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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우수의 계절에 김우수 씨를 생각함

배달인들에게 주머니 난로 정도의 작은 도움이라도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6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어느새 가을이 왔구나. 이따금 찬 바람이 불고, 늦은 비라도 방울방울 볼을 때릴 때면 나도 모르게 우수에 젖게 된다. 패티 킴의 노래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런 때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우수라고 했다. ​

 

왜 이름이 우수일까? 봄을 알리는 봄비를 뜻하는 우수일까? 가을을 재촉하는 빗방울처럼 쓸쓸한 마음의 우수일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서 설명을 들을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다. 김우수라는 사람은 11년 전 9월 23일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승용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는 병원에 실려 간 뒤 25일 만인 이달 10월에 저세상으로 갔다. 1957년생이라고 하니 그때 나이가 55세, 60도 되기 전이다. ​

 

그는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우동을 배달하던 중이었다. 급히 병원에 실려 갔지만 세상을 떠나게 되자 이 사람이 누구인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부모를 모르는 고아였다. 일가친척도 없었다. 고아원에서 나와서 험한 세상에 던져지자 누구처럼 사고도 치다가 방화범으로 감옥에 들어갔다. 거기서 소년소녀가장들이 사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나와 오토바이로 중국음식을 배달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이 사람은 어린이 가장들을 돕기 시작했다. 한 달에 월급으로 70만 원을 받으면서도 2006년부터 매달 5만 원에서 10만 원을 어린이재단을 통해 소년소녀가장을 도왔다. 5년째 단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돕고 있었다. 그리고는 4천만 원짜리 생명보험을 들어 그가 죽으면 그 돈을 소년소녀 어린이 가장들이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유가족이 없으니 상주도 없다.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인 최불암씨가 상주가 되었다, 그의 영정 앞에는 그로부터 도움을 받은 많은 어린이의 편지가 당도했다.

 

“희망을 품고 당당하게 살라고 항상 격려해주신 아저씨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겠습니다.” ​

 

당시 대통령과 부인도 조문했다. 많은 이들이 애도했다. 여러 언론이 그의 장례를 보도해주었다. 그 해 연말에, 본인은 갔지만 대한민국 휴먼대상 희망나눔상의 수상자가 되었고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이듬해에는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철가방 우수씨>가 여러 각계인사의 재능기부와 주인공 김우수 역을 밭은 최수종씨의 열연으로 또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영화의 수익금은 모두 불우이웃돕기에 쓰였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들의 가슴에 다시 사랑의 불빛을 켜주고 김우수 씨는 떠나갔다. 떠나간 것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

 

가을에 비가 오는 날이면, 패티 킴의 노래 가사에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라고 하듯 간간이 그 사람이 생각이 난다. 배달을 위해 점퍼에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앉아 싱긋 웃는 김우수 씨의 밝은 표정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고아였기에 부모 대신에 가정을 이끌어가야 할 소년 소녀들의 힘든 삶이 누구보다도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알량한 수입을 기꺼이 쪼개었을 것이다. 그 얼굴의 미소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웃을 위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천사의 메시지 그 자체였다. 그 미소는 버트 랑카스터의 백만 불짜리 미소보다도 훨씬 고귀한 미소임이 틀림없다.​

 

11년 전의 아득한 기억은 얼마 전 SNS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한여름 더위에 찌들고 장마와 집중 호우로 심신이 피곤해졌다가 아침저녁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우리가 다시 삶의 본질을 생각하는 때가 되어서 그런지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을 소환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자신의 ID를 ‘효과나비’라고 부르는 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분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작은 정성을 모아 요리 재료들을 사서 시설이나 어려운 사정에 처한 분들에게 나름대로 맛있는 요리를 해드리는 봉사단체를 운영하는 분이다. 벌써 15년이 넘었다.

 

원래는 ‘나비효과’라는 ID였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한 번 퍼덕인 것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또 이 영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어, 긴 시간이 흐른 뒤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었는데, '작은 사건 하나도 그것이 확대되면 엄청난 결과가 나온다'라는 것이 되고, 그것은 곧 우리 개개인에게서 시작된 작은 뜻이나 행동이 우리 인간들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곧 우리 몇몇이 모여 요리를 통한 봉사를 하면 그것이 이 사회를 밝게 바꾸어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봉사모임이다. ​

 

이 모임이 계속 이어지면서 일종의 사회단체로 등록돼 활동하고 있는데, 이런 활동에 대한 인식을 다시 살리기 위해 이 김우수 님의 스토리를 SNS에 함께 올린 것이리라. 다만 ‘나비효과’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용어가 되어 있어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다는 이유로 ‘효과나비’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전국에서 미혼의 젊은이들. 곧 '싱글들이 요리를 통해 사회봉사를 하는 모임'이란 뜻으로 ‘싱요사 봉사단’에 들어서 스스로 회비를 모아 요리 봉사를 주말마다 하는 것이 15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필자도 이런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런 기억을 되살리다 보니 요즈음 다시 김우수 씨 사고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몇 년째 계속되는 이른바 코로나 사태로 배달이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이 배달전선에 뛰어들고 있는데 그에 비례해서 이런 배달인들이 사고를 더 많이 당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는 것이다. 배달에 뛰어든 사람들은, 각각의 사연은 다르고, 김우수 씨보다는 사정이 좋은 일도 있겠지만 다들 생존을 위해 몸을 던지는 분들일 것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젊은이들보다는 나이 든 분도 많이 있는데, 그런 추세 때문인 듯 교통사고도 더 많아졌다는 소식이다.

 

 

김우수 씨가 그렇게 세상을 뜬 뒤, 어린이 재단 누리집에는 기부가 꼬리를 이었다고 한다. “천사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결심을 붙이기도 했단다. 김우수 씨는 이렇게 좋은 씨를 뿌리고 먼저 하늘나라로 갔는데, 이 땅에는 여전히 김우수 씨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배달에 뛰어들었다가 힘든 지경에 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들이 보험을 들고 사고에 대비하면 다행이지만 그것이 안 돼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네 삶이 팍팍하지 않은 곳이 없기는 하지만, 여기에서야말로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는 없을까?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이 당장 사고 뒤에 치료받거나 배상이나 보상받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데, 이 동안, 작은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단체나 기금이 있으면, 이들도 덜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이제 곧 겨울이 되고 거리는 다시 눈과 얼음으로 덮이면서 차가워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분들에게는 더욱더 혹독한 추위가 온다. 이들에게는 주머니 난로 정도의 작은 도움이라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가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곧 추위에 노출돼 한파와 부딪쳐야 하는 분들의 생각이 문득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