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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매헌 윤봉길 의사님께 / 100년 편지 - 정명아 -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매헌 윤봉길 의사님께
- 정명아 -
 

   
▲ 윤봉길 의사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잔인했을 4월이 힘들게 지나가고 지금은, 그 이름도 무색한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의사님, 안녕하세요. 인사드릴께요. 저는 당신이 그렇게 바라마지 않았을 독립된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2015년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업무적이거나 혹은 간단한 소식만을 전하던 메일이 아닌 편지글을 써 봅니다.  

처음 독립운동가에게 띄우는 편지를 써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이렇게 손편지 글을 써본 기억이 가물거림에도 선뜻 그럴까요?’ 하고 대답한 데는, 요즘 들어 계속 느끼는 제 마음속의 답답함 때문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쩌면 시계가 자꾸만 자꾸만 거꾸로 돌아서 이제는 어느 면에서는 의사님이 사셨던 식민지 시기와도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랄까요. 경성 본정통의 밤은 전에 없이 휘황한 네온사인으로 덮이고 온갖 선전과 통치술 아래 그 시기에도 겉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을 터이니까요.  

저의 이러한 답답함은 아마도 작년 4월의 세월호 사건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그 참담한 심경을 이끌고 삭발까지 하며 국토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현실을, 꼭 같은 또래의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차마 보아 넘기기 어려운 마음에서 시작된 듯도 합니다. 그 눈물겨운 많은 사연에 저도 지난 1년 동안 눈자위가 벌개 지도록 울음지은 것이 몇 번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우리의 눈을 막고 귀를 가리며 잊으라 잊으라 하지만, 그들도 저처럼 단지 아이들 커가는 걸 낙으로 여기며 행복해 했던 너무나 평범한 엄마 아빠였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입니다.  

저의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은 독립운동가로 의사님을 떠올린 것은 아마도 의사님에 대한 저의 특별한 두 가지 기억 때문인 것 같아요. 첫 번째 기억은 어렸을 적 첫 가족나들이 때의 일입니다. 제가 아직 10살이 되지 않았을 1970년대 후반의 어느 날,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우며 바쁜 농사일로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부모님께서 결행하신 우리 가족의 첫 나들이는 바로 윤봉길기념관과 덕산온천 여행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설명으로 둘러보았던 충의사와 의사님 생가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는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고향에 내려갈 때면 의사님이 태어나 성장하신 곳이 제 고향과 지근거리임이 자랑스럽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아이들과 의사님의 불꽃같은 생애를 이야기하곤 하지요. 

의사님에 대한 저의 두 번째 특별한 기억은 전시를 통한 만남이었습니다. 재작년 상해임시정부를 주제로 하는 전시에서 홍구 공원의 그 장렬한 의거, 의사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시 중 하나인 강보에 싸인 어린 두 병정에게를 낭독하는 것으로 표현하였었지요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두 아들 모순(模淳)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에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사형을 목전에 둔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 보내며,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당당하게 죽으라시던 안중근의사 어머님의 편지에나 비견될, 천륜으로 맺어진 육친 사이에 오고 갈수 있는 가장 절절한 이 유시가 당신의 목소리로 전시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랑스럽게 아버지를 잃는 것 혹은 자식을 잃는 것은 비통하지만 그러나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생떼 같은 아이들을 어이없이 잃어버리고도 손가락질마저 받으며 거리로 내몰리는 수많은 우리시대의 억울한 백성들을 보며, 나라가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고 주권이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은 비애가 느껴진다면 지나친 감상일까요?  

당신이 강보에 싸인 어린 자식을 차마 두고 목숨으로 회복하고자 하셨던 조국이 이제는 단 한사람의 어린 생명일지라도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정의로운 사회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어둠속의 진실을 드러내고 아픔과 슬픔을 진정으로 치유하여 한 단계 성숙한 사회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말이예요. 그리하여 다시금 올 명년 4월은 당신이 의거를 앞두고도 담담하게 노래하신 답청 시에서처럼 청청한 방초와 함께 다정한 봄으로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홍구 공원에서 답청(踏靑)하며 

무성한 봄풀들이여
내년에도 봄기운 돌아오거든(明年春色이 일으거든)
왕손과 더불어 같이 오게나(王孫으로 더부러 갓저오세)
푸르른 봄풀들이여(靑靑芳草)
내년에도 봄기운 돌아오거든(明年春色이 일으거든)
고려(高麗) 강산에도 다녀(단녀)가오
다정(多情)한 봄풀들이여(芳草)
금년 429일에
방포일성(放砲一聲)으로 맹세(盟誓)하세.

   
 

 

   
 

 

  정 명 아

  서울역사박물관 전시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