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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가씨가 책을 읽는지 내기 합시다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번 찍어도>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두 번째 만남

 

사람이 먹고살 만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개성을 알 수 있다.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재산을 늘리기 위하여 주말이면 부지런히 땅을 보러 다닐 것이다. 돈이 좀 있는 사람은 골프나 스키를 타고, 돈이 없는 사람은 낚시나 등산하러 다닐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교회나 절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한다. 돈도 열정도 없는 사람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인생을 진지하게 배우는 자세로 사는 소수의 사람은 책을 읽는다.

 

책 읽기는 다른 취미에 견줘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며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취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론상 매우 쉽지만 그렇게 쉬운 취미는 아니다. 책을 읽으려면 돈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 책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슨 일로던 세상살이에 바쁜 사람은 책을 읽지 못한다. 바쁘지 않은 사람, 혹은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독서를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일본을 여행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놀라는 것은 지하철에서 모두가 책을 꺼내어 읽는 모습이다. 미국에도 도서관이 많고 또 사람들은 독서를 많이 한다. 서울에서 책방을 경영하는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교양서적은 잘 팔리지 않고, 기껏해야 입시와 관련된 참고서, 자습서 등으로 겨우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얼마 전부터는 책 대여점이 생겨나서 책이 더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최종 학교를 - 고등학교이건 대학이건 - 졸업하면서 책 읽기를 졸업하는 사람이 많다. 책을 꼭 사서 읽지 않더라도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도서관의 절대 수가 부족하다. 통계 자료를 보면 인구 1,000만이 모여 사는 서울시에 공공도서관이 겨우 31개 있을 뿐이다. 이에 견줘, 뉴욕시의 공공도서관은 210개, 동경시가 360개라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임이 틀림없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아가씨에게 《아리랑》 제1권을 읽으라고 말했지만 그녀가 책을 사서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날마다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하는 아가씨들이 소설책은커녕 신문 한 줄이라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다. 김 교수가 술집에서 만난 아가씨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연히 조정래 작가와 고향이 같은 아가씨를 만나서 엉뚱하게 《태백산맥》이 갑자기 튀어나왔을 뿐이다.

 

김 교수는 그 아가씨가 어떻게 행동하려는지 매우 궁금했다. 만일 아가씨가 만에 하나, 《아리랑》을 읽는다면 그것은 놀라운 사건이고 그러한 아가씨라면 계속 만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십중팔구 아가씨는 아리랑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김 교수는 마음속으로 예상하였다. 허나 세상일이 모두 예측한 대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자연 현상에서는 예외가 없지만, 인간사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이란 알 수 없고, 따라서 사람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지 않는가? 오히려 “예상을 깨고 아가씨가 《아리랑》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은근한 바람이 김 교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다음 날, 김 교수는 박 교수와 학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어제 만난 파트너 이야기가 나왔다. 김 교수는 솔직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와 아가씨 사이에 어제 일어났던 약속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박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가 보다.

 

“그래, 김 교수님은 그 아가씨가 책을 읽고 전화할 것 같소?”

“아마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느낌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엉뚱하게 책을 읽으라고 하니까 아가씨가 ‘이상한 사람도 있네’라고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놀라는 표정에 이어서 매우 진지한 표정이 분명히 보였어요.”

“그래요? 내가 보기에는 김 교수님이 취해서 아가씨의 표정을 잘못 읽은 것 같은데.”

“아니요, 분명 그 아가씨는 매우 진지한 표정이었어요. 어찌 보면 매우 심각한 표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고.”

“누구나 착각은 자유니까.”

 

“아닙니다. 분명히 그랬어요. 안 믿어지나요? 그렇다면 심심한데, 우리 내기를 합시다. 만일 그 아가씨가 《아리랑》 제1권을 읽으면 박 교수님이 점심을 사세요. 책을 읽지 않으면 내가 지는 것이고 내가 점심을 사지요.”

“좋습니다. 그런데, 기간을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기간은 넉넉하게 잡고 2개월로 정합시다. 두 달 안에 그 아가씨가 책을 읽으면 내가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확인은 어떻게 합니까?”

“그건 내가 책임지지요. 전화하든지, 만나서 물어보든지, 내가 정직하게 확인할게요.”

“좋습니다. 점심 한 번 얻어먹게 생겼네요.”

“저도 그렇군요. 하여튼 서로 기대하고 기다려 봅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