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차별과 빈곤에 맞서온 인권 변호사 우츠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 73살) 씨는 요즘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의 피해회복이 문제의 핵심인데 당사자 없이 국가 간에 전부 결정을 내려 버렸습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진지하게 반성하며 행동으로 나타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을 정부와 국민이 함께 해야합니다.” 후덕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의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는 지난 8월 24일 YTN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베정권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반발해 수출규제와 백색 국가 제외 조치를 단행한 이후 이른바 양심적인 일본의 지식인 들은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처럼 저마다 ‘아베정권의 철딱서니 없는 처사’에 강한 불만과 질책을 쏟아내고 있다. 에히메현(愛媛県)의 남서부에 있는 세이요시(西予市)에서 태어난 우츠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1946년생으로 그가 태어난 시기는 패전으로 일본 전역이 폐허 더미였을 시기였다. 그가 태어난 고향 아케하마쵸(明浜町)는 반농반어(半農半漁) 지역으로 그는 9살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오이타현(大分県)으로 이사했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상옥명창이 불러준 장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예능보유자로 어려서부터 지역의 농요라든가, 상여소리, 일반 민요창 등을 동네 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바탕위에 벽파 이창배 스승으로부터 다양한 경기소리를 배워 남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소리꾼이라는 이야기, 그가 불러주는 소리 속에는 힘이나 음색, 강약의 조절이 자연스럽기에 그렇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에 관한 곧 여기에 들어있는 소리와 춤, 놀이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경복궁 지경다지기>라는 말에서 경복궁(景福宮)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의 이름이고, 지경다지기란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경복궁 지경다지기> 소리란 경복궁을 지을 때, 땅을 다지며 부르던 노래와 동작이나 춤 등을 가리키는것이다. 이것을 보존하고 있는 박상옥 명창은 제자들과 함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바로 경복궁 지경다지기 소리나 춤, 놀이 과정 등을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친일단체 가운데 ‘조선신궁봉찬회(朝鮮神宮奉贊會)’라는 것이 있다. 이 단체는 도쿄에 메이지신궁(明治神宮) 건립계획(1915)이 확정되면서 건축비 모금을 위해서 일본에 명치신궁봉찬회가 결성되자 조선지부로 1933년에 설립되었다. 이 보다 앞서 《순종실록부록》 8권, 순종 10년 1월 10일(1917) 기록에는 “양궁(兩宮)에서 명치신궁(明治神宮)의 봉찬회(奉贊會)에 일금 1만 2,000원을 기부하였다.(창덕궁(昌德宮) 7,000원, 덕수궁(德壽宮) 3,000원, 왕세자 2,000원이다.)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메이지신궁 건립에 조선의 돈이 일찍부터 흘러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궁봉찬(神宮奉贊)은 메이지신궁이 완성된 이래 곧 100년을 앞둔 지금도 유효하여 메이지신궁 누리집에는 “메이지신궁은 1921년 메이지왕과 부인소헌왕후를 모시는 사당으로 이제 곧 100년을 맞이합니다. 많은 봉찬(기부)을 바랍니다.”라고 써 놓았다. 기부금을 모으는 목적은 메이지신궁진좌100주년기념사업자금(明治神宮鎮座百年祭記念事業資金)이라고만 써 놓았을 뿐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밝혀 놓고 있지 않다. 금액은 불문하며 5천 엔(우리돈 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뒷산타령과 그 뒤로 이어지는 자진산타령 이야기였는데, 앞산타령이 길게 뻗는 비교적 곧은 소리라면 뒷산타령은 다양한 시김새를 구사해서 맛깔스럽게 부르는 노래로 슬픈 느낌과 염불조의 느낌이 있다는 점, 뒷산타령의 도입부를 독창자가 낮은 음으로 내면, 제창자들은 7도 위로 받는 점이 특이하다는 점, 뒷산타령도 <메기고 받는 형식>인데, 받는 후렴구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잦은산타령은 만(慢)-중(中)-삭(數) 중에서 삭에 해당되는 노래라는 뜻, 사설 내용도 다양한 편이어서 명산의 경개와 함께 춘향가나 심청가, 공명가나 초한가에 나오는 가사의 일부를 인용하여 쓰고 있다는 점, 산타령은 정가(正歌)나 무악(巫樂), 잡가(雜歌)나 민요가락과도 또 다른 독창적인 창법으로 대중들이 즐기는 소리란 점, 특히, 높고 시원한 목청과 다양한 발림, 그리고 장단형으로 대중을 동화(同和)시켜 온 대중의 독특한 소리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번에 무계원 특별 공연에 초대되어 박상옥 명창이 불러준 장기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는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예능보유자로 동 종목의 전승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패전 뒤 일본에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가 12만 명에 달했다고 현대비지니스 신문은 지난 8월 13일자 기사에서 밝혔다. 이 가운데 부모를 잃고 길거리에서 부랑아로 떠돈 어린이는 35,000명으로 추정된다고 《아사히연감(朝日年鑑, 1947년)》을 인용하여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 부랑아의 말을 빌려 “일본의 종전기념일(終戦記念日)은 1945년 8월 15일이다. 하지만 부랑아들에게는 그날이 전쟁의 시작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전쟁 말이다.”고 했다. 부랑아 대부분은 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 겨울부터 여름에 걸쳐 생겼는데 도쿄, 센다이, 오사카, 아이치, 후쿠오카 등 미군의 공습으로 부모를 잃게 되어 생겼다고 했다. 특히 1945년 3월 10일, 도쿄대공습 때 도쿄가 불바다로 변했으나 아직 날씨가 쌀쌀하여 한기를 피하고자 수많은 부랑아들이 도쿄 우에노역 지하도로 몰려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우에노역에는 노숙자들이 몰려있지만 당시에 이곳에는 7,000명 정도가 지내고 있었다고한다. 부랑아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우에노역에는 너무나 사람이 많아 눕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그 비좁은 공간에서 해결해야했다고 하니 패전 후 일본 도쿄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의 두 번째 악곡, 앞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산타령의 <앞>이 뜻하는 의미는 서울의 앞에 있는 여러 산을 노래한다는 의미, 또는 순서상 앞에 부르기에 붙여진 이름이며, 그 시작은 모갑이의 선창으로 자유롭게 시작하고 여럿이 받는 형식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메기는 소리는 가장 높은 음으로 질러내며 독창자의 다양한 목구성과 다양한 기교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 본절 1의 <과천 관악산>으로 시작할 때, <과>를 생략하고 <천>을 관에 붙여 <천관> 그리고 <악산>으로 불러 그 의미가 통하지 않게 부르는데, 성악곡이란 노랫말에 곡을 붙인 것이기에 노랫말의 전달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앞산타령에 이어 뒷산타령과 그 뒤로 이어지는 자진산타령 이야기를 하겠다. 뒷산타령은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그 뒤편에 있는 산을 부른다고 해서 또는 앞산타령을 먼저 부르고 난 뒤, 이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앞산타령이 길게 뻗는 비교적 곧은 소리인 것에 비해 뒷산은 글자마다 주무르듯 가락을 넣거나 다양한 시김새를 구사해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틀 뒤 8월 9일은 74년 전, 일본의 나가사키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날이다. 8월 6일의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는 상상할 수 없는 위력의 원자폭탄이 떨어져 두 도시는 쑥밭이 되었다. 당시 나가사키시의 인구 25만 명 가운데 14만 9천 명이 죽거나 다치고 건물은 36%가 파괴되었다. 해마다 일본은 원폭일(8월 9일)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하는 “피폭자 위문, 평화 사수” 같은 얘기를 언론들이 빠지지 않고 기사로 내보낸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는 “왜 피폭자가 생겼는가? 왜 원자폭탄을 맞아야 했는가?”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부적절하다. 이러한 보도는 전후(戰後) 74년간 지속되고 있다. 실제 나가사키에 있는 평화자료관에 가보아도 “원폭을 당한 이유”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반면 당시 일본인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만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러일전쟁ㆍ중일전쟁ㆍ세계 2차대전 등 온갖 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공포와 두려움으로 내몰던 일본은 분명 전쟁의 가해자다. 그런데도 8월 9일 원폭일만 되면 갑자기 피해자의 입장으로 돌변한다. 또 한 가지 잊지말아야 할 것은 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을 구성하고 있는 악곡 가운데 대표적인 <놀량>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선소리는 놀량이 대표적인 소리인데, 그 뜻은 놀 작정, 놀 생각, 놀 의향 등으로 풀기도 한다는 점, 놀량의 노랫말에는 의미 없는 가사의 입타령이 많은 편이며 뜻을 알 수 있는 사설은 후반에 나오고 있다는 점, 장단도 일정한 빠르기나 형태로 반복되지 않고, 소리에 따라서 2박, 3박, 4박 등 다양하다는 점을 말했다. 또 놀량의 선율 형태에는 솔-라-도의 상하형 선율과 높은 음역에서는 미-솔-라-도의 상행, 또는 도-라-솔-미의 하행선율이 활기차게 나타난다는 점, 서도의 놀량은 가사의 의미가 분명하고 서도식의 요성(搖聲)창법과 비교적 빠른 박자로 진행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앞산타령 이야기로 이어간다. 첫 곡 놀량에 이어 산타령의 두 번째 악곡이름이 앞산타령이고, 세 번째 악곡이 뒷산타령이다. 앞산타령이란 이름에서 <앞>이 뜻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벽파는 《가창대계》에서 서울을 두고 앞에 있는 여러 산을 부르고 있어서 <앞산타령>, 그 뒤에 둘러있는 여러 산을 부른 것이 <뒷산타령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장마가 개고 나면 30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기상청이 연일 보도하고 있다. 벌써부터 더위가 걱정이다. 이 불볕더위를 시원하게 해주는 상징물은 무엇일까? 에어컨 같은 전기제품 말고 여름철의 상징물을 꼽으라면 부채라든가 팥빙수, 시원한 수박 같은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볕더위 속에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일본에 있는데 바로 풍령(風鈴, 후우린)이 그것이다. 풍령은 집안의 처마나 문 틀 위 같은 곳에 달아두는 데 바람이 살랑거리면 딸그랑딸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려 마치 물방울 소리처럼 느껴져 시원한 느낌을 준다. 대개 풍령의 재료가 유리이거나 도자기 따위라 맑고 투명한 소리가 난다. 풍령(風鈴) 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가마쿠라(1185- 1333) 말기에 만들어진 《법연상인행상회도(法然上人行状絵図)》라는 책으로 당시에는 풍령(風鈴) 보다 풍탁(風鐸)이란 말이 널리 쓰였으나 이 책에서는 풍령(風鈴)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풍탁(風鐸)이란 고대로부터 악귀를 쫓기 위한 것으로 주로 청동으로 만들었다. 고대에는 신을 부르거나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서 방울이나 종과 같이 소리를 내는 도구를 즐겨 사용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야기 한 답교놀이는 다리[脚]로 다리[橋]를 건너는 놀이, 곧 사람이 물 위에 놓인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면 한 해 다리 병(病)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성행했던 놀이였다. 이 놀이에는 인근의 소리패들이 모두 모여 함께 산타령을 불렀는데, 이제 그 전문적인 소리패들의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다행이 왕십리 소리패들의 가락이 벽파에 의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는데, 그 특징은 활달한 창법이나 다양한 장단감, 건전한 사설의 내용 등이며 산타령의 전승과 활성화 문제를 국악계가 고민해야 한다는 점과 관리감독청인 ‘문화재청’에서도 비인기 종목에 대한 특별 육성책을 강구해 주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산타령을 구성하고 있는 악곡 중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놀량>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한다. 경기지방에서 불리어 온 산타령의 구성은 제1곡이 <놀량>, 제2곡 <앞산타령>, 제3곡 <뒷산타령>, 제4곡 <자진산타령>의 4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 형식의 합창곡이다. 여기에 시간을 채우기 위해 <개구리타령>이나 <방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