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아리랑이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분명치 않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1800년대 중반, 경복궁을 중건할 때, 각 지역에서 차출된 인부들이나 또는 사당패를 불러 연희할 경우에 각 지역의 아리랑이 불려 졌고, 그 후 인부들에 의해 파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그 뒤 1896년는 외국인 선교사 헐버트(hulbert)가 당시의 아리랑을 5선보로 채보하였는데, 이 곡은 현재의 <구 아리랑>이란 점,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라는 영화에서는 주제곡으로 <아리랑>을 편곡하였는데, 영화와 함께 아리랑 노래가 민족 감정을 폭발시키게 되어 민족의 노래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점, 이 아리랑은 기존의 <구아리랑>에 견주어 박자나 가락, 시김새의 형태를 간결하게 변화시킨 <신아리랑>이란 점을 얘기했다. 현재는 이 아리랑을 다른 지방의 아리랑과 구별하기 위하여 서울 경기지방의 <본조(本調)아리랑>, 또는 단순하게 <아리랑>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 본조아리랑의 음조직은 Sol-La-Do-Re-Mi의 5음으로 순차 상행이나 하행하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키나와전(沖縄戦) 전몰자 유골의 DNA 감정에 대해서 후생성은 빠르면 7월부터 민간인 유족도 적용하여 신청을 받는다. 지금까지 사실상 전몰자 DNA는 군인, 군속 유족만 해당되었다. 민간인 유족 감정 참가에 대해서는 오키나와전 유골수습 봉사단인 '가마후야'가 7월에 후생성에 집단 신청할 예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후생성은 신청방법 등을 각 현(県)과 조정을 추진 중에 있다." 이는 오키나와에 있는 류큐신보(琉球新報)가 6월 20일 보도한 기사다. 지금 한국에서는 저가항공사의 오키나와 취항으로 여행상품이 많이 생겨 손쉽게 찾아가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이곳은 태평양전쟁 때 군국주의 광풍의 회오리바람이 거셌던 곳이다. 특히 한국인 강제 징용자들이 이곳 오키나와 전투에서 1만여 명 희생되었지만 정확한 조사는 아직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 1945년 4월부터 3달 동안 이어진 오키나와전투에서 미군 약 1만 5천명, 일본군 6만 5000여명을 비롯하여 일본쪽 민간인 사망자 20만여 명이 나왔는데 이렇게 민간인 희생자가 컸던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이른바 죽더라도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는 ‘옥쇄작전’으로 희생된 이들이 더욱 많았던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한국의 아리랑은 지난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4년에는 북한의 아리랑민요가 역시 등재되었기에 아리랑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인의 노래 유산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지난주에 하였다. 정선아리랑을 비롯하여 서울 경기지방의 본조(本調)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외에도 문경아리랑, 상주아리랑, 해주아리랑, 대구아리랑, 공주아리랑, 영천아리랑, 용천아리랑, 등등 지역의 특징적인 아리랑은 수도 없이 많다는 이야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기도 했지만, 식민지 시절,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각 지방에서 부르기 시작했으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또 무엇보다도 아리랑의 음악적 특징은 간결하면서도 정제되어 있는 형식과 선율형이 간단해서 쉽게 부를 수 있다는 점, 3박자형의 리듬구조, 지역마다의 시김새가 다양하다는 점, 그 중에서도 특히 떠는 소리의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즉석에서도 지어 부를 수 있는 풍부한 노래말이라든가, 박자의 조절이나 감정의 상태에 따라 슬픔과 기쁨 등 음악적 분위기를 바꾸어 부를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예순 살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여 82살에 게임 앱을 개발한 할머니, 이른바 컴퓨터 할머니로 알려진 일본인 와카미야 마사코(若宮正子, 82살) 씨는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일약 스타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에는 아흔 살에 마라톤 현역이 있는가하면 아흔 살 시인이 있고 여든 살에 컴퓨터 게임 앱을 만드는 등 고령의 파워가 만만치 않다. 히나단이라는 인형놀이를 게임 앱으로 개발한 와카미야 마사코 씨는 평생 다니던 은행을 퇴직하고 늙은 노모 간병을 위해 집안에 들어앉았다. 어느 날 집에 있으면서도 컴퓨터가 있으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컴퓨터 한 대를 산 것이 컴퓨터와의 인연이다. 와카야미야 씨가 예순 살 먹던 해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이다. 그는 난생 처음 접한 컴퓨터를 거의 독학으로 익혀나갔다. 한 걸음 한 걸음 타자치는 법부터 익혀 나간 그는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법도 익혔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정도 컴퓨터에 익숙해지자 노인층을 대상으로 하는 ‘멜로우 클럽’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인터넷과 IT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든 와카미야 씨는 독자적인 아이디어로 컴퓨터 활용법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불리고 있는 “아리랑”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4인, 즉 미국 유타대학 명예교수 이정면 박사, 사회사업가 류승호 씨, 사진작가 류승률 씨, 그리고 문학작가 서용순 씨를 소개하였다. 이들은 음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고려인들이 지켜온 아리랑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그들이 답사한 아리랑 로드 10만Km의 생생한 기록을 한 권의 책에 담으면서 6월 7일 인사동 소재 토포하우스에서 출판기념회와 사진전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53만 고려인들이 부르는 아리랑 속에는 과거의 아픈 상처가 묻혀있는데, 그 중에서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18만 명의 고려인들이 영하 30도의 추운 카자흐스탄 벌판으로 강제 추방된 사건은 잊을 수가 없는 탄압이었다.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질병과 싸우면서도 그들에게 가해진 탄압의 역사를 아리랑을 부르며 견뎌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강력한 힘의 원동력이었으며 희망이었고, 부모였으며 조국이었고, 생명의 노래였던 것이다. 이번 주에는 그들이 그토록 처절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기상청은 6일, 큐슈 북부와 남부가 장마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이는 평년보다 약 6일 늦은 것으로 일본의 장마는 우리나라 보다 대개 1달 이상 빨리 찾아온다. 츠유(梅雨)라고 부르는 일본의 장마 소식과 함께 실린 사진은 보랏빛 ‘수국꽃’이다. ‘아지사이’라고 부르는 수국꽃은 장마=수국으로 인식될 만큼 장마철 일본의 정원을 수놓는 꽃 가운데 하나다. 서일본신문(西日本新聞) 6월 6일치에는 수국꽃으로 아름다운 후쿠오카 하코자키신사(筥崎宮, 福岡県 福岡市 東区箱崎 소재)의 활짝 핀 수국꽃을 소개하고 있다. 1991년 신사 안에 정원(신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신원(神苑)’이라 한다)을 조성할 당시에 심어둔 수국꽃은 이제 하코자키신사의 명물이 될 만큼 자라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코자키신사는 서기 921년에 세운 신사로 천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8월 26일부터 9월4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이라는 특별전에 이 신사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코자키신사의 이름이 나오는 신안해저선은 1323년 원나라 저장성 경원(慶元, 현 닝보 '寧波')항에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정욱이 펼치는 <배뱅이굿 발표회> 이야기를 하였다. 박정욱은 누구보다 배뱅이굿을 사랑하고 아끼는 젊은 명창으로 김정연에게 처음 배우기 시작하였고, 후에는 이은관을 사사하였다는 이야기, 배뱅이굿 이외에도 경서도민요, 춤, 민속놀이, 굿, 연기,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내공을 쌓아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배뱅이굿>의 내용은 <배뱅이>라는 처녀가 상사병에 걸려 죽게 되자, 그녀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8도의 무당들을 불러 굿을 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으며 노래, 아니리(대사), 발림(몸짓, 연기)으로 남도의 판소리와 비교된다는 이야기, 배뱅이굿은 100여년이 넘는 소리로 김관준 이후로 김종조, 김주호, 최순경, 이인수, 김칠성 등이 이어받았고, 이은관은 이인수에게 배워 일약 대스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불리는 “아리랑”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4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들은 어느 누구도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으나 고려인으로 살아가는 동포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특히 그들이 지켜오고 있는 아리랑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사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 땡볕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고 결코 화내지 아니하며 늘 조용히 미소 지으며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깨달아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 숲속 그늘에 지붕을 새로 이은 작은 오두막에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돌봐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가 계시면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남쪽에 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부질없는 짓이니 그만 두라고 말리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위 닥친 여름에는 어찌할 바 몰라 허둥거리고 모든 사람에게 바보 소리를 들으며 칭찬도 듣지 않지만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이는 일본의 국민작가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96년 8월 27일 ~ 1933년 9월 21일)가 지은 유명한 ‘비에도 지지 않고(雨ニモマケズ)’ 시다. 고향 이와테에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겐지는 도쿄로의 진출을 꿈꾸다가 25살 때(1921년) 대도시 도쿄로 무작정 상경을 한다. 먹고 잘 곳도 없는데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단오, 단오는 단오절, 단옷날, 천중절(天中節), 포절(蒲節:창포의 날), 단양(端陽), 중오절(重午節, 重五節)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고 했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이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한다. 수릿날은 조선 후기에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이 날 쑥떡을 해 먹는데,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리'란 이름이 붙었다. 또 수리란 옛말에서 으뜸, 신(神)의 뜻으로 쓰여 '신의 날', '으뜸 날'이란 뜻에서 수릿날이라고 불렀다. 이날 부녀자들은 '단오장(端午粧:단오날의 화장)'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재액(災厄)을 막고,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냈다. 또 단옷날 새벽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생각했다. 반면 남자들은 단옷날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귀신을 물리친다'는 믿음을 가졌다. 단옷날은 양수 “5”가 겹친 원기 왕성한 날인데 그 가운에서도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해학(諧謔)이 넘쳐나는 휘모리잡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사설이 재담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매우 해학적이란 점, 볶는타령 장단으로 빠르게 몰아가기 때문에 모임의 파장 무렵에 부르게 마련이란 점, 생성연대를 1800년대 중반으로 보는 근거는 중반 이후에 <육칠월 흐린 날>과 같은 노래가 유행했고 박춘재(1881년생) 명인이 어렸을 때부터 휘모리잡가를 들으며 자랐다고 말한 점을 들었다. 또 1907년 최초의 휘모리잡가 음반이 출시되었다는 점, 1900년대 초, 잡가집 속에 <바위타령>이나 <맹꽁이타령>, <곰보타령> 등, 휘모리잡가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 등이라는 이야기, 또한 휘모리잡가 가운데는 옛 장형(長型)시조와 맥을 함께 하는 형식도 있으며 초기의 명창 박춘경은 농부 출신으로 시조, 수잡가, 긴잡가, 휘모리잡가를 잘 불렀고, 이현익은 <병정타령> <맹꽁이타령> <바위타령> <비단타령> <순검타령>등을 창작하였다는 점도 얘기했다. 이 가운데 <비단타령>은 마치 경을 읽는 듯한 독경(讀經)방식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