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어 서도소리 중 배뱅이굿 관련 이야기를 계속한다. 서도소리란 황해도의 산염불이나 난봉가와 같은 노래, 또는 평안도의 수심가(愁心歌)나 긴아리, 잦은아리와 같은 노래들로 대표되는 황해도 지방이나 평안도 지방에서 불리어 온 노래를 아울러서 부르는 이름이다. 서울, 경기소리처럼 서도소리에도 명주실을 뽑아내듯 속청을 사용하는 시창(詩唱), 초한가나 공명가와 같은 좌창(坐唱), 씩씩하면서도 흥겨운 선소리, 그리고 민요와 잡가, 송서, 배뱅이굿과 같은 창극조 등 다양한 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소리라도 서도창이란 수심가조가 기본이 된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배뱅이굿을 다듬고 정리한 사람은 19세기말 용강의 김관준(金官俊)이라는 스님 출신의 소리꾼이라는 점, 그의 아들 김종조와 최순경, 이인수 등이 그 소리를 이어 받았고, 이인수는 이은관에게, 박준영은 이은관의 그 소리를 이어가는 큰 제자의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배뱅이굿은 줄거리가 있는 재미있는 소리극조로 주인공 배뱅이라는 처녀가 결혼 전에 죽게 되자, 그녀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8도의 무당들을 불러 굿을 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묘사한다는 점, 노래와, 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교토 사가(嵯峨) 지방의 세료지(淸凉寺)에는 오장육부를 상징하는 복장유물이 전해온다. 복장유물(腹藏遺物)이란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넣는 경전이나 불사리 따위를 안치하여 불상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장치로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에서 1984년 7월 불상의 유래를 밝힐 수 있는 2개의 발원문(發願文)과 조선 전기의 복식, 전적류 등 23점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교토 세료지(淸凉寺)에 전해오는 오장육부 복장유물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 사례가 없는 것으로 이는 중국의 풍습을 따른 것이다. 중국에서는 불상을 인간과 같이 살아 있는 몸으로 여겨 불상 내부에 오장육부를 넣는 특유한 풍습이 있었는데 세료지에 있는 석가상은 송나라 때 만든 불상으로 불상 안에는 직물주머니 모양의 오장육부를 포함한 30여개의 복장유물이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불상 안에 다라니, 경전, 글씨가 적힌 명찰, 종이에 찍은 불상(印佛) 등 다양한 복장유물을 넣고 있다. 시즈오카현 간죠쥬인(願成就院)의 아미타불상 안에서 나온 명찰과 나라현 죠루리지(淨琉璃寺) 아미타불상 안의 인불(印佛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황해도 화관무(花冠舞)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화관무는 꽃으로 장식된 화관을 머리에 쓴 무희들이 추는 춤이며 독무(獨舞)가 아니라, 여러 무희들이 원을 그리며 함께 추는 일종의 원진무(圓陣舞) 형태의 춤이라는 이야기, 원진무는 강강술래와 같이 여인들이 손을 잡고 원을 만들며 휘도는 집단적 춤으로 달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이야기, 이러한 춤은 지역공동체를 중시하는 풍습이고 마을공동체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삶에 대한 긍정적인 활력소와 현세적 길복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화관무는 현재 이북5도청의 황해도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고, 황해도 출신 민천식에 의해 전승이 이루어졌으며 민천식은 황해도 권번에서 기생들에게 노래와 춤을 지도해 온 예인이었으나 전쟁 뒤 인천에 국악원을 세우고 김나연에게 이 춤을 전승하였기에 이름을 민천식류 황해도 화관무라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 화관무는 머리에 화관, 노란색 저고리에 금박을 물린 홍색 치마, 양손의 오색한삼, 홍띠를 매는데, 한삼은 폭이 좁고 짧은 점이 특색이란 점을 말했다. 또 어깨를 중심으로 한 손놀림의 표현 등이 해서지방의 전통이란 점, 장단형태는 도드리장단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가 갖고 있는 책 《별책역사독본(別冊歷史讀本)》은 우연찮게 진보초의 고서점가에서 건진 것이다. 특별히 이 책에 손이 간 것은 역대천황124대라는 부제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표지에는 122대 일왕인 메이지(明治天皇)의 얼굴로 꾸며져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보인다. 역대 일왕가의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이 책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이 떠오른다. 성서인물 가운데 아브라함을 보면 175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일본의 일왕 역시 이에 못지않은 나이를 자랑하는 이들이 꽤 있다. 먼저 100살 이상을 살았다는 일왕을 보면 제1대 일왕인 진무(神武天皇)는 127살이요, 제5대인 코쇼우(孝昭天皇)는 114살, 제6대 코우안(孝提安訴天皇)은 137살, 제7대 코우레이(孝靈天皇)는 128살, 제8대 코우겐(孝元天皇)은 116살, 제9대 카이카(開化天皇)는 111살, 제10대 스진(崇神天皇)은 119살, 제11대 스이닌(垂仁天皇)은 139살, 제12대인 케이코우(景行天皇)는 무려 148살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제13대인 세이무(成務天皇)는 107살, 제16대인 닌토쿠(仁德天皇)는 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무째로 소설(小雪)인데 이날 첫눈이 내린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이 무렵은 추위가 시작되지만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아직 따뜻한 햇살이 비치므로 “소춘(小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하지만,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할 정도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김장을 서두르고, 여러 가지 월동 준비도 하지요.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며 곶감을 깎아 말리는 것은 물론,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하고,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합니다. 한편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된다는 것이지요. “입동(立冬) 이튿날에 이미 이러한 변이 있어 내 마음이 조심스럽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또 소설(小雪) 전날 밤에 눈[雪] 속에 천둥이 쳤다. 한겨울이 이미 다가왔는데도 변이가 그치지 않으니, 위로는 하늘의 견고(譴告, 잘못이나 허물을 꾸짖는 뜻을 알림)의 간절함이 두렵고 아래로는 자정(疵政, 나라를 다스리는데 잘못)의 많음이 부끄럽다.” 이는 《명종실록》 명종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인천 계양문화회관에서 열린 삼인(三人)삼색(三色)전 공연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전공분야가 다른 풍물의 지운하, 서도소리 배뱅이굿의 박준영, 화관무의 김나연 등이 한 무대에서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는 우수한 예술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그 맥을 이어가기 위해 후학들과 함께 무대를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 예로부터 악이란 개념은 기악의 악(樂), 성악의 가(歌), 춤의 무(舞)를 동시에 일컫는 말이었으며, 그 예로 가야금 악사 우륵(于勒)이 신라의 계고라는 제자에게는 가야금, 법지에게는 노래, 그리고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날 삼색전에서는 모두 8종목을 무대에 올렸는데, 첫 무대는 길놀이로 객석의 시선을 모았으며, 무대 위에는 고사상이 차려지고, 남기문 외 4인의 비나리와 사물의 연주가 일품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두 번째 무대인 김나연 외 17명의 화관무(花冠舞)는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 춤으로 해주와 개성 등지에서 마을의 큰 행사, 축제가 있을 때 추어온 춤이라는 이야기, 이 춤은 지방의 특색은 물론, 궁중무용과 같은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면서도 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처럼 보일러로 난방이 일반화 되지 않던 시절, 한국의 온돌방에서는 손쉽게 화롯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원산에 큰불, 집 전소(全燒), 화롯불 부주의 인 듯” 이란 제목의 기사는 1930년 1월 9일 동아일보 기사지만 1930년대까지 갈 것도 없이 글쓴이의 어린 시절인 60년대만 해도 시골에는 집집마다 화롯불이 있었다. 아궁이에 제법 괜찮은 나무 등걸을 땐 날은 화롯불이 유난히 오래갔던 기억이 난다. 일본 역시 우리의 화로와 같은 난방 기구들이 있었는데 히바치(火鉢, 화로)가 있는가하면 고타츠(火燵, 이불을 덮어씌우는 화로), 그리고 이로리(囲炉裏, 방바닥・마룻바닥을 네모지게 파내고 난방・취사용의 불을 피우게 만든 장치)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난방 기구들은 현재 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난방기구다. 일본 열도는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 짧아 남북 간의 온도차가 제법 크다. 도쿄를 기준으로 아래쪽은 서울보다 따뜻하지만 위쪽은 눈도 많고 추위도 매서운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기나긴 겨울 추위를 이겨낼 난방 기구를 고안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 백인영 명인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 만든 예랑 가야금실내악단의 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첫 곡은 유대봉제 백인영류 가야금 산조로 이 음악은 원래 남도 무속 시나위에 바탕을 두고 짠 것으로 다채로운 변청(變淸)이 출연하며 경드름 부분의 삽입, 눌러 내는 역안(力按)주법과 미는 발음법이 많다는 이야기, 이어진 낙엽, 노을바람, 비애 등은 음 하나 하나에 생명의 가치를 표출하듯 외양보다는 내면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주자간의 호흡이 잘 어울린 연주로 평가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 곡 백인영류 25현 산조 3중주는 12현의 전통가야금이 아닌 25현 가야금으로 또 다른 산조의 맛과 멋을 표출하는 의욕적인 음악이며 특히 엇박 장단의 멋이나 독특한 시김새의 처리가 일품이었다는 이야기, 공연 도중에는 잠시 고 백인영을 회고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내가 그를 알게 된 배경, 방송, 사극의 배경음악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는 이야기, 백인영 앞에서 함부로 가야금 타지 말라고 충고했다는 어느 원로의 이야기, 호암홀에서 유대봉류 가야금 산조를 발표했을 때, 마치 선생이 환생하여 연주한 음악회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 즉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2일은 일본 도쿄 한복판에 있는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 유우지)에서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개막식이 있었다. 고려박물관은 양심 있는 일본의 시민들이 만든 박물관으로 조선침략을 사죄하는 뜻에서 그와 관련된 전시물을 꾸준히 전시하여 일본정부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자 힘쓰는 곳이다. 이번 제2회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은 지난 2일부터 1월 29일까지 3달 동안 열리며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 30명에 대한 시와 그림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시 이윤옥, 그림 이무성)소개되고 있다. 기자가 개막식에 참석치 못한 관계로 때마침 인천관동갤러리 도다 이쿠코 관장이 도쿄 방문 일정이 있어 이곳에 들려 사진과 함께 개막식 분위기를 알려왔다. 말이 개막식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개막식은 갖지 않고 다만 조촐히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들이 나와서 시화전을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도다 이쿠코 관장은 2일 고려박물관에 갔을 때 박물관 한쪽 귀퉁이에서 ‘조선(한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두 명의 일본인 남학생’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면서 그들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누리편지로 보내왔다. 이 두 남학생은 박물관의 하라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어 한국문화의 집에서 가졌던 예랑의 발표회 이야기 또 다른 시작이다. 예랑(藝娘)이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낭자들이란 뜻으로 2000년 전후에 고 백인영 명인이 제자들의 가야금 실력의 연마와 무대경험을 위해 만든 실내악단이라는 이야기, 그 해 창단연주회는 기존의 산조나 민요, 고전적 분위기의 창작곡에 머물지 않고, 각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레퍼토리로 신선한 충격을 던지면서 갈채를 받았다는 이야기, 백인영은 제자들에게 손재주만을 전해주는 선생이 아니라, 예술가의 안목이나 다양한 음악적 경험, 무대 경험까지 생각해 주었던 훌륭한 스승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백 명인과 가깝게 지내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중반, EBS 라디오에서 매주 토요일 국악프로그램을 2~3년 함께 하면서 부터였으며 당시 김청만은 장단으로, 백인영은 아쟁이나 가야금으로 노래반주를 하였는데, 출연자에 따라 순간적으로 조율하며 반주하는 모습에 감탄했다는 이야기, 그는 음악적 끼를 타고 났고 어려서부터 전속음악단체에 소속되어 음악적 경험을 쌓아 왔기에 그의 음악은 남달리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즉흥성이 강하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예랑 실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