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친한 선배의 딸이 얼마 전에 서점극장 ‘라블레’를 열었다길래 한번 가보았습니다. 서점을 방문했으니 당연히 책을 사야겠지요? 세계문학서점을 지향하는 서점이라 눈에 보이는 것은 거의 다 문학에 관한 책입니다. 그런데 저는 역사와 지리를 좋아하는지라 혹시 그런 책은 없을까 하여 둘러보니, 《비잔티움 연대기》라는 650쪽이 넘는 두꺼운 책(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1권이 아니라 3권짜리 책이고, 3권은 850쪽이 넘습니다. 비잔틴제국이 330년부터 1453년까지 인류 역사상 제일 오래 지속된 나라이니, 이야깃거리가 많아 이렇게 두꺼운 책이 3권이나 되겠지요. 저는 이번 기회에 비잔틴제국의 역사를 공부해보고자,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두꺼운 책이 3권이나 되니 좀 부담되기는 했지만, 꼬마 때부터 잘 알고 있는 선배 딸이 서점을 열었다니, 이왕이면 책값 좀 많이 쓰려고 3권짜리 《비잔티움 연대기》에 지갑을 열었습니다. 《비잔티움 연대기》를 나의 독서 시간인 오가는 차 안에서만 주로 읽고 있으니, 며칠 전에야 겨우 다 읽었습니다. 2권 뒤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비잔티움의 역사는 성직자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서기 120년 정도에 종이가 발명되었지만 실제로 널리 사용된 것은 훨씬 후대의 300년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거북이 등껍질, 짐승의 뼈, 금속, 돌 등에 글자를 써왔지요. 시간이 흘러서는 대쪽이나 나무, 비단에 글을 기록했습니다. 죽간은 무겁고 휴대하기가 불편했으며 비단은 가격이 비싸 널리 사용되기 어려웠지요. 따라서 학문은 상류의 특정한 계층에게만 국한되었으며, 기록을 남기는 데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비되었으니 논어의 시작인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가 왜 그러한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지요. *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글을 쓰려면 지필묵이 필수입니다. 종이와 펜, 그리고 먹이 있어야 하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이류입니다. 그것이 후대까지 남아있는 기록으로 기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논어는 모두 20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왕필의 주석이나 주자의 주석을 뺀 원문만 추리면 정말 작은 분량임에도 그 책은 20권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책을 의미하는 권(卷)의 아래 모양은 두루마리 죽간이 말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중국 역사의 요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참으로 오랜만에 여의도 공원을 갔다. 공원 곳곳에 길이 나고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다. 내 생각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이 공원에 대해서 남다른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평생 근무한 KBS가 여의도 공원 남서쪽에 붙어있어 거기에 관련된 추억이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사연이다. 넓이 23만 제곱미터, 예전 평이란 개념으로 7만여 평이나 되는 이 공원은 예전에는 벌판이었고 거기엔 공항이 있었단다. 필자도 그 공항을 본 적이 없다. 공항이 있을 정도로 동서남북이 뚫리는 거대한 벌판이었다가 70년대 초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면서 그 넓은 벌판이 아스팔트로 포장돼 5.16 광장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거기서 국군의 날에는 국군 사열이 벌어졌다. 1977년 봄 필자가 KBS에 들어간 이후에도 그곳은 넓은 광장이었다. 그곳에서 80년대에 국풍이 열렸고 이산가족 만남도 있었고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어졌다. 평소에는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끝까지 걷기도 힘들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그것이 1997년에 갑자기 공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95년 7월 1일 조순 전 경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재밌다. 소리없이 웃긴다. 이토록 재기발랄한 글을 마주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얼마간의 진지함이 섞여 있으면서도, 읽을수록 피식피식 웃음이 배어 나오는 이런 글은, 오히려 완전히 진지하거나 완전히 웃긴 글보다 훨씬 더 쓰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면에서,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지역 축제’를 소재로 이토록 ‘조곤조곤 웃기는’ 글을 써낸 김혼비ㆍ박태하 부부에게 박수를 보낸다. 헌데, 이들은 어찌하여 전국 축제를 두루 유람하게 된 것인가? 그 시작은 ‘K스러움’의 근원을 파헤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요즘 풍년인 각종 ‘K-’에 대한 저자들의 감상, 곧 ‘끈적끈적함’과 ‘매끈함’이 엉거주춤 결합한 ‘K스러움’을 탐험하기에는 한국의 지역 축제가 제격이라는 판단이었다. 책의 서문에서 밝히는 이 유람의 공식적인 동기는 이러하다. …술을 먹으면 ‘한국 사람들은 왜 이럴까’와 ‘한국이라는 공간은 왜 이럴까’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여기서 ‘이렇다’는 긍정적ㆍ부정적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그것은 곧 어떤 종류의 끈적끈적함과 어떤 종류의 매끈함이 세련되지 못하게 결합한 ‘K스러움’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곤 했다. 우리는 그 ‘K스러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 교과서에도 나왔던 매창의 시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단지 매창의 시로 외우기만 하였지, 매창이 말하는 이별한 님이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매창이 말하는 님은 촌은(村隱) 유희경(1545~1636)입니다. 촌은은 원래 천민이었으나 13살에 아버지가 죽었을 때 시묘살이를 하다가 남언경의 눈에 띄어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촌은은 특히 상례(喪禮)에 밝아 상례에 대해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천민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통정대부까지 하사받았습니다. 그리고 광혜군 때는 인목대비 폐모 상소를 거절하여, 인조반정 후 인조는 이를 가상히 여겨 가선대부로 품계를 올려주었습니다. 촌은은 46살 때 부안의 매창이 시로서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부안으로 매창을 찾아갑니다. 당시 촌은은 백대붕과 함께 풍월향도라는 모임을 만들어 시를 나누었기에, 매창에게도 풍월향도의 소문은 들어갔었나 봅니다. 그래서 촌은이 찾아왔을 때, 매창은 촌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는 92%가 오른손잡이입니다. 그런데 한자는 불편하게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씁니다. 궁궐이나 대문, 전각이나 절의 현판의 대부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합니다. 사서삼경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고 병풍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지요. 우리의 눈은 가로로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안구는 가로운동이 세로운동보다 편할뿐더러 시야각도 넓습니다. 그럼에도 한자는 가로쓰기하지 않고 세로쓰기를 합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왜 우린 그런 문화를 인내하며 살았을까요? 그 까닭은 종이가 없었던 시절 죽간(竹簡)을 사용했던 데에 있습니다. 죽간은 세로로 길어서 ‘세로쓰기’를 해야 했고 왼손으로는 돌돌 말린 죽간을 펼치면서 써야 했기에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이 된 것이지요. 버릇(습관)의 힘이 무섭습니다. 우린 매일 키보드를 앞에 놓고 삽니다. 공업진흥청에서는 두벌식을 표준으로 정하고 키보드에도 두벌식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더 빠른 타자가 가능한 세벌식이 있는데도 사용자로부터 외면당합니다. 영문은 더 심하지요. 영문 키보드를 왼쪽 위로부터 차례로 쓰면 Qwerty가 됩니다. 그것을 쿼티 자판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5월은 신록의 달이란 표현 그대로 모든 것이 파릇파릇, 새 생명들이 보여주는 잔치 속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우리들이 한창 자라나는 삶의 과정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되새기는 날들이 이어지는 바람에 한 달을 정신 없이 보낸 것 같다. 올해는 또 그 중간에 부처님 오신 날이 있어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모두가 우리들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곧이어 달력에 빨간 표시가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보내지만 중요한 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부부의 날이다. 부부의 날을 아시냐고 물으면 글쎄 얼마나 안다고 답할까 잘 모르겠지만 날짜로는 21일이다. 이 부부의 날은 한국에만 있는 날이다. 1995년에 창원에 사는 권재도 목사 부부가 처음 제안해서 2007년에 국가기념일이 됐으니 올해로 14회를 넘겼다. 왜 21일인가. 둘(2)이 하나(1) 돼 잘살자는 뜻이라고 한다. 부부의 날은 세계에 유례가 없고 우리나라만의 국가적인 기념일이 되었다는 데서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부부의 금실과 가정의 화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금실이라는 말은 ‘시경(詩經)’의 첫머리에 나오는 금슬(琴瑟)에서 유래된 말로서, 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자신만의 서재 갖기,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일이다. 서재를 꾸리고, 이름을 붙이고,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흠뻑 느끼는 방법도 없다. 그러나 막상, 그런 공간을 정말로 가진 이는 매우 드물다. 다들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서가를 채울 책이 충분치 않아서, 서재를 꾸릴 시간이 없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서재 만들기를 주저하거나, 막연한 동경의 대상으로 남겨두곤 한다. 이렇듯 ‘서재’라는 공간은 여전히 일상의 영역으로 편입되지 못한 채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독서와 사색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나아가 인생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면 서재, 한 번쯤 만들어볼 만하지 않을까? 새삼 ‘서재’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해 줄,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을 찾았다. 어린이책으로 나왔지만, 어른이 읽어도 깊은 깨달음을 얻기에 손색이 없는 이 책 《최고의 서재를 찾아라》가 이번 주의 주인공이다. 조선을 빛낸 8명의 지식인이 자신만의 서재를 꾸리게 된 과정, 그리고 그 서재가 자신의 삶에 가져온 변화를 담담히 회고하는 방식이다. 책은 ‘최고의 서재 공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사월은 분홍 세상이었다. 얼음새꽃, 고들빼기꽃, 구릉대꽃이 깔아놓은 노란 멍석 위에 진달래, 산벚꽃, 개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져 노을마저 분홍으로 물들였었다. 그 분홍 사월이 가니 이젠 층층나무, 이팝나무, 때죽나무, 찔레꽃 같은 흰 꽃들이 오월을 뒤덮는다. 봄비치고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리는 덕택에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꿀맛 같은 망중한(忙中閑)이다. 취나물, 동박 잎에 부추겉절이를 얹어 싼 삼겹살에다 아내가 빚은 청주까지 한 잔 곁들이니 이 맛이 그 맛이요, 이 세상이 바로 내 세상이다. 우리는 길게 다리를 뻗고 내친김에 영화도 한 편 감상했다. 옛날 영화를 쭉 검색하다가 빨간 냄새가 나는 제목이 있어 눌러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1972년에 제작된 <꽃 파는 처녀>라는 북한영화였다. 구닥다리 “꼰대”라서 북한영화가 버젓이 돌아다닌다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한동안 지남력* 상실상태로 있다가 정신을 차려 격세지감(隔世之感)으로 보았다. 1930년대가 시대배경인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어느 고장인지 알 수 없으나 그리 크지 않은 저잣거리에서 “꽃분이”라는 한 처녀가 꽃을 팔러 다니는 장면에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경복궁 귀퉁이의 민속박물관 자리에 있다가 헐린 중앙청에 있다가 고궁박물관 자리로 옮기는 진통 끝에 2005년에야 현재 자리에 크고 새롭게 지어지는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다. 이 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을 들어서면 큰 홀 한가운데에 대리석으로 된 탑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바로 경천사 10층 석탑이다. 국보 제86호인 이 경천사 십층석탑은 높이 약 13.5m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로, 석탑 전체에 불, 보살, 사천왕, 나한, 그리고 불교 설화적인 내용이 층층이 가득 조각되어 있어 무척 아름답다. 그러기에 전시관에 들어서면, 홀 중앙에서 천정까지 치솟는 위용으로 해서 중앙박물관의 얼굴인 것처럼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이 탑은 고려말기 원나라에 기울어져 있던 고려 귀족들이 발원했고, 탑의 외형은 우리나라에 있는 기존의 간결한 석탑과는 달리 원대에 유행한 라마교의 요소가 많으며, 탑을 만든 사람도 원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어서, 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문화재로는 인식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올 10월에는 전혀 다른 문화재를 만나게 된다. 바로 우리 조상의 뛰어난 기술과 예술관, 심미안을 보여주는 뛰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