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60돌을 맞이하여 준비한 <2023 MOVEMENT EWHA>가 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밤 8시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고등교육에 무용과를 신설한 이후 졸업생을 예술분야의 주요 요직에 진출시키며 명실상부한 무용계의 명문을 이루고 있다. 이번 무용과 60돌을 기린 공연은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이 직접 안무를 한 9편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학부생 작품 7편, 대학원생 작품 2편으로 개성 넘치는 춤과 자신들만의 독특한 이야기로 펼쳐냈다. 기성 무대에서 볼 수 없는 그들의 춤은 도전적이고 섬세하며, 열정적이고 우아하였다.
처음 시작을 알리는 작품은 석사생 김민선 안무로 최우민ㆍ정예주ㆍ최시울ㆍ문승연ㆍ우다윤ㆍ김민선과 중국유학생 웅강이ㆍ호결우가 출연한 ”찌그러진 진주의 노래“ 이다. 이 작품은 바로크의 어원인 브라코(Barroco)에 관하여 찌그러진 진주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안주하지 않고 변혁을 선도하는 이화는 찌그러진 진주와 같다고 한다. 진주의 찌그러짐이라는 이 심오한 뜻에 이화의 춤은 도전정신과 용기에 있음을 말한다.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한국 춤 기반의 춤사위와 격동하는 음악의 조화는 보는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고 들썩이게 하였으며 관객들에게 이 공연 전체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기 충분하였다.
이어서 한국무용 전공생 강은지ㆍ곽승린ㆍ남유원ㆍ이선주ㆍ이정원ㆍ정지혜ㆍ최혜리ㆍ홍승주의 안무 및 출연으로 꾸며진 ”숨결; Metaphor of ∀“는 모든 것은 숨결로부터 나온다며 세상의 수많은 결들 속에서 자신들만의 숨결을 채워놓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수 많은 숨의 결들을 자신들만의 다채로운 숨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이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숨의 방식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였다. 메타포로(Metaphor)는 은유, 비유를 말하며 ∀기호는 All 이라는 뜻이다.
암전 된 무대 위에서 바닷속 깊은 곳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곳에서 토슈즈를 신은 무용수들이 물 속에서 춤을 추듯 등장한다. 발레 전공생인 김하늘ㆍ나지수ㆍ남유진ㆍ서혜승ㆍ오은서ㆍ이태희가 안무와 춤을 함께 했다. ”가오리“는 사회가 정한 보편적인 이상향에 비상하겠다며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우리의 춤을 추겠다는 그들의 결의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바다의 가오리처럼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는 것 같아 뭉클하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그들의 가오리는 때론 흩어지기도 하고 한곳에 모이고 하며 뒤집어지기도 하였다. 전통의 토슈즈를 신고도 그들은 가오리처럼 무용수들은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현대무용 전공생인 나리원 안무와 전아현ㆍ강혜민ㆍ박소윤ㆍ정해빈ㆍ김경민ㆍ임채윤ㆍ허지윤ㆍ홍서현이 출연한 ”花(꽃)“은 하얗고 빨간 의상을 각양각색으로 입은 무용수들이 붉은 꽃을 들고 춤을 춘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이 작품의 이야기는 인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춘수 시 '꽃'의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가 창작동기가 되었다. 꽃은 그들의 간절한 욕구이자 인정을 상징한다. 그들의 인정욕구는 수동적이지 않다. 스스로 피는 꽃같이 그들은 모이고 움직이며 피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인정욕구는 오늘 관객석의 뜨거운 박수에서 인정되었을 것이다.
한국무용 전공생 성지윤 안무, 임재서 조안무 외 박정민ㆍ배서진ㆍ이채원ㆍ진유빈ㆍ홍현서ㆍ황혜원이 춘 “싱거운 고문”은 하얀 옷을 입고 빨간 슈즈를 신은 무용수들이 줄을 지어 등장한다. 단 한 사람만 머리를 풀고 있었다. 날아드는 사상에 무참히 살해당한 자아는 혼란의 춤을 추며 격동한다. 그들의 적막은 숨을 죽이게 하였고 그들의 춤사위에 해방을 꿈 꾸게 하였다. 적막한 세상에 자신을 찾고자 하는 그들의 혼란이 고요한 적막을 마주할 때 관객석은 함께 숨을 죽이며 앞으로 향해 나아가 것을 기대하게 하였다.
발레 전공생 김승혜ㆍ박정원ㆍ유승민ㆍ이윤서ㆍ구혜림ㆍ김예진ㆍ서진아 안무와 출연 “물들다”는 빛을 통과하는 프리즘이 다채로운 빛을 통과 시키듯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빛깔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7명의 무용수들은 무지개 빛깔처럼 빛이 났다. 한편에는 검은 의상, 다른 한편에는 각각의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인간의 관계와 자신만의 색을 나타낸다. 전통 발레의 동작을 흐트러짐 없이 표현하면서 마치 사진을 찍는 듯한 동작은 독특하고 재기발랄하였다. 전통의 발레 춤 선이 유쾌하고 섬세할 수 있다는 새로운 면을 선보이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발레를 기반으로 이 정도로 세련된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예술성이라 생각한다.
“해파리는 심장이 없다”의 안무와 출연에는 한국무용 전공 박규리ㆍ서민주ㆍ이민애ㆍ정서연ㆍ김가영ㆍ오정원ㆍ이수정이 하였다. 심장이 없는 해파리는 그저 유유히 바닷속을 제멋대로 헤엄치는 듯하지만 각자의 확고한 신념 아래에서 따로 또 같이 이동한다고 비유한다. 저들마다 생각하는 것이 제각각의 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제멋대로 아니라 하나 됨을 위한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한 손동작이 몰입을 더한다. 해파리를 표현 한 모자 위에 은빛 기다란 줄이 조명 빛에 반사되어 반짝 일 때마다 마치 바닷속에서 해파리를 조우한 듯한 효과를 주었다.
암전 된 무대 위에 움직이지 않는 무언가들이 우뚝 서 있다. 무용수들이 아니다. 마네킹이다. 현대무용 전공 김단ㆍ이효정ㆍ빈서연ㆍ권용희ㆍ류유진ㆍ설은주, 안현성ㆍ김정연, 박정은이 함께 안무하고 춘 “잠 못 자 죽어가는 마네킹”는 자신의 쓰임에 충실한 마네킹을 통해 외면은 완벽하지만 자신의 내면은 모르고 무엇인가를 죽기 살기로 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한다. ‘나’는 잠 못 자는 마네킹이라며 자신의 내면을 처절하게 들여다보며 그 과정 속 에서 자신을 찾아가길 바라는 반어적 표현이 20대 청춘의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토해낸 듯하다.
마지막, “사사(沙蛇)”는 임예지 안무 외 출연 그리고 현대무용 전공의 김나경ㆍ김윤서ㆍ류다연 발레 전공의 김혜지ㆍ박소희ㆍ이서연ㆍ정승우가 무대에 올라 뜨거운 사막 모래 위의 꿈틀대는 뱀을 표현하였다. 발레와 현대무용의 기반의 이 작품은 뜨거운 모래 위를 무신경하게 움직이며 마주하는 뱀의 모습처럼 이화 춤의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을 수준 높은 춤으로 선보이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이번 공연을 통해서 느낀 바는 첫째로, 본 작품들의 경향성은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전공에 상관없이 상당히 동시대(컨템포러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대 무용과의 방향성은 전통의 답습이 아니라 컨템포러리 작품을 창작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둘째로, 작품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미국이나 유럽 어디에 선보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라 확신한다. 셋째는 이 모든 안무를 학생들이 했다는 것이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이번 공연에서는 이화 무용과의 기량을 한껏 뽐낸 것 뿐만 아니다. 재학생들이 안무와 연출, 조명과 의상, 머리와 메이크업 구상까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만들어 선보였다. 이번 공연의 의미는 이화 무용과 학생들이 자신의 예술과 삶의 주체가 되어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작품을 창작해서 선보인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조기숙 학과장은 <2023 MOVEMENT EWHA>를 여는 축사에서 “이 공연은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서 창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나는 학생들의 작품을 보며 이들에게 내재된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작품은 상당히 예술적인 수준이 높고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다. 또한 우리 학생들의 실력은 날로 향상되고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무대를 향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대의 품에서 탄생되고 양육된 이들이 세상에 나아가 무용예술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라고 덕담을 건넨다.
이러한 이화 무용과의 인격을 존중하는 학생중심 민주적 교육철학은 우리나라 무용고등교육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그 무대 위에서 자신의 춤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세상을 바라보는 기발한 발상과 안무에 큰 박수와 격려를 보내며 이대 무용과의 혁신적인 발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