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 남자가 있다. 남자의 이름은 칸다타. 이 남자가 불지옥에서 허둥대고 있을 때 지상에서 부처님은 이 남자를 응시하고 있다. 부처님이 연꽃 향이 물씬 풍기는 연못 밑을 우연히 내려다보니 발아래 저 멀리 지옥이 훤히 보였다. 지옥은 아비규환 이었다. 서로 물어 할퀴고 뜯고 난리도 아닌 가운데 어디서 낯이 익은 남자 칸다타를 발견했다. 가만있자 이 남자를 어디서 보았더라. 그렇지 이 남자가 지상에서 거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일 뻔한 상황에서 이를 살려준 것을 부처님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불쌍한 지옥의 칸다타를 위해 부처님은 은실로 된 거미줄 같이 가는 줄을 지옥으로 내려 보냈다. 칸다타는 기쁜 나머지 이 줄을 잡고 지상으로 오를 꿈에 젖어 잠시 행복했다. 있는 힘을 다해 줄을 움켜쥐다가 힘이 빠져 잠시 발아래를 보니 개미떼처럼 몰려드는 죄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한결같이 칸다타가 움켜쥔 거미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순간 칸다타는 기겁을 했다. 이 많은 인간들이 거미줄에 매달리면 줄은 곧 끊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영영 지옥에서 허덕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하였다. 그리하여 몰려드는 죄인들을 향해 고래고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 좌창 중, <십장가-十杖歌>의 앞부분, 곧 1~2대의 매를 맞고 항거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십장가>란 판소리 춘향가 중 한 대목으로 새로 부임해 온 사또가 춘향에게 수청을 요구한 것이 거절되자, 10대(十)의 매(杖)로 폭력을 행사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분을 발췌하여 경기창법으로 만들어 부르는 노래이다. 이 대목은 춘향가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인의 정절(貞節)이 권력에 굴복되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춘향은 끝까지 인내하며 정절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매질을 당할 때마다 한 대를 맞으면 일편단심(一片丹心), 일종지심(一從之心), 일부종사(一夫從死), 일각일시, 일일칠형(一日七刑)과 일(一)자로 시작되는 관련 내용과, 두 대를 맞고는 이부불경(二夫不敬), 이군불사(二君不事), 이부지자(二父之子)와 같은 이(二)자로 시작되는 내용을 외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춘향이가 세 번째 매를 맞고는 사또의 부당함을 외치는 대목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세 번째 매와 관련해서는 삼(三)자로 시작되는 삼한갑족, 삼강, 삼춘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도쿄 한 복판에 있는 전몰자 묘지인 ‘국립치도리가후치 묘원(國立千鳥ケ淵戦没者墓苑)’은 1959년에 세웠으며 ‘묘지’가 아닌 ‘묘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곳의 총면적은 16.063㎡(4,867평)으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때에 나라밖에서 죽은 일본의 군인, 군속, 민간인 가운데 신원이 불명하여 인수되지 않은 유골을 안치하고 있다.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은 가족에게 인계하여 가족 무덤에 안치) 유골을 안치한 납골당인 육각당(六角堂)에는 35만 8,000주(柱, 일본에서 신을 세는 단위) 이상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으나 전범급(戰犯級) 인물은 안치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서는 일본 후생성이 해마다 전몰자를 위해 배례식(拝礼式)을 거행하며 황족(皇族)과 내각총리대신이 참석한다. 이 묘지는 1950년 필리핀에서 숨진 전몰자 4,822주가 송환되었을 때 이들의 유골을 안치할 곳을 찾지 못해 일본 후생성이 1952년 5월 1일 ‘전일본무명전몰자합장묘건설위원회(全日本無名戦没者合葬墓建設会)를 발족하여 만든 것이다. 처음에 터를 선정할 때에 묘지 터로 여러 곳이 후보로 올랐으며 그 가운데는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두어야 한다는 소리도 있었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경복궁 <지경다지기>이야기를 하였다. 경복이란 이름은 시경(詩經) 중에서 딴 이름으로 큰 복이라는 점, 경복궁은 조선 초기 신진사대부가 지은 궁궐로 유교 이념이 반영되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지어졌다는 점, 자금성보다 먼저 지어졌기에 자금성을 본 떠 지었다는 설명은 옳지 않다는 점, 땅을 다지는 작업 중 노래 소리는 작업의 능률을 극대화 한다는 점, 박상옥 외 100여명의 보존회원들은 힘겹게 지켜오다가 단절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점,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점, 이러한 유산은 올곧게 지켜져야 하는데, 서울시의 재고를 바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주에는 경기 좌창 가운데 심장가에 관한 이야기다. 춘향이가 새로 부임해 온 변 사또에게 10대의 매를 맞게 되는 대목이 바로 십장가다. 이 대목은 판소리로 전해 오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대목을 발췌하여 경기소리의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가 바로 경기잡가, 십장가인 것이다. 이 도령과 이별을 한 뒤, 쓸쓸하게 지내고 있는 춘향에게 남원으로 부임해 온 변사또는 수청 들것을 요구해 온다. 그러나 춘향이가 강력하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야스쿠니 경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유슈칸(遊就館)은 태평양전쟁을 비롯한 침략시기에 사용했던 전리품, 전몰자의 유품, 대포 등의 무기를 전시하고 있는 전쟁박물관이다. 1945년 종전(終戰)과 함께 폐지되었다가 1986년 재개관한 뒤 2002년에 새로 단장한 유슈칸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황국사관을 심어주는 중요한 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슈칸은 1880년 이전에는 ‘게액및무기진열장(揭額幷武器陳列欌)’으로 불렸다. ‘게액(揭額)’이란 액자를 건다는 뜻으로 전사자들과 관련된 사진 등의 액자를 봉납 받아 전시함으로써 신령을 위로하고 살아생전의 업적을 기리고자 하는 뜻이며 이와 더불어 무기진열을 위해 만든 것이 유슈칸이다. 명치정부는 막부정권을 타도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무기를 비롯하여 각 번(藩)이 소장했던 무기를 확보하여 유슈칸에 진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청나라 군함 조강호 부속품과 청나라 국기, 청룡도, 삼우창, 러시아군함 바이야크의 군함기 등 전리품을 전시하여 일본의 위력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1910년 4월 1일, 유슈칸은 칙령으로 무기역사박물관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당시 공포된 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제5과정인 <자진 지경다지기> 이야기를 하였다. 땅을 자주 자주 다지며 자진방아타령을 부르는데, 사설은 구수하면서도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재미있는 구성이란 점, 제6과정은 더 잦게 다지는 과정으로 <이엿차>라 부르며 노랫말도 4자 1구로 규칙적이란 점, 마지막 과장은 뒷놀음의 순서인데, 힘들고 지루함을 잊고 신명나게 춤을 추며 한바탕 노는 마당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 대표적 궁궐, 경복궁은 서울 종로구에 있고,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조선을 건국하고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먼저 경복궁을 지었는데, 시경(詩經) 가운데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어라. 임이시여, 만 년 동안 큰 복을 누리소서."(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시 끝부분의 <경복(景福)>을 딴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그 뜻은 큰 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경복궁 건축의 실질적 인물은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책임자 심덕부로 보는 시각도 있고, 또는 환관 김사행(金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도쿄초혼사(東京招魂社) 건립 이후 수많은 전사자를 합사(合祀)하는 예대제(例大祭, 레이다이사이: 신사의 신에게 고하는 의식)가 이뤄졌는데 이는 군대가 합사자를 결정하고 일왕의 재가를 받아서 혼을 불러내어 야스쿠니의 제신(諸神)으로 합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곧 군의 조사와 합사기준에 따라 판정→영새부(寧塞簿, 영혼이름을 적은 명부)작성→일왕보고→재가→초혼→합사의 수순을 밟는 것이다. 전사자는 유골이나 위패가 아닌 영새부(寧塞簿)에 기록되며 이를 신관들이 오하구루마(영새부를 태우는 영혼 가마)에 태워 야스쿠니 본전(本殿)에 자리하는 초혼제를 진행한다. 이후 합사제(合祀祭)를 거행하고 제주(祭主)인 일왕이 그 길을 걸으며 참배한다. 영새부는 사전에 안치되어 신체에 준하는 취급을 받으며 이로써 야스쿠니의 제신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이때 만주, 대만, 조선, 오키나와와 일본 내에 살고 있는 유족들을 국비로 야스쿠니에 초대하여 전사자가 신(神)이 되는 과정 곧 예대제가 진행되는 참도(參道) 양쪽 끝에서 참배하게 한다. 이후 야스쿠니 예대제를 마친 유족들은 신주쿠교엔, 황궁, 우에노동물원 등 도쿄의 명소를 구경하고 귀향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지경다지기의 작업과정이 힘들기는 하나,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사상누각(砂上樓閣)을 이야기 하였다. 제4과장은 휴식을 취하며 펼치는 마당놀이의 순서로, 여기서 부르는 민요가 서울, 경기지방의 노동요인, <양산도>와 <방아타령>등이란 점, 이 노래들은 간단 소박한 가락과 단순한 장단이 특징이고, 노랫말에서도 직설적인 표현이 많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제5과장인 <자진 지경다지기> 이야기로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는 모든 참여자들이 자진방아타령을 부르며 자주 자주 지경을 다지는 과정인데, 역시 경기민요의 자진방아타령과는 다른 형태로 서울. 경기지방의 노동요인 <자진 방아타령>을 부른다. <자진>, <잦다>란 말은 ‘동작이 재다’ 또는 ‘빠르다’는 뜻이다. 참고로 전통적인 우리음악의 형식 중에는 만(慢)-중(中)-삭(數)이 대표적이다. 곧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빠르게 진행되는 형식으로 <자진>은 곧 그 삭(數)에 해당되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기악의 독주음악으로 널리 알려진 산조음악은 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해외 전몰자 240만 명 가운데 현재 116만 명의 주검이 미송환 된 상태로 전사자유골의 약 48%가 여전히 해외에 방치된 상태이다. 이 가운데 바다에서 전사한 경우와 상대국 국민감정으로 수습할 수 없는 주검을 제외한 60만 명은 지금도 수습이 가능하지만 일본 정부는 주검수습에 소극적이다. 이렇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검수습을 미루는 것은 일본 특유의 ‘초혼(招魂)’ 사상과 관련이 깊다. 특히 야스쿠니의 제신(祭神)으로 모셔지는 것은 최고의 예우이기에 주검 수습에 그다지 힘을 들이고 있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2010년 일본 NHK에서 방송된 ‘의혹의 주검을 좇아, 전몰자주검수집의 어둠’이라는 기획물이다. 일본정부는 1952년부터 1975년까지 3차에 걸친 전사자 주검수습 작업을 해왔으나 필리핀의 경우 거액을 들여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수습된 주검이 일본인 전사자 주검이 아니라 필리핀인 주검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주검수습이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각 전쟁터에서 전사한 전사자 주검 수습은 거의 방치된 상태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장례식은 반드시 주검이나 죽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세 번째 과정인, 초(初)지경 다지기를 소개하였다. 소리꾼 모두가 장단과 호흡을 맞추어 가며 뒷소리를 받게 되는데, 이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거나 내릴 때, 운율의 일치로 힘의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 지경다지기 소리에는 “에여라 저어”와 “에여라 지경이요” 같은 두 종류의 후렴구가 있는데, 전자가 4글자 단위, 후자는 10글자 안팎의 문장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육체적 노동은 말 할 것도 없고, 정신적 활동, 또는 매사 모든 일의 전개 과정이 그렇듯이, 기초가 튼튼하고 확실해야 함은 절대적이라 하겠다. 집 짓는 경우를 예로 든다면, 그것이 비록 작은 초가집이라도 땅을 단단하게 다지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는 일은 절대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더욱이 수백 수천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주택이라면 그 중대성은 더 이상 강조할 것이 없다. 그런데 그 옛날 한 나라의 임금을 위시하여 3,000여명의 대가족이 함께 살게 되는 궁궐을 짓는 공사에서 땅을 굳건하게 다지는 기초작업의 중대함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만일 이러한 과정이 힘들고 괴로워서 적당히 끝맺음을 하거나, 또는 소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