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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잔치마당>, 사회적기업 크라우드펀딩대회서 대상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8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은 창단 30돌 기림행사를 2022년 7월 2일, 부평 아트센터 <해누리> 극장에서 가졌다. 창단 5년이 되던 1997년에 ‘부평풍물대축제’를 발굴, 기획, 연출하게 되었고, 2004년도에는 공연장을 개관하였다. 공연장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단순하게 건물의 면적을 넓혔다는 의미가 아니다. 발표할 기회가 얻지 못하는 지역의 국악인들이나 단체에게 무대, 곧 발표 마당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국악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발판이었던 것이다. 그 뒤, 2010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서광일 대표와 단원들이 초창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사업을 꼽는다면, 뭐니뭐니 해도 전국 처음 도심에서 연 <부평 풍물대축제>가 아닐까 한다. 창단 초창기인 1997년, 부평지역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이를 발굴하게 되었고, 특징을 살린 축제로 기획, 연출하면서 부평이라는 산업도시를 풍물과 문화의 도시로 성장, 발전해 가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전혀 공업이나 산업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풍물과 같은 전통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음도 확인하였던 것이다.

 

 

원래 풍물은 순수하게 노동과 관계가 깊은 음악이며 춤이고 노래였다. 씨앗 뿌리고 추수하는 농사일에는 절대적이었고, 산에서 나무를 베는 작업이나 새집을 짓기 위해 집터를 다지는 작업에도,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귀항을 하면서도 풍물은 모두를 하나로 묶는 기쁨의 대상이며 희망의 노래였다.

 

서 대표와 단원들은 <부평풍물 대축제>를 통해 부평구 22개 동 단위로 조직된 풍물단의 회원들, 약 600여 명을 지도하게 되었으며 회원들은 꽹과리와 장구, 그리고 북과 징을 두드리며 부평대로를 즐겁게 행진하였다고 한다. 박자를 맞추기 위해 또는 호흡을 맞추기 위해 그들은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를 삼채장단에 맞추어 치면서 지난날의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을 휘모리장단으로 날려 버렸다는 것이다.

 

올해로 26년을 맞게 되는 ‘부평풍물 대축제’는 문체부 문화관광 축제로 뽑혔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뽑은 지역의 대표 예술축제로 선정되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연희 축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소개한 바와 같이 연희집단 <잔치마당>:은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의 인증을 받았다. 이러한 결과는 문화예술 분야, 그 가운데서도 조명을 받지 못하고 살아오던 국악분야 단원들의 처지에서는 여간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장을 비롯한 잔치마당의 단원들이 안정적 생활기반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토대 위에서 단원들은 수준 높은 창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인천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의 각 시, 도 지역으로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전통예술의 유통과 상품화로 자생(自生)의 기초를 마련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단원들은 지금도 <잔치마당> 현관 로비에 걸려 있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긍지와 자부심이다. 그리고 사명감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귀를 마음속에 새기며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이 정신은 잔치마당을 결성할 당시의 창단 이념으로도 통하고 있다. 아래는 서광일 대표의 회고담 한 대목이다.

 

“2016년도였어요. 당시 문화계에 블랙리스트 사건이 번졌지요. 우리 단체도 그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와 단원들은 결코 예술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가지 우리에게 다행한 일이라 할까 희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당시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크라우드 펀딩(불특정 다수로부터 특정 목적을 위해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우리 단체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그동안 우리가 해 온 방법들을 소개하여 영예의 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작은 일에 더욱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러면 반드시 더 큰 대가(代價)가 기다리고 있다는 교훈을 얻었던 것입니다.”

 

작은 예술단체로 시작했던 <잔치마당>은 어느덧 사회적기업으로 뽑히는 등, 빠른 성장을 거듭하는 단체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업자금을 공공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는 안고 있다. 공공지원금이란 국가나 시(市), 도(道)로부터 개인이나 단체가 예술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받는 제도로써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에 적극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마련된 사회적 장치다.

 

 

그런데 사회적기업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자, 공공지원금에 대한 경쟁률은 치솟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매번 지원사업에 뽑힌다는 보장도 어렵고, 따라서 지속적인 수입 창출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혹 지원사업에 뽑힌다고 해도 사업자금 전액을 지원받기는 어렵기에 부담으로 남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타계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서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곧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성공하게 되면 정부의 지원 없이도 민간의 도움을 받아 사업 진행이 가능하나, 경쟁률이 높은 것이 문제다. 그러나 서 단장은 풍물의 의기로 뭉친 고마운 단원들을 위해서 반드시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스스로 다짐과 결의를 보인다. 앞으로의 기대가 크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