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어제 총대주교 친견을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주위를 살펴보니 정교회 안내 유인물이 있어서 하나 가지고 왔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유인물을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동방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인 안드레아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안드레아의 제자인 스타키스(Stachys)가 비잔티움의 첫 번째 주교였다. 서기 330년에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현재처럼 정교회의 중심이 되었고 콘스탄티노플 주교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발도로메오 총대주교는 1991년에 제270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필자 주: 현재의 프란체스코 교황은 로마 카톨릭의 제266대 교황이다.) 터키에서 태어나고 터키의 시민인 발도로메오 총대주교는 각국 정교회를 통합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또한 타종교 곧 기독교, 무슬림, 유태교와의 대화와 화해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정교회의 법통이 예수님의 직접 제자인 안드레아에서부터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에서부터 이어져 온 로마 가톨릭과 견주어 보면 역사의 길이가 똑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슬람에서 시아파와 수니파가 대립하는 것처럼 기독교에서는 정교회와 가톨릭교회가 대립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오늘 아침에 병산은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그리스의 아테네를 향해 일찍 떠났다. 병산은 아테네까지 갔다가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한국으로 귀국할 것이다. 그리고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아테네를 출발하여 동유럽을 거쳐서 로마까지 걸을 계획이다. 그는 안식년 휴가를 신청하여 2020년 1학기는 강의를 하지 않고 8개월 동안 3,500km를 계속해서 걸을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계획대로 진행되면 병산은 2020년 여름에 로마에서 프란체스코 교황을 알현할 것이다.
(필자 주: 그러나 이러한 병산의 계획은 수정되었다. 수원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이인수 씨는 아직도 수원대를 운영하는 고운재단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이인수 씨 후임으로 새로이 임명된 총장은 아무 권한이 없는 허세라고 알려져 있다. 병산은 2020년 1월 3일에 학교 측으로부터 안식년을 불허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병산이 아니다. 병산은 방학 동안에만 순례를 계속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그렇게 되면 병산의 교황 알현은 원래 계획보다 1년 연기되어 2021년 여름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2020년 2월에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순례 계획은 조금 더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병산은 새벽에 떠나고, 나머지 순례단원 세 사람은 랄랄라 숙소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마침, 내 옆자리에 한국에서 배낭여행 온 청년이 앉게 되었다. 그 청년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데, 그는 자꾸 나를 어르신이라고 호칭한다. 그래서 내가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내가 자네에게 여행하면서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줄까? 나처럼 나이 많다고 생각되는 어른을 만나더라도 호칭을 어르신이라고 하지 말고 형님이라고 부르게나. 자네가 형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기분 나빠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야. 오히려 기분 좋아서 음료수라도 한 병 사주고 싶은 생각이 날 것이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여행 꿀팁이야. 이해가 가지?”
이스탄불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내일 출발한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온전히 여유 시간이다. 그런데 로자 씨가 랄랄라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면서 뭔가 잘못되어 로자 씨와 따님은 4박으로 예약되었는데, 나와 병산은 3박으로 예약이 되었다. 병산은 떠났지만 나는 하루 더 있어야 하는데 차질이 생겼다. 그래서 주인장에게 말했더니 숙소 바로 건너편 작은 호텔에 1박을 예약해 주었다. 숙소 문제를 해결하고, 나는 로자 씨 모녀와 함께 이스탄불의 명소 그랜드 바자르를 구경하기로 했다. 세 사람이 전철을 타고 그랜드 바자르로 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온다.
그랜드 바자르는 터키어로 ‘카팔르 차르쉬’라고도 하는데, 이는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그랜드 바자르는 메흐메트 2세(II. Mehmet) 때인 1461년 비잔틴 시대의 마구간 자리에 만들어졌으며, 처음에는 작은 시장이었다가 증축을 거듭해 현재는 5천 개가 넘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이스탄불 가장 큰 전통 시장이다. 내부는 미로에 가까운 모습인데, 예전에 비해 깔끔한 느낌으로 많이 바뀌었으며 호객꾼들이나 강매도 많이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로자 씨는 순례단에 합류하기 전에 터키를 여행하면서 이 시장에 한 번 와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나로서는 잘 되었다. 나는 오늘은 병산 대신 로자 씨만 졸졸 따라다니면 된다. 로자 씨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너무도 커서 시장 입구가 20개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가장 많은 수의 가게가 있는 업종은 보석, 둘째는 골동품이라고 말해준다. 나는 보석 가게에서 각시에게 줄 목걸이 선물을 하나 샀다. 24K라고 하는데 가격은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 보석 값은 정찰제가 아니고 깎을 수가 있다고 한다. 나는 물건값 깎기를 잘하지 못하는데, 로자 씨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20% 정도 깎아서 살 수 있었다. 우리는 시장을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점심도 시장 안에서 사 먹었다.
로자 씨와 따님도 시장에서 뭔가 사기는 샀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뭘 샀는지 모르겠다. 남자가 여자를 따라 시장에 가는 일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여자들은 물건을 구경만 하고 여간해서는 사지를 않는다. 가게 주인들을 살펴보니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신 모두 의자에 앉아서 손말틀(휴대폰)만 들여다본다. 아하, 이제 세계인이 모두 평준화된 것 같다. 인류의 특징은 언제 어디서나 시간만 있으면 손말틀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꼬집기 위하여 누군가 포노 사피엔스 (Phono Sapiens)라는 말을 만들어 내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이제 포노 사피엔스로 진화한 것이다.
랄랄라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바로 앞의 호텔로 옮겼다. 호텔 방이 아주 작았지만 혼자서 하룻밤 자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나는 내일 낮 11시쯤 호텔을 나서서 택시로 공항버스 출발지로 이동한 뒤 Havaist라고 쓰인 버스를 타고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가면 된다.
이번 순례를 통해서 나는 이슬람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종교가 없는 사회와 종교가 있는 사회는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이것은 매우 추상적인 질문이며 단편적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단서를 찾기 위하여 인터넷을 검색하였다. 과거 역사에서 종교 전쟁과 종교 탄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조사해 보았다. 사망자 수는 정확하지 않고 대부분 자료에서 최소 얼마, 최대 얼마로 추산하는데 나는 최소치를 선택하였다.
11세기에 시작된 10번의 십자군 전쟁에서 천주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싸워서 20만 명이 죽었다. 16세기에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에서 같은 기독교인인 신교도와 구교도가 서로 싸워서 200만 명이 죽었다. 17세기에 유럽의 30년 전쟁에서는 신교 국가와 구교 국가로 나뉘어 싸웠는데 300만 명이 죽었다. 이슬람이 관용적인 종교라고 해도 근대에 오면 달라진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말년인 20세기 초에 터키는 아나톨리아 지방에 살던 그리스계 기독교인들을 30만 명 죽였다. 또한, 아르메니아계 기독교인들을 80만 명 죽였다. 종교가 정치나 종족과 결부되면 잔인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무려 5,000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다. 기독교를 믿는 유럽 대륙의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최전선에서 대치한 양쪽 병사들은 성경을 가슴에 품고 신에게 기도하면서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오, 신이시여,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