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올해도 어김없이 윤동주 시인의 일본 유학시절 하숙집이 있던 교토 타카하라(高原)에서는 시인을 추모하는 헌화식에 이어 ‘윤동주의 시’에 관한 세미나와 낭독회, 다큐영화 상영 등 다양한 추모행사가 있었다. 먼 고향 북간도의 조선 청년 윤동주(1917-1945)는 도쿄의 릿쿄대학을 거쳐 이곳 교토의 도시샤대학에 적을 두고 타카하라 하숙집에서 고독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 쓸쓸한 하숙집 방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식민지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모국어로 시를 쓰다가 잡혀가 스물일곱에 삶을 마감한 윤동주, 그가 교토에 머물렀던 하숙집은 헐렸고 그 자리에는 일본의 명문 예술대학인 교토예술대학(京都芸術大学)이 들어섰다. 그러자 ‘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의 하숙집 자리에 2006년 시비(詩碑)를 세웠고 교토예술대학에서도 해마다 윤동주 시인의 추모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올해, 윤동주 서거 80주기를 맞아 교토예술대학에서는 지난 2월 14일, 추모행사를 이어갔다. 아침 10시, 국화꽃을 바치는 헌화식에 이어 윤동주 다큐 영화 <高原타카하라> 3회 상영, 문예표현학과 나카무라 준(中村純) 교수와 학생들의 세미나 ‘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에서 3월이 되면, 사람들은 유관순 누나를 떠올리지만, 그보다 앞서 2월을 이야기할 때면 나는 ‘윤동주 시인’을 먼저 떠 올린다. 1917년 12월 30일에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일제의 고문을 받고 27살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청년 윤동주. 사실 내가 윤동주 시인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의 2월’은 나에게 맹숭맹숭했다. 그런 내가 해마다 2월이면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윤동주 시인을 추도하는 일본인들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전국 각지에서 조선청년 윤동주 시인을 추도하는 일본인들을 취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2월은 ‘윤동주’가 자리 잡았다. (일본인들의 윤동주 추도 모임은 기사 맨아래 참조) 해마다 2월이면 일본 도쿄를 비롯하여, 교토, 후쿠오카 등에서 윤동주 시인을 추도하는 일본인들의 기사를 쓰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한국인들의 윤동주 추도는?’이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정작 내나라에서는 누가, 어디서 윤동주 시인을 추도하는지 알길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한국에서 말없이 윤동주 시인을 추도’하는 젊은 영화감독을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