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71] 강홍식 ‘처녀 총각’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어느덧 노래 꽃 피는 마을이 연재 70회를 넘었다. 이즈음에서 간략하게나마 우리 가요사의 개괄적 정리를 해 두고자한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어 불리는 대중음악을 가요, 외국(영미)의 대중음악을 팝이라 한다. 하지만 위의 용어들은 고착되어 있는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을 거듭해 왔다. 그러면 우리 가요는 언제부터 가요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밝히자면 가요라는 용어는 1970년대부터 일반화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유행가라 했었고, 그 이전엔 유행창가 또는 창가라 했었다. 그렇다면 창가를 우리 대중음악의 시원(始原)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일부 연구자들은 창가를 범주 안에 포함시키는 이들도 있으나 너무 포괄적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1027년에 나온 낙화유수를 최초의 가요 곡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필자 역시 후자의 설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렇긴 하나 노래를 부른 이정숙이 동요를 전문으로 부르는 가수여서 그녀를 최초의 유행가 가수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많은 연구자들은 1930년에 봄노래 부르자로 등장한 채규엽을 최초의 유행가 가수로 꼽고 있으며, 최초의 인기곡으로
- 김상아 음칼럼니스트
- 2016-02-27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