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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괴다’와 ‘사랑하다’

<우리말은 서럽다> 9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사랑하다’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벌레나 푸나무까지도 힘이 솟아나고 삶이 바로잡힌다는 사실을 여러 과학자가 밝혀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목숨의 바탕이기에, 참으로 사랑하면 죽어도 죽음을 뛰어넘어 길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여러 사람이 삶으로 보여 주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말꽃(문학)이나 삶꽃(예술)이 예나 이제나 사랑에서 맴돌고, 뛰어난 스승들의 가르침이 하나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부채질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사랑하다’와 비슷한 토박이말에 ‘괴다’와 ‘귀여워하다’와 ‘좋아하다’가 있다. 이들 넷을 비슷한 토박이말이라 했지만, 저마다 저만의 빛깔을 지니고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서로 다르다.

 

우선 이들 네 낱말은 ‘괴다’와 ‘귀여워하다’가 한 갈래로 묶이고, ‘사랑하다’와 ‘좋아하다’가 다른 한 갈래로 묶여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앞쪽 갈래는 높낮이가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서 쓰는 것이고, 뒤쪽 갈래는 높낮이가 서로 비슷한 사람 사이에서 쓰는 것이다. ‘괴다’와 ‘귀여워하다’는 아이와 어른 사이, 제자와 스승 사이, 아들딸과 어버이 사이처럼 손윗사람과 손아랫사람 사이에서 쓰고, ‘사랑하다’와 ‘좋아하다’는 아내와 남편 사이, 벗과 벗 사이, 아가씨와 사나이 사이처럼 높낮이가 없이 가지런한 사이에서 쓴다.

 

다 같이 높낮이가 서로 다른 처지에서 쓰는 것이지만, ‘괴다’는 높낮이를 뛰어넘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마음이고, ‘귀여워하다’는 높은 자리에서 아래로 내려 주기만 하는 마음이라 둘이 적잖이 다르다. 그리고 다 같이 높낮이 없는 자리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지만, ‘좋아하다’는 마음의 가장자리인 느낌과 생각에 머무는 것이고, ‘사랑하다’는 마음의 가장자리인 느낌과 생각을 지나 뜻과 얼까지 들어가고 마침내 몸까지 싸잡는 것이라 둘의 깊이가 아주 다르다.

 

 

‘귀여워하다’는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 주기만 하는 것이므로,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아무 거리낌도 어려움도 없다. 그러나 ‘괴다’와 ‘좋아하다’와 ‘사랑하다’는 모두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므로, 맞장구치며 주고받지 못하면 자칫 마음을 다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과 얼까지 주고받아야 하는 ‘사랑하다’에서는, 맞장구치며 주고받지 못하면 목숨까지 팽개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괴다’는 지난날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아들딸, 스승과 제자, 심지어는 서낭(토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신)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으로 두루 썼으나, 요즘에는 ‘사랑하다’에게 모두 빼앗기고 쫓겨나 자취를 감추는 듯하다. ‘괴다’가 살아 있어야 사랑을 주고받는 노릇이 세로와 가로, 씨줄과 날줄로 열려서 온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으면 몹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