초제를 두 번 뿌린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밭작물 재배 시 비닐로 땅을 덮어 잡초 발생을 억제하고 토양 수분을 유지하는 비닐 피복 재배(멀칭: Mulching)농사법이 도입되었다. 비닐로 빛을 차단하면 잡초의 발아와 성장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석유화학 산업의 발달로 비닐 생산이 활발해지자 농가에 이러한 멀칭 농법이 빠르게 확산 했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농업용 비닐은 30만 톤 정도가 소비된다. 이 가운데서 20만 톤 정도는 수거되어 재활용되거나 처리되지만 나머지 10만 톤은 불법 소각되거나 방치되어 대기오염과 토양오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잡초 가운데서 사람들의 먹거리로 이용되는 좋은 잡초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좋은 잡초가 나물이다. 우리나라에는 먹을 수 있는 나물이 400종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나물을 이렇게 많이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내가 평창에 귀촌하여 원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나물이 뜻밖에 많다는 것이다.
달래, 냉이, 씀바귀는 동요 가사에도 나오는 나물이다. 민들레나 쑥을 나물로 먹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추리, 비비추, 엉겅퀴처럼 꽃의 새순을 나물처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대표적인 잡초인 개망초까지도 어린잎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실험 삼아 요리해서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심지어는 두릅나무, 엄나무, 가중나무, 오가피나무, 화살나무, 찔레나무의 새순도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는 나물로 요리해서 먹었다고 한다.
원래 고사리는 독이 있는 식물이다. 우리 조상들은 독성이 있는 고사리 같은 식물도 말리고, 삶고, 물에 우리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안전하고 맛있는 요리로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봄철이 되면 각종의 나물 반찬이 상에 오른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한국의 식탁은 통째로 숲을 옮겨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내가 귀촌하여 살고 있는 평창군 봉평면에는 나물을 연구하는 산채연구소가 있다. 산채연구소는 나물의 명품화를 목적으로 산나물 씨앗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연구하는 곳이다. 1992년에 산채시험장으로 시작하여 2015년에 산채연구소로 승격되었다. 산채연구소에서는 종묘 보급과 품종 육성 말고도 산채의 기능성 성분을 분석하여 의약품과 화장품을 만드는 연구까지도 하고 있다.
잡초를 해로운 식물로 보는 것은 농작물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생태계 전체로 보면 잡초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잡초의 깊은 뿌리는 토양 침식을 막고 영양분을 깊은 지층에서 끌어올려 토양 비옥도를 높인다. 잡초는 곤충, 새, 작은 동물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잡초는 소나 양, 염소 등 가축의 먹이가 되어 인간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잡초들이 사라지면 토양은 황폐해지고 인간의 식탁은 초라해질 것이다.
전라북도 변산에서 공동체 생활을 실천한 철학자 윤구병은 1998년에 《잡초는 없다》라는 책을 펴냈다.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지렁이가 우글거리는 살아 있는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들 가운데 대부분은 잡초가 아니다. 망초도 씀바귀도 쇠비름도 마디풀도 다 나물거리고 약초다... 잡초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에는 세계 유일의 잡초공적비가 있다. 이 공적비는 청옥산 육백 마지기 생태농장의 이해극 씨가 3,000만 원을 들여 2019년에 세웠다. 한국유기농협회 대표인 이해극씨는 30년 동안 유기농 농사를 고집하였다. 그는 농약을 쓰지 않으면서도 성공적인 농사를 가능하게 한 잡초의 고마움을 깨닫고 공적비를 세웠다고 한다.
잡초공적비 앞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태초에 이 땅에 주인으로 태어나 잡초라는 이름으로 짓밟히고, 뽑혀져도 그 질긴 생명력으로 생채기 난 흙을 품고 보듬어 생명에 터전을 치유하는 위대함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우다.” 공적비 뒷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잡초는 지구의 살갗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