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근엄한 유학자로 알려진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19살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도를 닦은 일은 유명하거니와 그때 너무나 멋진 경치에 흠뻑 빠져 한 줄에 5자씩 600줄(句)의 장편시를 지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적이 있다. 한자 글자로 3천 자나 되는 엄청난 길이의 이 시에서 율곡은 이런 멋진 산을 세계에 알릴 문인이 없어 금강산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일만 이천의 봉우리가
눈길 닿는 데마다 모두 맑기만 하여라
아지랑이는 휘몰아친 바람에 흩어지고
우뚝한 봉우리는 푸른 허공을 버티었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기쁜데
더구나 산에 다니며 보는 것이랴
흔연히 지팡이를 잡았는데
산길은 다시 끝이 없어라 (중략)
천지 사이에 생겨난 온갖 만물들은
누가 그 자취를 오래 전할 수 있었겠는가
두자미는 동정호에서 시를 썼고
소동파는 적벽부를 지었다
모두가 큰 솜씨의 문장을 빌려 가지고서
훌륭한 이름이 내내 사라지지 않았느니
.... 이이(李珥), 풍악산을 읊다
율곡이 아쉬워한 '천하제일' 금강산이 마침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금강산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의 유산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일요일에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7차 회의에서 북한 측이 신청한 금강산을 세계유산으로 확정했다.
정식 명칭은 '금강산-바다로부터의 다이어몬드산(Mt. Kumgang - Diamond Mountain from the Sea)'이다. 해발 1,638m의 비로봉, 내금강, 외금강 등 자연경관은 물론 표훈사, 정양사, 신계사, 보덕암, 불지암 등 불교 절과 유적을 아우르는 '복합유산'으로 등록이 된 것이다. 2013년 개성역사유적지구 등재 이후 12년 만이고 2004년에 '고구려 고분군'이 등재된 것을 포함하면 북한으로서는 세 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말하자면 율곡이 소원한 우리 문인은 아니지만 세계문화예술기구가 금강산을 인정하고 널리 소개하개 된 것이다.

금강산은 백두산과 함께 한반도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여겨져 왔고 특히 1만 2천봉이라고 일컫는 수많은 봉우리와 기암괴석, 폭포와 연못이 어우러지는 명승으로서 우리들이 세계에 자랑하는 것이기에, 등재가 많이 늦어졌고, 뒤늦게라도 인정을 받은 것을 우리 민족의 처지에서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네스코는 등재 뒤 곧바로 누리집에 이 사실을 영문으로 공지했다.
"금강산- 바다로부터의 다이아몬드 산
금강산은 순백에 가까운 화강암 봉우리들, 깊은 계곡들, 폭포들, 오염되지 않은 생태시스탬, 1,600미터 높이로 우뚝 솟은 것 등 뛰어난 자연미로 오랫동안 칭송되어 온 곳이다. 이 산은 안개와 비 햇빛과 구름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날씨패턴으로 해서 더욱 그 극적인 충격이 커진다. 이 성스러운 산은 산중 불교의 핵심적인 장소로, 그 전통이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적으로는 외금강과 내금강 곳곳에 오래된 암자들, 절들, 탑들, 돌조각들이 멋진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3개의 절이 오늘날에도 살아있어서 주변 풍광과 어우러진 유형, 무형의 유산과 엮어져 오랜 세기 동안 불교도의 수행을 특별하게 잘 증언해 주고 있다."
북한 측이 제출한 이유를 정리해 게시한 것으로 보이는 이 글에서 특별히 절 3개가 지금도 왕성하게 종교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 안에서 종교가 금기시되어 온 것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조목조목 잘 설명해 놓은 것 같다. 금강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앞서 지난 5월에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가 이미 금강산에 대해 등재를 권고한 바 있었다.

초여름 금강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여름 금강산을 휘감는 멋진 구름과 산봉우리들이 눈앞에 다시 다가온다. 우리들은 그동안 금강산 관광사업을 독점 추진해온 현대아산측의 공식 사진사로 활동한 이정수 씨를 통해 비록 가지는 못한 사람들이라도 그 경치를 사진으로나 동영상으로 많이 보아왔는데 다시 그것이 보고 싶어진 것이다. 마침, 일생 금강산을 그린 겸재 정선의 대작들이 지난봄 국민에게 제대로 선보인 뒤라 실물을 다시 보고픈 마음이 여름 안개처럼 솟아오르는 것이다.
다만 유네스코의 누리집에 게시된 사진들을 보면 사진의 색조나 색상, 선명도 등에서 우리가 보아온 것들에는 못 미치고 있어. 북한 측이 제공했을 이 사진들을 통해 그들의 촬영 장비나 기술 등의 문제로 해서, 기왕이면 그 아름다움을 유네스코 게시 사진으로는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금강산은 1945년 광복 이전까지는 누구나 갈 수 있었고 그 후 남북 분단으로 막혔던 금강산 관광은 남북화해 분위기에 따라 1998년 드디어 시작되자 많은 이들이 직접 현지에 가서 눈으로 금강산을 보는 안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10년 만인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양자 씨가 북한 측의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었고 그 후 벌써 만 17년이 흘렀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는 국민의 염원에 따라 남북 사이에 이 총격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이 있었으나 상대방 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남북 양쪽의 자존심 싸움에 관광재개문제는 물론 그동안 우리 측이 애써 만들어놓은 각종 시설마저 다 없어지고 난 상황이 되었으니 정말로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부모님들을 금강산 구경이라도 시켜드리고 싶은 이 땅 아들딸의 염원은,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더욱 풀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금 금강산은 여름이 한창일 것이다. 금강산의 이름은 사계절이 달라서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봉래, 가을에는 풍악, 겨울에는 개골산이라고 했다. 그만큼 다양하고 천변만화의 경치를 보여준다는 뜻이리라. 여름 금강산의 이름인 봉래산의 봉래(蓬萊)는 원래는 '쑥과 명아주'를 이어 부르는 말이다. 중국인들은 바다 동쪽에 불로초가 많이 나는 산이란 뜻으로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이름의 유래를 넘어서서 갈라진 남과 북의 사람들이 이곳에 만나러(逢) 온다(來)는 뜻의 봉래산(逢來山)이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북한 금강산이 세계유산이 됨으로써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 남쪽 국민이 금강산을 봐야 하는 이유와 권리가 더욱 분명해졌다. 방문이 끊어진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금강산. 가까이에 있는 천하명승을 놔두고 어디를 돌아다닌다는 말인가? 금강산 관광을 다시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사실 조금 냉정하게 보면 관광이 중단된 이후 북측으로서는 남쪽에서 관광 재개를 손꼽아 기다린 정황이 있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않으니 남쪽에 구걸하지 않고 독자적인 관광을 추진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측이 원산갈마지구에 대규모 리조트 위락시설을 이달 초 준공해 공개한 것이 그 계획의 하나라는 분석이 있고, 이번 세계유산 등재도 세계적인 관광지로의 개장을 위한 준비로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이미 러시아에 개방을 시작했다.

이번 등재와 관련해 세계유산위원회는 "금강산 관광 개발 계획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값어치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값어치 보호를 우선시하는 적절한 개발을 보장하라"면서 "방문객을 위한 편의 시설과 안전 보장, 재난 대비 등도 국제 표준 수준으로 제공하라"고 당부했고, 등재 확정 뒤 북한 대표단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다고 한다. 과거 북한 측은 김일성 체제를 선전하는 각종 정치적 문구들을 금강산 바위와 봉우리에 새겨 자연을 훼손한 바 있는데,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그러한 자연파괴 행위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어찌 보면 환경보전 측면에서는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북측이 관광자원으로서 개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보다 친환경적으로, 자연파괴를 최소한으로 하는 개발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기왕에 금강산이 세계유산으로 격상 지정된 만큼 우리 정부가 북한 측에 이 지정을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고 관광 재개를 위해 우리들이 협조할 것이 있는지를 타진해 보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이 문제가 풀리지 않은 것은 남북 사이에 대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면 이의 해소를 위해 서로의 의구심을 풀고 마음의 벽을 낮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금강산은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남북에 흩어져 사는 한국인들이여, 당신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왜 땅을 가로 막고 서로에게 원한을 쌓아가는지? 상대방의 위협에 대응한다며 무기 경쟁만 하는지? 서로 오물이라고 하는 것들을 보내는 것은 또 얼마나 치졸한가? 항상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중국을 보라. 다 왕래하고 같이 사업하고 같이 노래하고 영화도 만들고 하지 않는가? 나 이 금강산의 아름다운 얼굴을 왜 서로 못 보게 하는가? 내 얼굴을 못 보고 돌아가셔야 하는 분들에게 어떻게 사죄하려고 이리 모질게 남북의 장벽을 더 높이 세우는가?

이번 금강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한다. 이제 다시 남북 사이의 벽을 허물어 보자. 무기를 버리고 보습을 만들어보자. 서로의 길을 가로막는 철조망을 다시 걷어보자. 콘크리트 장벽을 세워야 하는 북측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보자. 이제 국토의 중간에 있는 금강산이 이 역할 해주기를 간절히 다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