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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가씨와 할 비밀 이야기가 있어요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나도 사장 한번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첫아들을 낳은 뒤 둘째는 생략하려고 했지. 양육비가 많이 들 것 같아서. 그런데 마누라는 애가 하나면 외롭다고 하나 더 낳자고 박박 우기더라고. 그래서 미스 나처럼 예쁜 딸을 기대하면서 둘째 애를 낳았는데 그만 아들 쌍둥이가 나왔지 뭐야. 결국 사장될 꿈은 사라지고 세 녀석 키우기에도 바빠서 허덕이면서 살아가고 있지.”

“그래도 아들 부자니까 부자는 부자네요.” 미스 나가 웃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요점이 바로 거기에 있소. 요즘같이 집값이 비싸서야 20대 신혼부부가 봉급 모아서 언제 집 한 칸 마련하겠소? 요즘 신문에 부동산투기 억제다, 토지 공개념이다, 뭐다 하면서 요란하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은 그저 꿈일 뿐이요. 결혼해서 인생의 황금시기에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입고 싶은 옷 못 입고, 가고 싶은 구경 한번 못 가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오로지 집을 사기 위해 근검절약하는 그들을 보면 가련하기도 하오.”

 

“그래 박 과장님의 연구 결과 묘안이 있습니까?”

“남자와 여자의 결혼 연령에 20년 시차를 두면 됩니다. 자, 들어봐요. 우선 20대 여자는 40대 남자와 결혼하는 겁니다. 남자는 직장생활 20년쯤 했을 테니까 경제적인 안정은 이룩했을 것이고, 그러니 젊은 여자의 물질적 욕망을 만족시켜 주면서 한 20년 즐겁게 사는 것이오. 또 젊은 여자와 사니 밤에도 좋을 것 아니오?”

 

박 과장의 연구 발표는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남자는 60대가 되고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괜히 추하게 오래 살지 말고 적당히 죽는다 이거요. 그러면 여자는 남자의 유산을 물려받고 이른바 ‘돈 많은 40대 과부’가 되지 않겠소. 이 여자는 다시 20대 남자와 결혼하는 거요. 청년은 결혼과 동시에 많은 자금을 확보해서 근사하게 이상과 포부를 실현할 수 있게 되지요. 또 사실 말이지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과 사는 것을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겠소? 그러면서 한 20년 근사하게 살다가 60대가 되어 여자는 적당히 죽고 40대가 된 남자는 다시 20대 처녀와 결혼하고… 악순환의 반대되는 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멋진 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기도 하고 궤변 같기도 하고. 결국 20년 나이 차이를 두고서 남자나 여자나 두 번씩 결혼하게 되면 행복한 세상이 된다는 주장 같은데 술에 취한 김 과장은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 과장의 궤변을 흥미 있게 듣고만 있던 미스 정이 불쑥 말했다.

 

“그러면 애들은 어떻게 되나요?”

“이 세상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내 연구도 바로 그 점이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오. 미스 정은 똑똑해서 더 맘에 드는군.”

박 과장이 아가씨를 껴안으며 말했다.

 

밤이 깊어 가며 술잔은 계속 돌았다. 말이 되는 이야기, 안 되는 이야기, 실없는 Y담 등이 오가는 중에 김 과장이 슬그머니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워 가고 있었다. 평소에도 달변인 박 과장은 술이 들어가면 이야기에 끝이 없다. 아가씨를 기분 좋게 해주면서 술자리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화술이 뛰어나다. 그것도 직장인으로서 실력이라면 실력이다. 아하, 선량한 아내들은 이 시각에도 남편이 사업상 할 수 없이 술을 마시고 있다고 믿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기다리고 있겠지.

 

 

“인제 그만 가시지요. 열두 신데요.”

미스 정과 설왕설래(舌往舌來)를 하고 있는 박 과장에게 김 과장이 말했다.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계산은 제가 할 테니까 박 과장님 먼저 가세요. 나는 이 아가씨와 할 비밀 이야기가 있어요.”

“비밀 이야기가 있다고요?”

“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개인의 비밀은 보장해 주어야지. 지금은 5공이 지나고 6공화국인데, 남의 비밀 도청하다가는 안기부에 끌려가지. 미스 나는 당신이 책임지시오. 그럼, 먼저 가요.”

 

박 과장이 가고 이제 둘만이 남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