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나라에서 다도(茶道) 인구가 가장 많고 차를 함께 마시는 차회(茶會)도 가장 많은 곳이 부산 경남이다. 이 지역이 차문화가 성행하면서 차를 마실 때 쓰이는 도구, 곧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와 찻물을 담아 올리는 찻잔 혹은 찻사발도 중요해졌는데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인기를 얻은 차 도구를 만든 대표적인 도예가들 가운데 경북 문경에서 도예를 시작한 분들이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경남 양산에 가마를 열고 도예문화를 일으킨 신정희(申正熙 1930~2007) 씨가 그렇고 부산 기장에서 상주요를 운영한 김윤태(金允泰, 1936~2012) 씨도 그러하다. 문경은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적토, 백토, 사질점토, 도석 등이 널리 분포되어 있고 계곡의 물이 좋아 1700년 무렵 영ㆍ정조 시대의 공장안 폐지에 따라 문경새재를 넘어온 장인들이 정착하면서 처음으로 가마가 만들어졌으며, 그 전통이 이어져 오던 곳이었고 임진왜란 때 부산과 경남, 전라도 등지의 사기장들이 일본으로 납치된 이후 문경은 납치를 모면해 도자기 기술자들이 살아남은, 민수용 도자기의 대표적 산지였다.

경남 사천 출신인 신정희는 전국의 오래된 옛 도요지 200여 곳을 탐사하였다. 깨진 그릇 조각을 수집하여 태토와 유약을 분석하다가 1964년부터 문경에서 가마를 열었다. 천한봉(千漢鳳 1933~2021) 씨 등과 함께 도자기 연구에 주력하였으며 이후 경남 양산 통도사 근처로 옮겨와 거기서 진주 지방의 제기였던 황도사발(黃陶沙鉢) 재현에 성공한 뒤 일본 등에서 이름을 떨쳤다.

문경 동로면에서 태어난 김윤태 씨는 문경에 전해오는 도예의 전통을 흡수하고 함창에서 상주요를 설립해 전통 장작가마에서 찻그릇을 구워왔다. '망뎅이'란 원통형 내화벽돌을 쌓아 만든 전통 가마를 재현하여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가마를 부산 기장으로 옮겨 활동하면서 부산시 무형문화재 사기장이 되었다. 나아가 일본 사가현에 비탈 가마를 수출했고, 2001년 열린 세계도자기엑스포에선 우리 가마 재현의 총감수로 선정되는 등 도자계에서 활약을 펼쳤다.
지난주 문경의 문화예술회관에서는 부산에서 활약한 김윤태 씨의 작품들이 대거 선보이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화가로 활동하는 김윤태 씨의 딸 김영화 씨의 그림들이 벽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김윤태 씨의 도예작품들이 바닥 전시대에 올라 자태를 뽐내는, 말하자면 부녀 2인전이 열린 것이다.
먹과 분채로 시원한 현대식 산수화를 그려내는 딸 김영화의 그림 밑으로 전시된 김윤태 씨의 작품들은 그가 평생 재현해 온 고려와 조선시대의 백자와 분청 등 우리 도예의 주요 흐름들이 찾잔과 사발, 항아리 등으로 재현돼 은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일본 도예가들이 애지중지하고 있는 각종 찻사발의 원형작품들도 나와 있었다.
예술인의 전시회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이날 김윤태 김영화 2인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김윤태 씨가 2012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후 보기 힘들었던 그의 대표작품이 망라돼 보였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은 고인이 평생 해 온 작업의 전 과정을 대표하는 것이어서, 그의 도예세계를 일별해서 정리하는 의미가 크다.
이날 전시회의 개막식에서 고인의 유족은 이번에 나온 작품들을 일괄 문경의 도자기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발표해 큰 손뼉을 받았다. 말하자면 문경이라는 발원지를 떠나 대해를 다니며 활약한 예술가가, 마치 연어가 돌아오듯, 그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귀한 작품들을 지켜온 유가족들의 용단으로 도자예술의 고향 문경의 유산이 더욱 풍부해지게 되었다고 하겠다.
문경에는 도천 천한봉 씨의 도천 도자전시관, 국가무형유산인 김종옥 씨의 전시관 등 많은 도예가의 가마와 전시장이 있고 문경시가 운영하는 전시관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앞으로 문경도자기박물관을 중심으로 더 많이 모여져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것이기에 문경은 경기도 이천, 광주라는 관요를 게승하는 문화와는 달리 우리 생활문화에 밀착된 도예문화를 보여주고 지키는 보물창고로 국내와 외국인들에게도 사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예술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지자채들이 그 지역 출신의 예술가의 귀향을 받아들이는 데는 현실적인 제약이나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 문경시가 김윤태 씨의 작품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이를 후세에 전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은 우리 문화예술인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세상에 나가서 큰 업적을 쌓거나 공훈을 이루고 고향으로 그 영광을 돌려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기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