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약사불(藥師佛)’은 과거 아직 부처가 되지 않은 보살이었을 때 12가지의 소원을 세웠습니다. 아픈 자의 질병을 치유하고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하게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랐고, 반드시 그 바람을 이루리라 맹세했습니다. 약사불은 오랜 시간 쌓은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고, 간절했던 서원(誓願)으로 인해 병든 자들을 구원하는 부처로 오랜 시간 신앙이 되었습니다. 금동불, 석불, 마애불(암벽에 새긴 불상), 목조불 등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꾸준히 조성되었으며, 그의 모습은 보물(옛 지정번호 보물 제2012호)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처럼 불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보물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는 약사불과 그의 두 협시보살을 그린 조선시대 불화입니다. 높이 60c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적갈색 화면 위에 부처와 두 보살의 찬란한 모습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금니(금박 가루를 아교풀에 갠 것)로 그려져 있습니다. 보상화(寶相華)와 연꽃무늬로 장식된 높은 수미단 위에 금니로 섬세히 그려진 연꽃이 활짝 피었고, 그 위로 약사불이 앉았습니다. 바탕재가 훼손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다리 위에 올린 왼손에는 약사불의 상징인 약합(藥盒)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갓 올린 잎새를 달고 별 바라보던 가지 끝에 곡우(穀雨) 나리시면..... 겨우내 할퀴던 바람이 첫사랑의 숨결처럼 달콤하고 별빛 부서지던 잎새, 촉촉한 입술을 반긴다. 곡우 발길 아래서 부정한 사람은 악귀를 몰아내고 볍씨를 담그는 농부의 손은 조심스럽다.” 홍순천 시인의 시 ‘곡우(穀雨)’ 일부입니다. 내일은 24절기의 여섯째로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穀雨)’지요 “곡우(穀雨)는 봄비(春雨)가 내려 백곡(百穀)을 기름지게 한다.”라고 하여 붙여진 말인데 곡우 무렵이면 못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농사철로 접어듭니다.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와 같은 농사와 관련한 다양한 속담이 전합니다. 시골에서는 못자리할 볍씨 담그기 따위로 바쁠 때인데 볍씨 담그기 전날은 부정 탈까 봐 부부가 잠자리도 하지 않습니다. 또 곡우 무렵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르는 때인데 이때 사람들은 곡우물을 마십니다. 곡우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따위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인데 몸에 곡우물이 좋다고 해서 예전부터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에서는 깊은 산 속으로 곡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춘천시립국악단》 이유라 예술감독은 어려서부터 무용을 배우다가 안비취 명창 문하에서 경서도 소리를 익혔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베풀어 준 것처럼, 이 감독도 그의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여 전국 각 대학에 진학시켰고, 젊은 명창들을 많이 배출해 냈다. 2000년에는 본격적으로 <춘천국악원>과 <강원소리진흥회>를 만들어 강원도의 소리를 발굴, 채록, 연구해 왔다는 이야기는 지난주에 한 바 있다. 이유라 감독이 꿈꾸는 강원소리의 본질은 강원도의 자연을 노래하고 있거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서가 그들이 부르는 노랫말에 담겨 있어야 하며 그 노랫말들은 강원도의 환경이 그들에게 만들어 준 가장 강원도다운 메나리조에 얹힌 가락들로 그 땅에 살면서 오랫동안 함께 불러온 전래 민요가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 감독은 이러한 옛 소리가 불리고 있는 지역이 있다거나, 또는 이러한 소리를 흥얼거리는 주민이 거주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원근을 가리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갔다고 한다. 춘천 시내는 물론이고, 양구, 정선, 평창, 철원, 인제, 횡성, 홍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960년대부터 춘천의 국악회, 국악협회, 국악연구원, 등에서 악(樂), 가(歌), 무(舞)의 강습활동이 펼쳐졌으나, 민요창 분야는 전문 강사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교장을 지낸 연구원장이 직접 서울의 안비취 명창을 찾아가 강사 추천을 요청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안 명창은“ 가르치는 것도 공부”라는 말로 이유라를 설득하였다고 한다. 춘천과 인연을 맺게 된 지 30년이 지난 현재, <춘천시립국악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이유라 명창은 어떻게 경서도 민요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이유라의 소리 인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 부친의 권유로 무용학원을 다녔고, 춤을 추면서 춤사위의 속 가락에 매료되어 중학생 때에 안비취 명창 문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유라에게 경서도 소리를 지도해 준 안비취 명창은 일제강점기, 경서도소리의 거목으로 이름이 높았던 최정식(1886-1951)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최정식은 「금강산타령」이나, 「풍등가」 등을 작사 작곡하였고, 서도 잡가, 제전(祭奠)을 축소 개편하여 세련되게 변화시켰던 소리꾼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펴낸 1976년도 《문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다섯째 ‘청명(淸明)입니다. 청명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하루 차이인 내일은 명절의 하나로 지냈던 ’한식(寒食)‘입니다. 이 ’청명‘과 ’한식‘은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이어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에 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는데 이를 “사화(賜火)”라 하며, 임금은 이 불을 문무백관과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줍니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고 하지요. 청명 무렵에는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논농사의 준비 작업으로 봄밭갈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때는 가래질 말고도 논밭둑 다지기, 보리밭 매기, 푸성귀 씨앗 뿌리기 같은 일들을 하느라 일손 구하기가 힘들지요. 이날 제주도에서는 청명이나 한식은 땅에 있는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 날이어서 특별히 택일(擇日)하지 않고도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移葬)을 해도 좋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1945년 광복 직후, 국립국악원의 전신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가 춘천에서 공연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은, 당시의 사정으로는 매우 이례적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춘천지방 지역 사람들이 전통음악을 대하는 열정이 대단했음을 짐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실 지금도 재미없는 음악으로 치부되고 있는 정악(正樂)에 대한 반응이 이 지역에서는 생각 밖으로 뜨거웠다는 점도 이채롭다. 1962년에 <춘천국악회>가 창립되고, 각급 교육기관에 국악취타대나 농악대, 관현악단 등이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뒤를 이어 한국국악협회 강원지부가 탄생하는가 하면, <강원국악연구원>도 설립되어 악(樂), 가(歌), 무(舞)의 강습활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노래 가운데 가곡이나 가사, 시조의 경우는 지역 자체에서 또는 국악원의 협조가 이루어져 그런대로 진행되었지만, 일반 대중이 가장 바라고 원하던 민요창 분야는 전문 강사를 확보하지 못하여 협회의 운영자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국악의 보급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강습활동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당시 춘천지역 내에는 민요창을 지도할 만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 주는 춘천(春川)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써 왔다. 관찰부(觀察部) 행사는 정가 중심인 반면, 일반에서는 속요(俗謠)로 그 소리제는 경토리가 가미된 메나리조였다는 점, 속요에는 <노동요>, <상여소리>, <아리랑>류가 대표적이며 춘천의 옛 마을 이름과 특산물을 노래하는 「큰 애기 노래」에는 <장사타령>이나 <장타령> 등이 유명하다는 점, 그 외에 일반 민요로는 서울 경기의 <노랫가락>이나 <창부타령> 등도 포함되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1930년대 기록에 춘천정악회(春川正樂會)라는 음악단체가 조직되어 조선악 연구발표회를 하였는데, 강연, 성악, 기악이 중심이었으며 그 음악적 성격은 정악(正樂)을 표방하고 있었다고 한다. 벌써 정악회라는 단체의 이름에도 그 음악적 색채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춘천의 정악활동은 일제강점기, 아니 조선이나 고려 이전으로 올라가 춘천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삼국시대부터 이미 수많은 문사(文士)가 은거하거나, 경관이 빼어난 곳을 찾아서 춘천의 곳곳에 여러 작품을 남겼다는 점으로도 충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천시립국악단》의 연주회 평가와 관련하여 단원의 증원 문제, 공연의 홍보와 프로그램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춘천시청과 춘천의 문화예술인, 악단의 관계자, 그리고 국악을 사랑하는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예로부터 춘천은 강원도의 중심 도시이면서 특히 산수(山水)의 경관이 빼어나서 많은 사람이 발걸음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반의 도시로 유명하다. 이 도시의 역사적 배경을 인터넷 자료나 향토 연구자들이 남긴 결과물들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은 본래 고대 부족 국가인 맥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그 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차례대로 점령하게 되는데, 백제시기에는 주양(走壤), 고구려때에는 수추성(須鄒城), 신라가 점령하던 시기에는 우수주, 수약주(首若州), 삭주(朔州), 광해주(光海州)등으로 부르다가 고려시대에 와서 춘주(春州), 그리고 조선시대부터 현재와 같은 춘천(春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각 도(道)의 으뜸 행정관청을 감영(監營)이라 불렀는데, 그 우두머리 관찰사(觀察使)가 업무를 보던 곳이어서 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123년 서긍(徐兢, 태어나고 죽은 때 모름)은 송 휘종이 파견한 국신사 일행 가운데 한 명으로 한 달 남짓 고려에 머물면서 공식일정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때 고려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그에 대한 면모를 기록한 것이 바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입니다. 이 책의 그릇 부분에는 고려의 다양한 그릇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특히 ‘도로조(陶爐條)’의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산예출향도 비색이다. 위에는 짐승이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봉오리가 벌어진 연꽃무늬가 떠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가운데 이 물건만이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그 나머지는 월요의 옛날 비색이나 여주에서 요즘 생산되는 도자기와 대체로 비슷하다.” 위의 내용은 고려시대 도자공예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산예출향(狻掜出香)'은 사자가 장식된 향로를 말하는데, 당시 서긍은 연화형(蓮花形) 향로 뚜껑 위에 사자가 장식된 것을 보고 이처럼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색은 비색(翡色)이며 매우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졌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위 기록에 맞는 가장 비슷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청자 사자장식 향로‘입니다. 이 향로는 뚜껑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서울, 경기지방의 <본조 아리랑>은 1896년, 헐버트(Hulbert)가 채보한 <구아리랑>을 고쳐 만든 아리랑이라는 이야기, 또한 <긴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이나 <구아리랑>과는 노랫말, 가락, 장단형, 빠르기, 분위기 등이 서로 다르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 이야기는 춘천시립국악단의 발전 가능성이 기대된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경기 및 서도 지방의 전통 민요를 전공하고 있는 소리꾼들은 여러 지역의 다양한 소리를 잘 부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의 경우는 그렇지 못한 편이다. 마치 한국어를 전공했다고 해서 각 지역의 언어, 예를 들면 경상도나 전라도 지역의 고유한 언어, 또는 충청도나 강원도, 제주도의 독특한 지방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경우와 같기 때문이다. 각 지방의 고유한 언어가 익숙해질 수 없는 경우처럼, 민요창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래서 발성법이나 표현법, 시김새의 처리 등등이 서로 다르기에 전공 분야 외에 소리는 제대로 잘 부르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곧 경기소리에 능한 사람이 서도소리를 제대로 부르기 어려운 법이고, 서도소리를 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