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25년(대정14년) 10월 15일, 하늘은 맑았다. 일제는 경기도 경성부(당시 표기, 지금의 서울) 남산에 천조대신과 명치왕을 제신으로 하는 '관폐대사 조선신궁(官幣大社 朝鮮神宮)'의 진좌제(鎭坐祭)를 봉행했다. 진좌제란 신사(神社)에서 건물을 지어 영령께 고하는 의식을 말한다. 이날 아침 10시 10분, 의장대가 연주하는 국가의 진혼이라는 음악에 맞춰 다카마츠 시로 궁사(宮司) 이하 제원(祭員)들과 참례자 대표인 이왕가의 이강공(李岡 公)을 비롯하여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부부, 각국 영사, 총독부 고위관료, 사단장 이하 군인, 은행가, 실업가 등이 대례복 또는 정장 차림으로 3,500여명이 모여 신전에 납폐와 공물을 올리며 진좌제를 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날 진좌제에 참석했던 신도학자(神道学者)인 오가사와라 쇼조(小笠原省三, 1892~1970)의 참배 소감이다. 오가사와라는 진좌제 참배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왠지 그림책을 펼쳐 놓은 듯한 풍경이었으나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들었고 부족함이 느껴졌다” 이에 대해 스가 코우지(菅浩二) 씨는 그의 저서 《일본 통치하의 해외신사》에서, 오가사와라를 다음과 같이 평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나는 영산회상과 관련하여 잊지 못하고 있는 경험담을 지니고 있다. 1970년대 중반이다. 당시 서울 음대에 출강하고 있던 나와 이화여대의 김선한(거문고)은 기말 전공시험의 채점을 마치고, 서울 음대 국악과 김정자 교수의 제안으로 함께 식사와 차를 나누며 영산회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주된 내용은 오늘 시험에 치른 학생들의 연주 능력이나 해석이 제각각 달라 지도하는 선생들이 더욱 더 근본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우리 3인과 한양대학의 양연섭(양금) 교수는 함께 정악 공부 모임인 【정농악회】를 조직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국악계의 원로 사범이었던 김천흥(해금), 김성진(대금), 김태섭(피리, 장고), 봉해룡(단소), 이석재(피리, 장고) 선생 등을 모시고, 정례적으로 영산회상 합주를 주 1회 정도 공부한 적이 있다. 겨울에 시작된 공부가 3달 정도 지날 무렵, 우리 젊은이들은 노 선생들과 함께 영산회상 전곡을 국립극장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로 하고 연습계획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젊은 교수들은 ‘매매일의 일정이 바쁘다.’, 또는 ‘이미 다 배워서 잘 알고 있는 곡이며, 현재 학생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동물모양 띠고리[動物形帶鉤]는 옷을 여밀 때 쓴 갈고리 모양의 허리띠에 딸린 것입니다. 우리나라 원삼국시대에 주로 사용했으며, 한쪽은 갈고리모양의 걸쇠, 다른 한쪽은 원형 혹은 타원형 고리로 되어 있어 서로 걸게 만들었습니다. 가죽이나 천으로 된 허리띠는 땅속에서 썩어 남아있지 않고 금속 부속구만 현재까지 전합니다. 우리나라의 동물모양 띠고리는 대부분 청동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동물모양 띠고리가 사용된 원삼국시대는 철기가 보급되며 청동기 사용은 줄어든 시기였으나, 일부 장신구나 작은 부품은 계속 청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제작 공방 터나 도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띠고리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합범(合范), 즉 두 개의 거푸집을 이용하여 주조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동물모양 띠고리는 걸쇠를 동물모양으로 장식한 것이 특징입니다. 앞면에는 동물의 옆모습을 표현하였고, 오목한 뒷면에는 가죽띠와 연결하기 위한 고정쇠를 달았습니다. 동물의 가슴 앞쪽으로 끝이 구부러진 긴 막대를 연결하여 걸쇠를 만들었습니다. 동물 장식의 형태에 따라 호랑이모양 띠고리[虎形帶鉤]와 말모양 띠고리[馬形帶鉤]로 구분합니다. 호랑이모양 띠고리 호랑이모양 띠고리의 호랑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인생에서 88살이 가장 좋은 때다.” 라면서 99수를 누리다가 지난 11일 입적한 일본의 비구니 스님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寂聴)! 서점 어딜 가나 세토우치 자쿠초 스님의 책들은 진열대 가장 앞줄에 놓이곤 했다. 심지어는 나리타공항이나 간사이공항 내의 기념품 겸 서점 코너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어 나 역시 가끔 세토우치 스님의 책을 사서 읽었다. 그의 책은 읽기 쉽고, 읽는 순간 고개가 끄떡여진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의 웃는 모습은 해맑다. 해맑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하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금새 기분이 좋아질 만큼 밝은 기운을 선사한다. “현대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로 인기를 끌어 반전·평화를 호소하는 사회 활동에도 정력적이었던 작가이자 승려, 문화 훈장 수상자인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寂聴)씨가 9일,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99살이었다. 토쿠시마시 태생, 이름은 하루미로 불렸다. 도쿄 여자대학 재학 중에 결혼해, 졸업 후에는 남편의 근무처였던 북경으로 건너갔으며, 패전으로 1946년에 귀국, 이후 남편의 옛 제자와 사랑에 빠져 어린 외동딸을 남겨두고 교토로 옮겨 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계면조는 우조(羽調), 또는 평조(平調)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슬픈 느낌이 들게 하는 음조직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영산회상은 시김새, 형식, 장단, 기보체계, 변천과정, 향제 줄풍류의 전승현황, 풍류명인과 전승계보, 풍류문화 등을 다양하게 살펴야 이론적 연구를 위한 자료로서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영산회상을 위시하여 정악의 매력이 어떤 점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곡가 알렌 호바네스,(Alan Hovhness)는 일찌기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데, 당시 영산회상을 비롯한 정악(正樂)과 가곡(歌曲) 등, 한국 정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그 소감을 이렇게 피력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정악곡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누구나 그 선율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그윽하고도 유장한 젓대 독주의 <상령산>이나 영롱한 단소 독주의 <세령산> 가락을 듣거나, 혹은 여러 악기가 엎치락뒤치락 어우러져 가며 장려하게 엮어가는 합주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어느덧 선율의 매혹에 홀려 이내 현실을 잊고 끝없는 환상의 피안(彼岸)에 몰입하기 마련인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11월 22일)은 24절기 가운데 스물 째 절기로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입니다. 눈이 내려 추위가 시작되는 때여서 겨울 채비를 합니다. 그러나 한겨울이 아니어서 아직 따뜻한 햇볕이 비치므로 “소춘(小春)”이라고도 하지요. 이때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추워지므로 사람들은 김장하기 위해 서두릅니다. 또 여러 가지 월동 준비를 하는데 무를 구덩이에 묻고,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며 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하고, 겨우내 소가 먹을 볏짚을 모아두기도 하지요.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소설은 ‘손돌이 죽은 날’이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임금이 배를 타고 통진과 강화 사이를 지나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어 배가 심하게 흔들렸고 임금은 사공이 고의로 배를 흔들어 그런 것이라고 사공의 목을 베었습니다. 사공은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 사공의 이름이 손돌이었지요. 그래서 해마다 그날이면 큰바람이 불고 날씨가 찬 데, 이는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원혼 때문이라고 하여 강화에서는 이날 뱃길을 나가지 않습니다. 이때의 추위를 손돌추위, 그 바람을 손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현대인의 삶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표준시간이 없었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요? 인류가 처음 활용한 자연시계는 해였습니다. 하지만 해만 올려다보고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림자의 길이로 시간을 알 수 있는 해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해시계는 해와 그림자를 만드는 막대기만 있으면 되니 복잡하지도 않고 지구가 자전하는 한 고장 날 일도 없었습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휴대가 가능할 정도로 작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기계식 시계가 나오기 전까지 다양한 문명권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습니다. 더 많은 백성이 시간을 알게 하라, 오목해시계 조선 세종 때 대표적인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 ‘하늘을 떠받드는 가마솥[仰釜]’과 같이 오목한 모양의 해시계라는 뜻입니다. 보통 해시계는 해그림자가 표시되는 시반면(時盤面)이 평면인 경우가 많은데, 앙부일구는 특이하게도 시반면이 오목한 반구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구’는 ‘해그림자’라는 뜻으로 해시계를 이르는 말입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앙부일구 곧 오목해시계는 세종 16년(1434) 10월 2일 혜정교(惠政橋)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26년 전인 1895년 10월 8일,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된 편지가 일본에서 발견되었다고 11월 16일치 아사히신문이 크게 보도했다. 이날 공개된 편지는 단순한 시해사건 내용이 아니라, ‘자신들이 궁궐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자백의 편지라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자신들이 왕비를 죽였다’고 자백한 사람은 당시 조선의 영사관보였던 호리구치 구마이치(1865~1945)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호리구치가 자신의 고향인 니가타현 나카도리무라(현 나가오카시)에 사는 친한 친구이자 한학자인 타케이시 사다마츠에게 1894년 11월 17일자로부터 사건 직후인 1895년 10월 18일자까지 보낸 8통의 편지다. 이 편지 가운데 여섯 번째가 명성황후 시해 다음 날인 1895년 10월 9일자다. 이 편지에는 사건 현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진입은 내가 맡았다. 궁궐 담장을 넘어 황후침전에서 왕비를 시해했다’ 라고 하면서 '생각보다 시해가 간단해 매우 놀랐다'라는 느낌까지 적고 있다. 편지에서 밝힌 이른바 ‘왕비 시해 그룹’은 일본 외교관, 경찰, 민간인 등이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이 편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영산회상이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악곡으로서의 값어치도 크지만, 국악의 이론적 연구 자료로서도 값어치도 크다고 이야기하였다. 일반적으로 영산회상은 3음, 혹은 4음 음계의 계면조(界面調) 음악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국악의 계면조란 무슨 뜻이고 음 구성은 어떠한가?' 하는 이야기를 해 본다. 전통음악의 음계는 크게 평조와 계면조로 구분된다. 평조는 쏠-라-도-레-미와 유사한 음계이고, 계면조는 라-도-레-미-쏠로 구성된 음계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 대표적인 음악이 조선 초기의 종묘제례악이나 전통가곡과 같은 음악이다. 종묘제례 때의 음악은 크게 두 종류의 음악을 연주하는데, 하나는 평조 음계로 지어진 <보태평>이고, 다른 하나는 계면조로 지어진 <정대업>이라는 음악이다. 그런데 평조는 예나 지금이나 5음을 유지하고 있지만, 계면조의 음악은 5음의 구성에서 제2음을 생략하여 4음 음계로 변화되어 쓰이고 있어서 다소 달라진 것이다. 국악의 음계를 논의할 때, 자주 쓰이는 우조(羽調)란 말이 있는데, 이는 음계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웃조, 곧 높은 조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금강산을 바라보다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은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봄의 대상이 모두 표현된 특별한 그림입니다. 그림 오른편에는 단발령에 서서 저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단발령은 금강산 여행이 시작되는 고개로, 이 고개에서 바라본 광경이 너무나 황홀해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가 승려가 된다는 뜻의 이름입니다. 정선은 단발령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길과 그곳에서 느낀 강렬한 첫인상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화면 왼쪽 위에 그려진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는 하얗게 칠해져 은빛 수정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정선은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당시의 벅찬 감동을 담고자 근경과 원경 사이를 과감하게 생략했습니다. 정선의 그림은 조선 말기 학자인 이상수(李象秀, 1820~1882)의 글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늘이 드높은 가을날 저녁볕이 동쪽을 비출 때, 저 멀리 하얗게 솟아오른 금강산을 바라보면 마음이 흔들리고 정신이 황홀하여 결국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다고 한다. 봉우리마다 하얗게 눈이 내린 듯하고 그 바위의 생김은 마치 늙은 신선들 같아, 구슬 관을 쓰고 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