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달 가까이 걸린 이삿짐 정리가 끝나자 비로소 둘레길 숲에도 발길이 가능했다. 홀가분한 마음이다. 사실은 부엌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뻐꾸기의 소리로 비로소 귀가 열린 것이다. 어 뻐꾸기구나. 너 어디 있었는가? 그 뻐꾸기 소리를 따라 둘레길 숲속으로 들어가 본다. 문득 나는 어느새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가 되어버린다. 해가 벌써 지고 나니 별들이 두셋씩 나와 있네 작은 새들은 숲속에서 나무에서 여전히 지저귀고 있구나 아 저기 뻐꾸기, 그리고 개똥지빠귀들 저 멀리서 바람도 불어오고 물 솟아 흐르는 소리도... 뻐꾸기 목소리는 왕의 그것인양 빈 하늘을 울려 퍼지네 The sun has long been set, The stars are out by twos and threes, The little birds are piping yet Among the bushes and trees; There's a cuckoo, and one or two thrushes, And a far-off wind that rushes, And a sound of water that gushes, And the cuckoo's sovereign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강원도 평창에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수원대를 정년퇴임 한 뒤 평창에서 전원생활을 즐기시고 있는 이상훈 교수님이 전화를 주신 것이다. 평창 마지리에 있는 절개산에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있으니 한 번 답사하러 오라는 것이다. 이교수님은 나와 같이 ‘얼레빗’ 회원이신데, 평소 내가 <우리문화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를 즐겨 보신다고 한다. 내가 주로 우리 역사에 대해 연재하고 있기에, 이교수님은 절개산의 숨은 역사 이야기를 알게 되시자 나에게 전화를 주신 것이다. 2020. 5. 16. 아침 11시 35분에 배재흠, 김현기 두 분 교수님과 함께 평창역에서 내린다. 두 분도 같은 얼레빗 회원인 데다가 이 교수님과 함께 수원대를 정년퇴임한 교수님들이기에 동행한 것이다. 사실 나야 얼레빗 회원이라는 인연밖에 없지만 세 분 교수님들은 같은 수원대에 봉직하였으니 더욱 유대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분은 단지 수원대 동료 교수였다는 동류감을 뛰어넘는 끈끈한 동지애가 있다. 세 분은 수원대를 올바른 학교로 이끌려고 교수협의회를 조직하여 재단 쪽과 싸우면서 많은 고초를 겪으며 더욱 끈끈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값비싼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예술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상품성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가장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은 모나리자 앞입니다. 너무나 익숙하게 보아온 그림인데 진품을 접한다는 희열도 잠깐 그림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 사람에 떠밀려 제대로 된 감상은커녕 짧은 시간의 조우에 실망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그림의 우수성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경매장에서 판매되는 고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정말 예술적으로 훌륭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화가의 명성이나 희소성 때문에 상품성만 높은 것은 아닌지 범인의 눈으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평생 저술 활동을 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살아생전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 못한 대가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예술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진정한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훌륭한 작가였지만 작품 대부분을 백 권도 팔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고 고흐는 살아서 예술 세계에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분들의 삶의 초점은 자본이 아니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현대인들은 마음이 바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수필이건 시이건 소설이건 빨리 결론이 뭔가, 뭐가 가장 중요한가를 파악하는 능력이 우선시 된다. 새잎이 나기 시작하는 4월에는 ‘사월은 잔인한 달’이란 어느 외국 시인의 글귀만을 인용하는 것이 그것이고 5월이 되면 영문학자인 피천득 선생님의 <오월>이란 수필을 들먹거리면서도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는 구절만을 반복해서 듣고 인용하는 것으로 오월을 보낸다. 그런데 오월을 신록이라는 개념으로만 보면 오월의 진정한 맛을 모르듯이 피천득 선생님의 <오월>을 첫 구절에만 머물고 더는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그 수필과 수필에 담긴 진정한 맛을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된다. 그만큼 우리의 삶을 겉핥기식으로 마구 보내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그 <오월>이란 수필을 조금 더 읽어보자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이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끔 계곡을 따라 하산할 때가 있습니다. 산이 얼마나 많은 물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산 때 반드시 조금씩 수량이 늘어나는 시냇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돌돌돌 흐르는 물가에 서면 풋풋한 생명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중국 서부 지역엔 황량하고 거친 고비 사막이 있습니다. 그 고비 사막 한 가운데를 한줄기 강이 짙은 황토 빛으로 흐릅니다. 그리고 그 강 양쪽에 초록의 푸름이 두 줄기 선으로 길게 이어지지요. 강을 따라 나무가 자라고, 강을 따라 생명이 살아 숨 쉬고 강을 따라 도시와 마을이 형성됩니다.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에 강우량이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여름엔 강물이 흐르다가 가을 이후 마르는 것을 건천이라고 합니다. 이 건천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변엔 나무나 풀들이 우거질 수 없지요. 강은 홀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 안에 온갖 생명을 보듬어 키우고 오염을 정화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나관중은 삼국지연의를 지으면서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도 장강은 유유히 흐른다." 장강이란 양쯔강을 의미하는데요. 강처럼 역사도 유유히 흐른다는 말씀을 하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친구가 복권을 산다고 하기에 옆에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2천원을 꺼내어 그 친구보고 사달라고 했다. 나는 복권에 당첨되는 그런 행운은 없는 사람이기에, 평소 돈을 잘 만지고 돈도 잘 버는 친구의 손기운을 받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왜 이럴까? 무엇때문에 되지도 않을 일을 기대하고 있는가? 당첨이 되어 일확천금을 하면 그것을 감당이나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왜 복권에 손을 대는가? 한 참 전에 휴일 아침에 집 근처 숲속을 산책하던 적이 있었다. 한 시간 남짓 걸었기에 허리가 조금 아파서 허리도 펼 겸 잠시 길옆에 주저앉아 눈에 띄는 클로버 덤불 속을 눈으로 훑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있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네 개의 잎이 달린 클로버가 있었다. 하나를 찾아서 집사람에게 주니 집사람도 자기도 찾았다며 즐거워한다. 다시 보니 그 옆에 또 있었다. 그 옆에도 또. 이런 추세라면 더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거기서 그만하자고 제의했다. 우리 식구가 4명인데 더 찾아서 무엇하랴. ‘행운의 네 잎 클로버도 너무 많으면 행운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었다. 프로 바둑기사가운데 묘수를 잘 두는 분이 있었다. 과거 7단인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祭罷原頭日已斜(제파원두일이사) 제사 마친 들판에 해는 이미 기울고 紙錢翻處有鳴鴉(지전번처유명아) 지전 태워 흩날리는 곳에 갈가마귀만 운다 山蹊寂寂人歸去(산혜적적인귀거) 적막한 산골짝에 사람들은 돌아가고 雨打棠梨一樹花(우타당리일수화) 팥배나무 꽃잎 위로 비는 치누나 석주 권필(1569~1612)의 ‘한식’이란 시입니다. 한식날 제사를 마치니 이미 해는 기울고, 지전 태워 흩날리니 갈가마귀들은 벌써 알고 제사음식에 침을 흘리는군요. 이제 사람들이 돌아가니 산골짝에는 적막만 감도는데 비는 왜 오는지... 비는 시인의 심정도 모르고 팥배나무 꽃잎을 두들기네요. 쓸쓸한 풍경이지요? 시인의 쓸쓸한 심정이 그대로 풍경에 젖어 든 것 같네요. 권필은 어디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벼슬도 마다하고 평생 야인으로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이니 그 시대 속물 같은 양반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도 썼습니다. 이런 권필이기에 조선의 양반들을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부르주아로 보는 북한에서도 석주는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하네요. 결국 이런 석주의 성격 때문에 석주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합니다
[우리문화신문=글, 사진 이동식 인문탐험가] 온 세상이 푸르다. 봄이 온 가장 확실한 증명은 세상이 온통 푸르게 변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푸르다. 공원의 산책로에도, 자동차 도로 옆 조그만 화단도, 길옆 나뭇가지도 온통 푸르다. 가까이 있는 나무들, 멀리 보이는 숲에서 연하거나 짙은 푸르름이 점점이 박혀있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저 보세요!” “제가 얼마나 싱그러운지 보이시죠?” 코로나19 사태로 게임이 중단된 골프장의 잔디들도 다 푸르름으로 되살아났다. 싱그럽고 푸르른 봄, 이 말을 표현하는 색깔은 연두색, 연둣빛 등 단연 연두다. 연두, 완두콩의 빛깔을 상징하는 색이름이리라. 한자로는 ‘軟豆’라고 쓰니, 연한 콩이란 뜻이리라. 식물의 푸르름을 표현하는 한자말의 도움으로 형성된 우리말의 개념을 보면 록(綠)이라는 글자가 중심이라고 하겠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단어가 녹색(綠色)이라면 그보다 조금 연한 것은 초록(草綠)일 것이요, 그보다 더 연한 것이 연두(軟豆)일 터이다. 이 록(綠)이 더 진해지면 진녹색, 검녹색이 된다. 그러니 싱그럽다는 말, 푸르다는 말은 곧 연두색 잎과 싹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겠다. 우리 말로는 그냥 ‘연두’라는 말 하나일 것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을 맞아 문화재청에서 의미 있는 일을 벌이는 모양이다. 전국에 있는 25개의 문화재를 대상으로 안내문을 더욱 쉽고 멋있고 더 편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써서 보내주면 우수한 작품을 뽑아서 표창도 하고 그것을 안내판에 쓰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리 함께 만들어요! 문화재 안내판 안내문안’ 온라인 공모전으로서 오는 5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안내문안을 공모해 받는다. 문화재 안내문은 원래가 복잡한 한자말에서 온 것이 많아서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음은 자타가 다 인정하는 점이다. 전국에 있는 모든 문화재의 안내문을 새로 쓸 수는 없으니 우선 25개만을 뽑아서 안내문을 새로 써보자는 것이다. 이를 테면 명승 제20호인 제천 의림지와 제림에 대한 기존의 안내문은 다음과 같다: “제천 의림지(義林池)는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호반의 둘레는 1.8km이고 수심은 8m이다. 제방을 따라 소나무,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제림(堤林)이라 불린다. 물과 숲이 주변의 영호정(映湖亭) 및 경호루(鏡湖樓) 등과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고 있다. 호서(湖西), 호수의 서쪽이라는 충청도의 다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존경할만한 임금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꼽는 임금이 다르겠지만, 나는 세종대왕을 꼽고 싶다. 과학, 농업, 아악 등 다방면에 걸쳐 훌륭한 업적을 이룬 임금이지만, 다른 것 다 아니더라도 한글 창제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종대왕을 꼽겠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언어생활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글이 없는 세상?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다. 세종대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런 임금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세종대왕에 대해 또 하나 존경할만한 것을 알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학문을 연구하고 정책을 토론하는 경연을 중요시하였다. 그리하여 그전까지 형식적으로 열던 경연을 재위 기간 무려 1,898회나 열었다. 달로 따지면 매달 5회 정도 경연을 연 것이라고 한다. 당대에 신하들 가운데 인품이나 경륜, 학식 등에 있어 세종대왕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경연 석상에서 세종은 자기와 견해를 달리하는 신하의 말이나,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 못마땅한 발언에 대해서도 이를 곧바로 공박하지 않았다. 그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