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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에 루즈를 안 바르는 여자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룸 안에 둘만이 남게 되자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김 과장은 ‘그냥 갈 걸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감마저도 들었다. 썰렁한 침묵이 잠시 흐르자 김 과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 마주앙 한 병 더 할까?”

“네, 좋아요.”

“안주는 미스 나가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아무거나 시켜.”

“과일 괜찮으세요?”

“그래 좋아.”

 

조금 후 두 개의 술잔이 부딪쳤다. 술이란 이상한 액체라서 남자는 여자와 같이 술을 먹으면 기분 좋게 술술 잘 넘어간다. 반대로 여자 역시 남자와 같이 술을 마시면 잘 넘어갈 것이다. 이성(異性)과 함께 마시는 술은 그래서 사랑의 묘약이라고 말하나 보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저희들 생활이야 뻔하지요. 매일 억지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참, 저번에 약속했던 금연 껌을 사왔지. 보통 껌처럼 씹어 먹으면 화학물질이 입에 남아 담배를 피우면 역겨운 냄새가 나서 담배가 싫어진다고 하더군. 여기 있어. 단번에 담배를 끊기는 힘들 거도 조금씩 줄여가 보도록 노력해 봐.”

 

아가씨는 김 과장을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감사합니다’ 말하며 금연껌을 받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면 솔직해지며 자기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가씨는 대구에서 여상(女商)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어느 회사에 취직했단다. 잘 나가는 중소기업의 경리과에 근무할 때까지만 해도 집에서는 귀한 딸이요,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할 꿈을 간직한 평범한 처녀였다.

 

그러다가, 자세히는 이야기를 안 해서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뭔가 잘못되어, 아마 늑대 같은 직장 상사에게 당한 모양이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에는 내려가지 못하고, 분홍빛 꿈은 깨지고, 이렇게 술 마시는 여자가 되었다고 한다.

 

김 과장이 화제를 돌렸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손님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그때는 술이 잘 받죠.”

“어쩌다 두더지처럼 짓궂은 손님을 만나면?”

“그때는 미꾸라지처럼 피해야죠.”

아가씨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조금 뜸을 들이더니 아가씨가 물었다.

“선생님은 제가 좋으세요?”

“그래. 대단한 미인은 아니지만 마음에 끌리는 아가씨지.”

“저의 어떤 면이 좋으세요?”

“입술에 루즈를 안 발라서 좋지.”

“루즈 안 바르는 여자는 다 좋으세요?”

“일단은 그렇지. 와이셔츠에 루즈가 묻게 되면 집에 가서 야단맞잖아. 그렇지만 미스 나가 좋은 것은 그저 좋지, 꼭 꼬집어서 ‘이게 좋다’라고 말할 수가 없네.”

 

 

술잔이 다시 마주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