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눈이 내리면 소년은 연을 날렸다. /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지면 / 더욱 높이 띄웠다. 팽팽한 연실을 곱은 손으로 / 움켜쥐고 실을 풀거나 당기면서 연과 이야기했다. / 연이 공중바람을 타고 높디높게 오르면 연실이 모자랐다.” 신영길 시인의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시 일부입니다. 여기서 연(鳶)은 종이에 가는 댓가지를 붙여 실로 꿰어 공중에 날리는 놀이 용구인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날려 왔지요. 그런데 한국의 연 특히 방패연은 그 형태와 구조면에서 다른 나라의 연과 달리 방구멍이 잇는 매우 과학적인 구조입니다. 이 방구멍은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메워주기 때문에 연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 연을 높이 띄우거나 그림, 모양 등에 관심을 두는 중국, 일본 등의 연과는 달리 한국의 연은 연을 날리는 사람이 다루는 것에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가기,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기, 급하게 올라가거나 내려가기는 물론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연은 연 날리는 사람에 의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서 연싸움(연줄 끊기)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다리 높이 떠 지저귀는 곳 /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이는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다. 2년 전 필자는 후쿠오카 형무소 담장에서 마나기 미키코 씨와 이 노래를 불렀다. 마나기 미키코 씨는 후쿠오카지역에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모임인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의 대표다. 철창 속에서 머나먼 북간도의 고향땅을 그리며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절규했을 윤동주 시인이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다. 오는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27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 날이다. 한글로 시를 쓴다는 이유를 들어 제국주의 일본은 젊은 청년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앞날이 창창한 꿈 많던 청년의 죽음은 일본 땅 전역에서 서서히 부활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숨져간 곳에 사는 사람들은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를 통해 윤동주 시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세 번째 열린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전국에서 많은 경창자들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 제전은 2018년 서울특별시가 지역특성을 살리는 문화사업 민간축제로 선정한 행사였다는 점, <명인부>, <일반부>, <단체부>, <학생부>, <신인부> 등으로 구분되며 단체부와 신인부 경연자들이 많아 축제의 분위기를 살렸다는 점, 명인부는 해당종목의 이수자, 일반부는 전수생들이 참가하는데, 암기수준이나 발음, 창법, 호흡처리 등이 수준급이었다는 점, 특히 초, 중학생들이 한문을 정확하게 읽고 고저를 구별해 내는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을 얘기했다. 타 대회와는 달리, <계자제서(戒子弟書)>를 부름으로 경연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세상을 살면서 삼가고 경계해야 될 내용들을 담고 있는 글이라는 점, 경연마당의 출전자들은 주로 삼설기(三說記), 계자제서(戒子弟書), 명심보감(明心寶鑑), 권학문(勸學文) 주자훈(朱子訓), 촉석루(矗石樓), 등왕각시(滕王閣詩),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등을 불렀으며, 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는 설날 아침이면 일찍이 남녀노소가 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 뒤에 할아버지ㆍ할머니, 아버지ㆍ어머니 등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 다음 일가친척과 이웃어른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렸습니다. 요즘엔 직장인들은 회사 윗사람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조선시대엔 새해 초에 대문 앞에 세함(歲銜)을 두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각사의 서리배와 각영의 장교와 군졸들은 종이에 이름을 적어 높은 관원과 선생의 집에 들인다. 문 안에는 옻칠한 소반을 놓고 이를 받아두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 하며, 지방의 아문에서도 이러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한양(漢陽)의 세시풍속에 대해 쓴 책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설날부터 정월 초사흗날까지는 승정원과 모든 관청이 쉬며, 시전(市廛) 곧 시장도 문을 닫고 감옥도 비웠다고 합니다. 이때는 서울 도성 안의 모든 남녀들이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했다고 하며, 이 사흘 동안은 정승, 판서와 같은 높은 관원들 집에서는 세함만 받아들이되 이를 문 안으로 들이지 않고 사흘 동안 그대로 모아 두었다고 하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2월 4일)는 입춘이었지만 설날 연휴 중인 한국에서는 입춘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지나버린 느낌이다. 설날 연휴가 아니었더라도 특별한 입춘 행사가 없는 게 우리 풍습이긴 하지만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입춘축을 붙이는 모습 정도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는 입춘에 대한 풍습이 남아있어 곳곳에서 입춘 행사를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입춘을 절분(세츠분, 節分)이라 해서 사악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전국의 절이나 신사(神社)에서 행한다.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후쿠와 우치, 오니와 소토, 福は內、鬼は外)”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고 볶은 콩을 자기 나이 수만큼 먹으면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감기도 안 걸리며 모든 악귀에서 보호 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절분(세츠분, 節分)은 보통 입춘 전날을 말하는데 이때는 새로운 계절이 돌아와 추운 겨울이 끝나고 사람들이 활동하기도 좋지만 귀신도 슬슬 활동하기 좋은 때라고 여겨서인지 이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는 것이다. 절분행사는 예전에 궁중에서 시작했는데 《연희식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책읽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진 송서ㆍ율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소리를 내어 음악적으로 읽는 방법이야말로 오래 읽는다 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암기에도 효과적이란 점, 서울시 문화재로 <송서와 율창>을 지정한 것은 훌륭한 결정이지만, 지정이 되었다고 해서 해당 종목이 저절로 보존, 계승되는 것이 아니고 관련기관의 적극적인 대책이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열의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 가운데서도 송서ㆍ율창 분야는 전승자의 층이 엷어서 진승구조가 취약하다는 점, 이러한 종래의 인식을 뒤엎고, 송서ㆍ율창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보유자와 보존회원들은 다양한 활동을 계속해 왔다는 점, 그 대표적인 활동들이 전국국악학 학술대회를 통한 학술적 가치의 확보, 정기 비정기 공연활동을 통한 관객확보, 보다 쉽고 재미있는 새로운 음반의 제작, 보존회의 확장을 통한 전승자의 교육, 2회에 걸쳐 개최했던 송서ㆍ율창 경연대회 등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주에 이어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 관련 이야기들을 계속하기로 한다. 세 번째 맞이한 경연에는 전국에서 참가한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옛날 히에이산에 있던 가난한 승려가 부처님의 계시를 꿈속에서라도 보기 위해 구라마사(鞍馬寺)에 기도하러 갔다. 그러나 7일간 정성껏 기도를 해도 답이 없자 다시 7일을 연장하고 또 다시 100일 동안 기도 정진에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원하던 부처님은 나타나지 않고 사자(使者)가 나타나 기요미즈사(淸水寺), 가모신사(賀茂神社) 등으로 자꾸 기도처를 옮기라고 해서 히에이산 승려는 기대를 걸고 사자의 지시를 따른다. 그러다 꿈에도 그리던 계시를 받는데(작품에서는 계시자가 부처라는 이야기는 없다) 승려에게 흰종이와 쌀을 내려주겠다는 소리를 들은 승려는 ‘그렇게 힘들게 기도를 했는데 고작 흰종이와 쌀이 무엇이냐 싶어 원망스런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흰종이와 쌀은 생각과 달리 써도써도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이었다.” 이는 일본 중세의 설화집 《우지습유모노가타리(宇治拾遺物語)》, 제6권 제6화 ‘가모신으로부터 신전에 바치는 흰종이와 쌀 등을 받은 이야기’의 요약이다. 이야기 끝에는 ‘신과 부처에게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느긋하게 기도 정진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말이 붙어 있다. 이와 같은 설화가 197화 수록되어 있는 일본 중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퉁소 신아우보존회의 두 번째 정기 연주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퉁소 신아우는 함경남도가 무형문화재(보유자 - 동선본)로 지정한 종목이며 인접지역인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서 연주회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 분단 이후 퉁소 음악이 위기에 처하자, 뜻있는 국악인들이 한국퉁소연구회를 결성, 단절의 위기를 넘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퉁소는 과거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연주되었지만, 남쪽보다는 북쪽이 더더욱 활발했으며 연주회는 거문고와 퉁소의 2중주, 김진무의 함경도 민요창, 퉁소 음악과 북청의 사자놀음 등이 청중의 호응을 받았다는 이야기, 평안도 황해도의 서도소리가 인천을 중심으로 성행하고 있는 것처럼, 함경도의 퉁소나 신아우 음악은 그 아랫마을인 강원도에서 보존, 전승해 나가다가 함경도 지방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종로구 있는 조계사 내의 한국불교역사 문화기념관에서는 송서ㆍ율창 경연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공식명칭은 <글 읽는 나라 문화제전>이었다. 국민 모두가 글을 읽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듯한 행사여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들은 이 책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특히 차세대 여성들이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젊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을 달았으며, 책 끝에는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아시아(필리핀, 스리랑카, 베트남)의 역사와 개인사를 하나의 연표로 정리해두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일본사 연표와는 달리 일본사회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뿌리를 가진 ‘우리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는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재일(在日)의 역사를 말해주는 책 《가족사진을 둘러싼 우리들의 역사(家族写真をめぐる私たちの歴史:在日朝鮮人・被差別部落・アイヌ・沖縄・外国人女性2017, 도쿄출간)》에 나오는 머리말의 일부다. 이 책을 쓴 사람들은 모두 여성들로 24명이 집필자다. 집필자들은 황보경자, 김리화, 이전미와 같은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이면서 피차별부락 출신자들도 함께 이 책을 썼다. 피차별부락이란 과거 일본에서 ‘에타(エタ, 穢多)’라 불리는 천민, 전염병 보균자, 전쟁포로 등의 집단거주지를 얘기했으나 현재는 일본의 천민집단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나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재일조선인여성 단체인 ‘미리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5회 벽파 대제전에서 대상에 오른 홍주연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는 “선소리 산타령을 활용한 유아교육을 위한 교수법”이란 논문을 작성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산타령을 유아교육에 접목시키는 발상은 그 자체가 예사롭지도 않지만, 현장 실습의 경험이 없으면 다루기 어려운 주제일 수 있다는 점, 음악학습은 조기에 시작 되어야 한다는 코타이 교수법을 응용해서 민요를 다루되, 노래의 억양이나, 귀에 익숙한 음악적 요소들의 학습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산타령으로 유아의 창의성, 인지 발달의 감성, 언어의 활용, 장단과 발림, 리듬감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 그 결과 산타령은 학교, 직장,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체 정신에 따른 협동심과 사회성의 증진을 꾀할 수 있는 노래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아들에게 강조되고 있는 놀이중심의 음악 교육용으로 산타령의 활용이 매우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관계당국은 유능한 지도자들이 현장에서 지도가 가능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퉁소 신아우 두 번째 정기 연주회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