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 전통민요협회>의 성립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다. 전통민요의 확산운동을 위해 협회를 조직하였고, 동 협회가 성립 2주년을 맞이하면서 “어울림의 향연”이라는 이름으로 기념음악회를 열었다는 이야기, 동 협회는 민요의 기본적인 이론 연구와 함께 올바른 전승이나 보존, 보급 차원을 넘어서 본격적인 확산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야를 했다. 또 연변의 음악환경이 다양하게 변화하게 된 원동력은 음악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은 조선족 동포들과, 원로 성악가 전화자 교수, 이를 따르는 젊은 제자들이 포진되어 있어 가능했다는 이야기, 이러한 민요의 확산화 사업을 위해서는 유능한 제자들의 양성이 급선무였는데, 대학에서 학생들을 양성하는 한편, 한국의 유학을 독려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 조선족 민요협회를 조직함에 있어서도 유학파 젊은 제자들이 앞장을 서서 가능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동 협회의 성립 기념식과 기념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공연은 2017년 12월 8일, 연변대학 예술학원 종합 실천극장에서 “어울림의 향연”이라는 이름을 달고 성황리에 막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백인영 5주기 추모음악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유대봉제 백인영류의 가야금산조와 가야금 병창의 쑥대머리, 백인영류 아쟁산조와 가야금 병주, 심청가 중 <황성올라가는 대목>, 남도민요 <흥타령>과 <육자배기> 등이 연주되었다. 이 가운데 아쟁산조는 단절 위기를 맞았으나 국립국악원의 김영길이 이를 복원하였고 고인과의 친분이 두터웠던 신영희 명창과 김청만 등이 찬조출연으로 무대를 빛냈다. 나는 백인영과의 회고시간을 갖고 전공이나, 고향, 성격, 학교의 동문 관계도 아닌데, 그와 가깝게 지내게 된 배경은 그의 연주를 듣고 감탄하게 된 점과 그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인간미에 빠져들었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국악이나 국악인들이 소외를 당하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학교 강단이나 공무원 교육원, 기업체 교양강좌, YMCA, 교육방송 등에서 국악도 재미있는 음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연히 교육방송에서 만나게 되고, 의기가 투합되어 자연스럽게 서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고 가깝게 지내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 생활속에서 만난 백인영은 성미가 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2월 1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백인영 5주기 추모 음악회 이야기를 하였다. 이 음악회는 백인영의 제자 20 여명이 정성을 모아 준비했고 출연했으며 특별히 고인과의 추억을 간직한 판소리의 신영희 명창, 김청만 명인, 아쟁의 김영길, 신규식, 채옥선, 서은기, 김백송, 원완철, 하주용 등이 동참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유대봉제 백인영류의 짧은 산조를 들으면서 백인영은 참으로 음악적 재기(才氣)를 타고 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와 여성국극단에 입단해서 명인 명창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음악인생을 배웠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쑥대머리>대목을 너무 좋아해서 스스로 부르며 가야금 병창곡을 만들었는데, 노래와 판소리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가야금 가락이 이채로웠다는 이야기 등도 하였다. 이번 주에도 백인영 5주기 추모음악회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간다. 당일 무대에 올려진 세 번째 곡목은 <백인영류 아쟁산조>를 가야금과 병주로 연주하는 순서였다. 아쟁에는 김영길, 가야금에는 백기숙과 이민영이 서은기의 장단에 맞추어 연주하였는데, 서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벽파 경창대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과 함께,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검토사항들을 지적하였다. 무엇보다도 대회당일 개회선언과 함께 ‘벽파 선생이 어떤 분이었는가’ 하는 점은 반드시 알리고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 실제 경연에 있어서 명창부는 지정곡을 부여하고 당일 경연자가 직접 부를 곡을 추첨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검토 할 것과, 좌창분야와 입창은 별도 경연 후에, 결선에서 대상을 선정할 것, 그리고 대상 경연시에는 민요로 통일하는 문제 등을 제시하였다. 또한 축하 무대는 선생을 기리는 큰 축제의 잔치판으로 기획하고 시상식에는 국악계나 문화예술계 인사들, 특히 선생의 고향인 성동구청이나 의회, 문화원 등 관련 인사들이 참여해서 선생의 유업을 확인하고 받들도록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 등도 이야기 하였다. 벽파 추모사업 추진위원회 이상만 위원장은 선생은 인사말을 통해 벽파선생은 방송을 통해서 경기소리를 보급하는데 열성을 다했고, 1958년 공보실(지금의 문광부)에서 30분짜리 테잎 138개 분을 녹음하여 <국악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는데, 벽파가 아니었다면 경기산타령은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지난주에는 벽파 경창대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실력이나 경력이 입증된 심사위원들의 참여와 전자송출 방식을 도입하여 투명성을 높인 채점방식, 그리고 집행부의 일사불란한 진행, 총평을 통해 자신들의 실력이나 수준을 확인하고, 소리공부의 방향이 참고가 되었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또 사회자의 적절한 무대진행 솜씨도 한 몫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부 다른 대회를 보면 사회자가 말이 많고, 비전문인을 무대에 내세워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분위기를 흐리는 예가 있었지만 이번 벽파 경연에서는 품격있고 재미있는 진행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명창부의 대상에는 최정애에게 돌아갔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집안 고모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민요를 비롯한 전통음악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음악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오늘의 어른들, 국악인들, 교육지도자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알아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 대회가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대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욱 발전해서 한국 제일의 경서도 민요 경창대회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지
범=[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지난주에는 벽파대상을 놓고 겨룬 제4회 전국국악경창대회가 지닌 의미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순수하게 경서도 좌창(坐唱)과 입창(立唱)만을 위한 대회였음에도 많은 출전자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는 점, 전통성악 분야의 경창대회로는 시조와 판소리 분야가 비교적 활발한 편이고 경, 서도소리 쪽은 다소 침체되어 있다는 점, 벽파 이창배 선생을 기리는 학술모임을 계기로 추모 사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선생의 동상은 작년에 건립이 되었고, 벽파 경창대회는 올해로 4회째가 되었으며 기념관 건립 등은 남은 숙제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벽파 대회는 상장의 훈격이 높거나 상금, 해외 연주여행이나 개인 발표회 등의 특전도 없음에도 출전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벽파라고 하는 근대 경서도 민요의 대 사범을 기리는 상징성이 주요하게 작용되었고 아울러 대회의 운영이 비교적 공정하고 깔끔했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본 대회의 학생부와 명창부는 각각 9명의 심사위원들이 채점을 하였고, 대상 선정시에는 15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하여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를 했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경창대회야 말로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채점 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지난주에는 서해안 여인들이 부르는 갯가노래에 관하여 이야기 하였다. 인천 근해의 아낙네들이 갯가에서 굴을 따거나 조개를 캐며 부르는 노래에는 <군음>과 <나나니타령>이 있는데, 군음이란 자신의 처지를 한탄조로 읊조리는 소리이고, <나나니타령>은 장단이나 선율선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흥겹고 정겨우며 친근감을 준다는 이야기, 선소리꾼이 선창을 하면 나머지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간단한 소리로 받는 메기고 받는 형식이란 이야기, 단순한 작업요라기보다는 선율구조가 유희요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노랫말과 장단형이 8장단에 맞추는 규칙적인 진행이란 점도 이야기 하였다. 후렴구는 <나나나나 산이로다. 아니 놀고 뭘 할 소냐>를 굿거리 8장단에 부르고 메기는 소리도 노래말과 장단의 말 붙임이 후렴구와 동일해서 8장단에 부른다는 이야기, 메기는 소리의 가사는 상당수가 있으나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적절한 가사를 인용하며 즉석에서 재치있게 만들어 부르기도 해서 즉흥성이 강하다는 점, 여성들의 노래로 평소 생활 속에서 빚어진 가족이나 이웃과의 불편한 관계를 슬기롭게 해소하고 서로 서로 손을 맞잡게 되는 좋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인천 근해의 뱃노래 중에서 어선 뱃노래와 시선뱃노래에 포함되어 있는 <닻감는 소리>, <노젓는 소리>, <바디소리>, <배치기>, <쟁기소리>, <간닦는 소리> 등을 소개하였다. 닻감는 소리란 출항을 위해 닻을 감아 올릴 때 부르는 소리로 작업요의 빠른 손놀림을 위한 특징답게 2~3개의 주요음이 주 구성음이고, 2박 계통의 간결한 리듬과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 노젓는 소리는 2인, 또는 4인이 나누어서 메기고 받는데, 메기는 소리에는 다양한 노랫말이 나오며 상호 격려의 내용이나 신세 한탄조가 많다는 점을 얘기했다. 바디소리란 그물에 든 고기를 배위로 퍼 올릴 때, 부르는 소리로 빠른 동작에 맞추어 빠르게 부른다는 점, 배치기는 배위에서의 선상 배치기와, 선주(船主)네 집 마당에서 펼치는 마당놀이 형태의 배치기가 있다는 점, 후자의 경우에는 북이며 장고, 징, 꽹과리, 태평소 등 신명을 울리는 모든 타악기들이 노래와 춤과 함께 벌어지게 되고 메기고 받는 형태라는 점, 시선뱃노래의 노젓는 소리는 음악적 요소가 풍부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지난주에는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는 <인천근해 갯가노래와 뱃노래>에 관하여 이야기 하였다. 서해안에는 어류자원이 풍부해서 인천 근해에도 어선들의 고기잡이가 활발했고, 썰물에는 마을 아낙네들이 갯가에서 조개 등 어패류를 채취하였는데, 육체적 노동의 과정을 노래와 춤으로 함께 하면서 이겨냈다는 점, 이러한 현상은 어업뿐 아니라 어초(魚樵)에서부터 논밭을 경작하거나 김을 매는 경운(耕耘)을 생업으로 삼는 민중들의 반려가 되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인천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 지역의 어업 관련노래에는 남정네들의 <어선 뱃노래>와 <시선 뱃노래>가 있고, 아낙네들의 <갯가노래> 등이 대표적이란 점, 어선 뱃노래에는 <닻감는 소리>를 비롯하여 <노젓는 소리>, <바디소리>, <배치기>, <쟁기소리>와 <간닦는 소리> 등이 포함되고, 시선뱃노래에는 <노젓는 소리>, 그리고 여성들이 부르는 갯가노래에는 <군음>과 <나나니타령>이 대표적이란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인천 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지난주에는 왕기석 일행의 토막창극 <화초장> 대목을 소개하였다. 흥보가 부자 되었다는 말을 듣고 흥보집으로 온 놀보가 동생이 부자된 내력을 듣고는 당장 제비를 잡으러 가겠다고 일어선다. 그러다가 붉은 화초장을 보고, 빼앗다시피 하여 메고 가면서 신명나게 부르는 노래가 화초장 대목이라는 이야기, 사설이 매우 재미있게 꾸며져 있어 웃음을 연발하게 된다는 점, 같은 대목이라도 박봉술과 박녹주는 부분, 부분 사설치레가 다르다는 점을 얘기했다. 동편제 송만갑의 제자로는 박봉래와 김정문이 대표적인데, 박봉래의 소리는 그의 아우 박봉술에게 이어졌지만, 그 이후에는 확산되지 못하였다는 점, 송만갑의 또 다른 제자 김정문의 소리는 박녹주와 강도근이 이어 받았으며 여류 명창 박녹주의 소리에서는 아니리가 많이 다듬어져 있다는 점, 현재는 박녹주로 이어진 흥보가가 널리 불리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는 <인천근해 갯가노래와 뱃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지난 10월 14(토) 낮 3시, 인천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야외공연장에서는 인천근해의 갯가노래와 뱃노래의 제5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