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아버지에게 강원도는 애증이 새겨져 있는 지역이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그 시절, 제주도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배속된 곳은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아버지는 강원도지역에 군부대에 보급품을 실어다 주는 일을 하셨다는데, 지금이야 강원도 가는 것이 뭐 그리 힘든 일은 아니겠지만, 1951년 당시 강원도 가는 길이 정비가 된 것도 아니고, 포장된 것도 아닐 테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곳을 보급품 가득 실은 고물 미제트럭을 몰고 다니셨다니,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셨다고 하셨다.
한번은 비가 많이 온 뒤라 길이 무너져 내려서 늘 가던 길을 포기하고 산길을 돌고 돌아 보급품을 전하러 갔더니 이미 부대가 퇴각하고 난 뒤에 도착한 때도 있었다. 시체만 널브러져 있는 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당신의 사촌매형이 일하고 계시던 강원도 산판에 가서 몇 년 일도 하셨고, 칠순이 넘으셔서부터는 강원도 오대산 근처에 살만한 움막을 하나 찾았다 하시면서, 그곳에 가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근처에 병원도 없고 교통도 불편한 그곳에 왜 가려고 하시냐며 어머니와 내가 극구 반대해서 결국 그 소원은 이루지 못하셨지만,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공기 좋은 강원도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전쟁터였던 강원도가 끔찍하지도 않으시냐고 여쭤봤는데도 아버지는 “강원도 바다도 좋고 공기도 좋잖아.” 하시며 못내 아쉬워하셨다. 좀 더 일찍 아버지와의 여행을 계획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내게 짐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