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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강은 강은 묵언수행 자세로 흐른다

평창강 따라 걷기 제4구간 답사 후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가 끝나고 며칠 뒤에 나는 다수리를 다시 찾아갔다. 계장리 바위동굴길을 지날 때 강 건너편 다수리 쪽에 보였던 돌담집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강가에 작은 기와집이 있었다. 마당은 100평 정도 될까. 사람이 다니는 통로 빼고 모든 공간에 빈틈없이 돌탑을 쌓았다. 돌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수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멋진 돌들이었다. 정자도 하나 있고.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탁자도 돌로 만들어놓았다. 내가 인복이 있어서인지 주인장을 만날 수 있었다.

 

통성명을 해보니 주인장 전희택 선생은 나보다 13살이나 위였다. 그분은 다수리 토박이로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나이 60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일해서 5남매를 잘 길러 모두 출가시켰다고 한다. 환갑을 넘기면서 그는 고향을 위해서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인근 강과 산에서 근사한 돌을 모아다가 탑을 쌓기 시작했다. 큰 돌은 경운기로 날랐다. 무려 20년에 걸쳐서 조금씩 조금씩 돌탑을 쌓아 아름다운 돌탑집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집은 “평창군의 아름다운 집”으로 뽑혔고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했다. 그는 사람들이 와서 돌탑집을 즐겁게 감상하는 것으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에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요즘에는 혼자서 집을 지키며 산다고 쓸쓸히 말했다.

 

인터넷에서 ‘다수리 돌탑집’을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나온다.

“인간은 돌을 남긴다” 기사 보러가기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370.html)

 

전희택 선생에게 강 건너편에 보이는 바위동굴길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겉으로 보이는 굴은 길이가 약 100m인데 오래전 일제강점기에 만들었다. 그 뒤로 양쪽 입구를 막아놓은 굴은 정부 지원으로 1983년에 3개월 동안에 만든 것이다. 본인이 공사 책임을 맡아서 동굴을 팠다고 한다. 동굴의 길이는 정확히 105m이고 폭이 4.2m 높이가 4.2m로서 버스나 트럭도 다닐 수 있었다. 이 동굴 터널을 통해 백덕산 아래에 있는 하일리와 원당리 사람들이 평창으로 왕래했다. 그러나 하일교(2006년 건설)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2018년 평창올림픽 때에 김치보관용 동굴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결국 성사가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나는 ‘평창강 답사팀’이라는 이름으로 카톡방을 만들어서 답사에 참여하고 있는 7인과 소통하고 있다. 제4구간 답사가 끝나고 일행 가운데 세 사람이 답사 소감을 카톡방에 올렸다. 여기에서 소개한다.

 

* 시인마뇽(우명길)이 다음과 같은 소감을 올렸다.

 

당나라 시인 유수명은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살면 이름을 얻고 물은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살면 영험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평창강은 용두골의 신선들이 함께 걸었으니 비로소 이름이 널리 알려질 것 같습니다. 함께 걸어 즐거웠습니다.

(필자 주: 용두골은 서울사대가 있던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을 지칭한다.)

 

* 가양(최돈형)은 답사 소감을 대신하여 한시(漢詩) 한 수를 소개하였다.

 

代悲白頭翁(대비백두옹)

백발을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하여

 

洛陽城東桃李花(낙양성동도리화) 낙양성 동쪽의 복숭아와 오얏꽃

飛來飛去落誰家(비래비거낙수가) 흩날리어 뉘네 집에 떨어지는고

 

洛陽女兒惜顔色(낙양여아석안색) 낙양의 처녀들 고운 얼굴 변할까봐

行逢落花長歎息(행봉낙화장탄식) 길에서 떨어지는 꽃잎 보면 긴 한숨만 쉰다네

 

今年花落顔色改(금년화락안색개) 금년에 꽃이 지면 내 얼굴도 바뀌리니

明年花開復誰在(명년화개부수재) 내년에 꽃이 피면 다시 누가 보려나

 

已見松柏催爲薪(이견송백최위신) 소나무와 잣나무는 땔감이 되는 걸 이미 보았고

更聞桑田變成海(갱문상전변성해) 뽕밭이 변하여 바다가 되더란 말도 다시 들었네

 

古人無復洛城東(고인무부낙성동) 옛사람 한번 가면 낙양성 동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 없고

今人還對落花風(금인환대낙화풍) 지금 사람만 바람에 지는 꽃 보나니

 

年年歲歲花相似(연년세세화상사) 해마다 피는 꽃은 서로 비슷한데

歲歲年年人不同(세세년년인부동) 해마다 보는 사람은 같지 않구나

 

寄言全盛紅顔子(기언전성홍안자) 한창때의 홍안 젊은이들에게 이르노니

應憐半死白頭翁(응련반사백두옹) 응당 반죽음 같은 이 백발노인을 가련히 여겨다오

 

此翁白頭眞可憐(차옹백두진가련) 이 노인의 백발 머리 참으로 가련하지만

伊昔紅顔美少年(이석홍안미소년) 그도 지난날에는 그대와 같은 홍안 미소년이었다네

 

주: 당나라 시인 유희이(劉希夷 652~680)가 지은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백발을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하여)의 전반부이다. 특히 위의 제6연 '해마다 피는 꽃은 서로 비슷한데, 해마다 보는 사람은 같지 않구나(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는 최고의 명문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용되고 있다.

 

* 석영(박인기)은 아래와 같은 소감을 카톡방에 올렸다.

 

평창 방림면 뇌운계곡에 가서 평창강을 따라 걸었다. 바람 살랑거리고 봄볕 유여(有餘, 여유가 있어)하여 흐르는 내의 물결이 햇살과 바람에 부드럽게 일렁이고 잘게 잘게 부서진다. 물은 그 모양을 스스로 즐기고, 그걸 바라보며 느리게 걷는 나에게는 그윽하고도 차분한 유열을 들여놓는다.

 

느리게 느리게 걷는다. 해발 400m가 넘는 고지대라 꽃은 더러 피기도 했지만, 아직 봉오리로만 부푼 것도 많다. 그들에게 눈맞춤하는 일이 오늘의 내 과업이다. 피어서 열매 맺고 씨를 맺어 지상에 번식하는 섭리를 찾아 다가올 계절들과 대면하겠지. 나는 지금 어떤 보이지 않는 섭리와 은혜에 올라타서 물 따라 꽃 따라 흘러가고 있는가. 사는 일에 어찌 수심 없을까. 수심을 불러내어 이 길 위에 풀어지라 기원한다.

 

봄 오는 능선을 바라보는 일은 나를 높게 이끌어 올리는 듯하여 좋고, 마음에 쟁여둔 소박한 포부를 비추어보는 듯하여 좋다. 지난겨울 잎 진 나무들 가지런한 행렬이 정결하게 보이고, 거룩하게도 보이고, 다감하게도 다가온다. 먼 산 능선을 달리는 나무들에게 나즉히 말을 걸어본다. 너의 머리 둔 곳, 하늘임을 느낄 때마다 기도하자, 기도하자. 나도 그러하리니!

 

평창강 어느 구비는 절벽을 끼고 돌아 수심이 깊어진다. 갑자기 강은 묵언수행 자세로 흐른다. 걷기 시작할 무렵 뇌운 계곡은 유년의 벗인 듯 매양 조잘거렸다. 냇물이 돌맹이들 데리고 흘러가는 듯, 돌들이 물을 데리고 가는 듯, 여울 소리 물길 경사 따라 쟁쟁거리며 울고 가더니, 어느새 여기서는 속 깊은 모정처럼 인내로 고요하다. 네 시간 남짓 나는 11km 정도를 걷는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만난 68학번 내 착한 친구들과 걸었다. 고맙다. 사람도 산천도 다 아무것에나 다 고맙다.

 

저녁은 은곡 선생 목공예 공방이 있는 찻집 '감자꽃 필 무렵'에서 친구들의 판소리 재능으로 즐긴다. 나는 이수인 작곡 우리 가곡 '내 맘의 강물'을 부른다. 오늘 걸었던 평창강 행정에도 어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내 마음의 풍경에도 맞는 노래이다.

 

은곡 선생의 배려로 이곳 산방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새벽 두 시쯤 바깥 화장실 가는 길에 바라본 하늘에는 주먹만 한 별들이 뚝뚝 떨어질 듯 온 하늘에 깔려 있었다. 장관이다. 또 다른 섭리를 느끼고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