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어제 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다가, 잠실나루역 앞 ‘서울책보고’에서 드디어 살 수 있었던 책 《잠수복과 나비》에 대해서 말씀드렸었지요? 그때 같이 산 책에 《반쪽의 고향》도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오랫동안 목록 속에 잠자고 있다가 ‘서울책보고’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책은 1996년 7월 30일 나왔으니, 26년 만에 돌고 돌아 저에게까지 왔네요. 이 책의 저자 이상금은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15살에 해방을 맞으면서 고국으로 오신 분입니다. 저자는 이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오랜 세월 재직하다가 1993년에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반쪽의 고향》이란 제목으로 내셨습니다. 제목이 왜 《반쪽의 고향》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책은 일본어로 일본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서문을 보니 저자는 일본 청소년의 21%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면서, 저자 가족의 생활사를 통해서 일본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구체적인 역사를 그들에게 읽히고 싶었답니다. 이야기 자체가 일본에서의 성장사(成長史)이고, 저자 또한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린 하루에도 참 많은 말을 하고 살아갑니다. 남자는 대략 1만 단어 여자는 2만 단어를 소비하고 살아간다고 하니까요. J. 에인젤은 38년 동안 미시간대학 총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자신을 조율할 줄 알았던 인물이지요. 자신이 먼저 나서 말하기보다 많은 사람의 말을 듣고 난 뒤 말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은퇴할 즈음 기자로부터 "오랫동안 그 어려운 총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팔보다 안테나를 높이는 데 있었습니다." 우린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어도 그러합니다. 관계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언어가 좋은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침묵은 위대한 금일지도 모릅니다. 진실한 마음은 무언(無言)으로 통한다고 하니까요. 진정한 사랑은 남과 견주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렵고 힘듦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이지요. 남에게 따뜻한 말을 잘 들려주는 사람은 스스로 그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일지 모릅니다. 따뜻한 말은 마음에서 절로 돋아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따뜻한 무언가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늦가을 인사동 거리, 못생긴 얼굴 같은 글씨로 서예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얼 이종선이란 분의 서예전인 모양인데, '七十而已'(칠십이이)라는 전시회 이름이 특이합니다. 개막식장에서 전시회의 주인공은 '칠십이이'라는 말은 "제 나이 칠십입니다" 혹은 "칠십이 되었군요"라는 뜻이랍니다. 고희를 맞아 그동안 작품활동 한 것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지나간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는 겁니다. 전시장 안의 글씨들은, 한자 한문도 있고요, 한글 서예작품이 많은데, 뭐 글씨가 삐뚤삐뚤, 들락날락, 흐느적 흐느적... 보통의 서예글씨가 아니라 마치 글자들이 춤을 추는 그런 작품이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는 말 메멘토 모리, "언젠가는 우리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런 무시무시한 말이 뭉툭 뭉툭한 채로 눈에 들어옵니다. 흔히 세로로 쓰는 작품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읽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왼쪽에서부터 읽도록 했고, 작은 글씨도 우리가 언젠가는 인생이란 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내용을 깔고 있는, 제법 의미가 있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글귀를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처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어느새 가을이 다녀간다. 배추 밑동이 도려지고 무가 뽑히고 집집마다 담벼락에 장작더미가 쌓여간다. 개옻나무 밑엔 붉은 양탄자가 깔리고 찔레 덤불 참새소리가 한층 야물어졌다. “빛은 휘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정설이 아니다. 갈대 이삭이 일으키는 바람에도 서녘 햇살은 휘어지고 늘어져서 금실그물을 호면 위에 풀어 놓는다. 꽃은 땅에서만 피지 않는다. 처마마다 곶감으로 꿰어져 겨울로 가는 이정표로 피어있다. 내가 어살*에 걸린 물고기처럼 세파에 떼밀리는 동안 이렇게 가을이 다녀가고 있다. 그동안 참 바쁘게 살았다. 집을 짓는 일, 연못과 도랑을 파서 정원을 만들고 꽃밭 가꾸는 일만 해도 허리가 휘어질 지경인데, 비록 녹음방송이라곤 하지만 매일 나가는 프로그램을 턱 하니 맡았으니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평생 해온 일이 방송이라 앞뒤 재지 않고 덥석 달려든 게 나를 조급증으로 몰고 가고 말았다. '바쁘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뜻 말고도 '어렵다'라는 뜻을 지닌 함경도 사투리가 그것이다. 바쁘게 살면 다른 건 몰라도 살림살이의 어려움은 줄어들어야 할 텐데 더 하면 더 했지, 여간해서 나아지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태극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국기, 태극기도 한때는 용기의 상징이었다. 태극기를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태극기는 곧 독립운동이요, 독립운동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과감히 태극기를 들었던 여성들이 있다. 자칫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 민족과 조국을 위해 용기를 냈던 이들이 있다. 이 책 《태극기를 든 소녀 1》은 그 여섯 명의 지극한 용기에 바치는 헌사다.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드높인 의병대장 윤희순. 이화학당 교사이자 목숨을 걸고 고종의 비밀문서를 파리로 가져간 김란사. 기모노 속에 2.8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여온 김마리아, 3.1운동의 불씨를 고향에서 이어간 유관순.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려 손가락을 자른 남자현. 전투기를 몰고 조선총독부를 폭격하려 했던 권기옥. 이 책은 이 여섯 명의 의로운 여성들을 차례차례 되살려낸다. 이야기를 읽어주는 듯 친근한 어투로 그들이 겪었을 고뇌와 삶의 고통을 풀어내, 어른도 그 아픔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폭력과 탄압이 난무하던 시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진의장 초대전 <그림은 바다를 품고>에 다녀왔습니다. 진의장 화백이 서울법대 선배, 더 범위를 좁힌다면 서울법대 문우회(文友會)의 선배이기에 더욱 시간을 내어 전시회에 갔다 온 것입니다. 진 화백은 서울법대를 나와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오랜 세무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제5대, 6대 통영시장(2003 – 2010)을 지냈습니다. 진 화백의 이력으로 보아, 진 화백이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요? 그래서 문우회 단톡방에 진 선배님 전시회 소식이 올라왔을 때, 솔직히 의무감에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진 선배님이 은퇴하고 노후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리는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가 그림들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소일거리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에서는 웅혼한 기백이 뿜어져 나오고, 자유로운 영혼이 춤추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전문화가의 그림 그 이상이었습니다. “어떻게 평생을 공무원으로, 정치인으로 살아오신 분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조선일보는 2022년 10월 18일에 “독일도 탈원전에서 유턴... 3개 원전 전격 가동 연장”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0월 17일(현지 시각) “현재 가동 중인 엠스란트와 이자르2, 네카베스트하임2 등 원전 3기를 모두 내년 4월 15일까지 연장 운영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올겨울 전력 부족이 예상되자 올해 말까지 폐쇄하기로 했던 3기의 원전을 연장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연말까지 폐쇄하기로 했던 원전 3기를 내년 4월 15일까지 연장 운영하겠다는 뜻인데, 제목만 보는 사람은 독일이 탈원전에서 ‘유턴해서’ 친원전 정책으로 돌아섰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절대로 기사 제목만 읽고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하면 낚일 수 있다. 특히 조선일보를 조심해야 한다.) 보수 언론에서 ‘독일도 탈원전에서 유턴’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보도하자 우리나라의 원전 찬성파는 이 기사를 인용하기에 바쁠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정말 탈원전을 포기한 것일까? 주간 잡지 시사IN에서 기자를 독일로 보내 현지 취재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오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입니다. 복을 빌 만한 곳이면 어디든 기대고 싶은 학부모의 발걸음이 애처롭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느님, 부처님, 신목, 신당, 굿, 무당 등 모든 기복의 대상은 검찰에 고발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들이 기도자의 청을 받아들여 수능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면 그것은 부정행위에 해당하는 것이고 기도자에게 무언가를 받아 챙기면서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 종교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고요. 웃자는 이야깁니다. 대부분 사람은 전능하고 초월적인 절대자를 상정해 놓고 복을 내려주기를 바랍니다. 복을 바라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지요. 다만 내용이 재화의 풍요만을 바라거나 지극히 의존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나눔이 없는 기복은 자칫 자기만 위하는 이기주의로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 보러 한양으로 떠난 아들을 위하거나 아들 낳게 해달라고 아침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비는 어머니의 모습은 옛날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그림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가 아들의 붓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이 아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것이겠지만 말이지요. 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늦가을 강릉의 오죽헌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말은 많이 듣고, 그 앞을 지나간 적도 있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기에 사실상 처음 방문이다. 오죽헌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자보다 더 잘 알 테니 설명은 그야말로 사족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기념관에 갔다가 깜짝 놀란 발견을 했다. 바로 황기로의 글씨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렇구나. 광초(狂草)로 알려진 황기로의 서예 필치를 여기 오죽헌에서 보다니. 과연 그의 필은 거침이 없다. 낙동강 물을 검게 물들이며 연습한 초서 아니던가? 이미 알려진 대로 황기로는 경북 선산 사람이고 그곳에 그의 유적이 있다. 곧 매학정이란 정자가 그것이다. 이 매학정의 사연이 꽤 가슴 아픈 얘기다. 선비들의 나라라 할 조선왕조의 역사에서 선비들이 가장 통탄하는 일은 조광조를 탄핵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일 것이다. 조선 중종에 의해 발탁된 조광조는 선비들의 이상인 도학정치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급격한 개혁에 따른 훈구공신들의 반격으로 기묘사화를 당해 능주로 귀양 가고, 한 달 만에 사사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조광조를 탄핵하는 데 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장 도미니크 보비(1952~1997)가 쓴 《잠수복과 나비》를 읽었습니다. 참, 이 책에 대해 말하기 전에 제가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된 지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책을 읽다가 나오는 참고문헌이나 언론에 나오는 서평을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은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적어둡니다.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들도 이렇게 목록에 적어두고요. 《잠수복과 나비》도 이 가운데 어떤 경로로 제 살 책 목록 속에 들어간 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오랫동안 제 목록 속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라 당최 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잠실나루역 앞 ‘서울책보고’에서 드디어 이 책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헌책방으로, 여기에는 많은 헌책방이 서가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때도 아산병원에 문상가다가 들러 검색대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고 검색하는데, 어? 검색 결과 창에서 《잠수복과 나비》가 반짝반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검색 결과가 알려주는 서가로 달려가, 드디어 2008년도에 나온 《잠수복과 나비》를 제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잠수복과 나비》를 쓴 장 도미니크 보비는 세계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