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서는 대중가요를 따라 부를 수 없었고 오로지 동요만 배우고 불렀다. 중학교에서도 대중가요를 부를 수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가곡을 배우고 듣고 부르곤 했다. 그러기에 홍난파, 현재명 등 유명한 작곡가들의 가곡을 배워 지금도 거의 외우고 따라 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팝송을 듣는 것이 유행이 되니 팝송을 잘 부르는 것이 자랑인 시대가 되었다. 팝송이 아니라면 클래식이라고 하는 서양 음악이나 노래를 배우게 되어 '오 나의 태양'이나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등 서양 가곡, 혹은 아리아를 즐기게 되며 연애를 하려 해도 팝송이나 이태리 가곡을 원음으로 부르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그에 따라 우리 가곡을 부르는 것은 촌스럽지 않느냐는 대우를 받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70년대 이후 우리 가곡은 점차 찬밥 신세로 변하고 있었다. 예전 TBC-TV에서 일주일에 가곡 한 편씩 황금시간에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곧 그것도 없어지면서 대학의 성악과에서도 우리 가곡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줄어들어 커리큘럼도 주는 추세였다. 간혹 2021년 송년 가곡 콘서트 등 가곡을 띄워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의 주류적 관심 밖으로 밀려나, 다른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음악에 견줘 가곡을 작곡하고 부르는 음악계는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그런데 올 한가위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KBS텔레비전이 한가위 특집으로 제작 방영한 <K-가곡 슈퍼스타>가 속된 말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10월7일 밤 텔레비전 화면에는 외국인들이 한복 혹은 정장을 하고 뛰어난 가창 솜씨로 우리 가곡을 부르는 경연대회가 펼쳐졌는데 이 방송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이다.
KBS 1TV로 밤 9시 반부터 방영을 시작한 본선에는 13명의 외국인이 나왔다. 그런데 노래를 들어보니 전부 아마추어가 아니라 자기 나라에서 활동하는 성악가들이었다. 전 세계 45개국에서 무려 228명이 지원한 가운데 영상 심사로 1차 예심을 거친 뒤에 독일ㆍ프랑스ㆍ영국 등 5개국 나라 밖 현장에서 한국성악가협회와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2차 예선에서 13명이 뽑혀 서울 KBS에 와서 경연을 벌였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나라의 참가자들은 '첫사랑', '어느 봄날'. '박연폭포'. '아리아리랑', '보리밭','그리운 금강산', '내 맘의 강물' 등 가곡들을 그야말로 멋지게 불러주었다. 출연자 대부분의 한글 발음이 우선 명확했고 각각의 노래 구절이 담고 있는 정서나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내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는 이들에게 전달되었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 곡 한 곡 정성들여 부르는 것을 자막과 함께 보니 그 곡의 아름다움이나 거기에 담긴 마음들이 더 쉽게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어 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심사위원장은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맡았고 최수종 씨의 사회도 점잖고 품위 있으며 따뜻한 진행으로 잔치분위기를 잘 이끌어 갔고 마지막에는 조수미와 조란 토도르비치, 그리고 전 참가자들이 함께 '축배의 노래'와 '아리 아리랑'을 불러 세계인들이 참여하는 이 한국 가곡의 잔치의 마감을 멋지게 장식해주었다. 조수미 씨가 부른 축배의 노래는 깊고 풍부한 음색과 음량이 돋보여 과연 세계적인 성악가로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었지만, 여기에 나온 우리 가곡들이 오케스트라의 반주와 어울려 멋진 음악으로 성큼 올라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사위원장의 말처럼 명확한 가사들이 외국인들의 진지한 모습을 통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 셈이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이렇게 우리 가곡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멋진 매력이 있고 그것이 수 백명의 세계 성악인들이 우리 가곡을 배우도록 하지 않았는가 하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 점이었다,

사실 부끄러운 일 가운데 하나는 그동안 우리가 조선조 사회에 갇혀 있다가 근대 이후 세계와 접하면서 우리가 가꿔오고 있던 문화예술, 정신문화 이런 것들의 가치를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가 외국인들이 인정한 다음에야 인정하고 환호하던 것이 그동안의 관행적인 일이었다면 이번 우리 가곡을 세계인들이 멋지게 부르자 비로소 우리가 환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일종의 부끄러움도 없지 않다.
다만, 그래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우리가 K-팝이라는 것으로 대중음악에서 한창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는데 정격음악이라 할 가곡에서도 우리 것의 가치가 드러나고 알려지는 것은 우리들이 품위있고 엄정한 문화도 잘 가꾸어왔음을 확인해주는 것이기에 우리 가곡을 좋아하는 우리 기성세대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이렇게 부활하는 것이 무척 반갑고 보람찬 일이라 단언할 수 있다.
세계 성악가들이 한국 가곡을 부르며 겨룬 이번 경연은, 단순한 음악 대회가 아닌 "한국 가곡의 세계화"라는 특별한 의미를 담은 출발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의 대상은 스페인 출신 소프라노 아이타나산스 페레스에게 돌아갔는데 그녀가 부른 '아리 아리랑'은 완벽한 발음과 감정 표현으로 객석을 사로잡았고 심사위원들도 전원이 만장일치로 최고의 점수를 줬다는 후문도 있는데 입상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다 그렇게 좋은 노래를 들려주었다는 평이다.
약간 아쉬운 점은 3년 전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열린 'K-Art Song(한국 가곡)' 발표회에서 우리 가곡을 열창해 주어 미국에서 한국 가곡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잭 모린(jack Morin 교수가 2차 예선에는 참가헸지만, 본선 무대에는 오르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근대 이후 우리 가곡의 탄생은 역사 속에 고난을 같이 한 민족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원래 가곡(歌曲)이란 용어는 전통음악에서 예술적인 노래를 뜻하는 것으로 엄연히 써오고 있는데 근대 이후 일본에서 서양음악을 접한 우리 음악인들이 독일이나 이태리의 성악곡의 양식을 참조해서 우리 말과 뜻을 담아 1925년 무렵부터 새로운 노래로 쓰기 시작하며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곡으로 일컫는 ‘Lied’라는 용어를 일본에서는 ‘카쿄쿠’(歌曲)라고 번역하였고, 일본 사람들이 만든 이런 예술성이 높은 성악곡들을 ‘일본가곡’(日本歌曲)이라고 하였는데 1925년 양악 1세대 작곡가 홍난파가 서양의 『세계명작가곡집』이라는 제목으로 악보집을 편찬하면서 비롯되었고 그 이후 가곡이라는 용어가 그전까지 쓰던 가요라는 용어대신에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가곡은 서양의 가곡 (독일ㆍ이태리ㆍ프랑스)에 견줄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비록 출발은 그렇지만 우리 가곡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에술적 정감을 대신해 일제강점기에 '봉선화'와 동요 '반달'이 우리 겨레의 상황을 대변한 노래로 사랑을 받은 사실이 있지 않은가?
독립된 조국을 염원하며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며 우리 민족과 함께 성장해 온 예술성악. 옛 전통음악에서의 가곡도 높은 예술성으로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근대 이후의 우리 가곡은 바로 이렇게 우리 역사 속에서 시대를 조명하며 시인ㆍ작곡가ㆍ성악가가 하나 되어 만든 것이기에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과 사랑을 담고 있고 그러한 정서를 이번에 노래한 외국 성악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21세기 범람하는 음악 문화의 홍수 속에서 한국 가곡은 때 묻지 않은 서정을 선사하는 고고한 자리를 이어갈 것이라고 오랫동안 우리 가곡을 연구해 온 최영식 한국가곡연구소장은 말한다.

한국 대중문화, K-컬쳐가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K-팝과 K-드라마를 중심으로 이제는 K-푸드, K-클래식, K-관광까지 한국의 모든 요소가 한류 팬들에게 각광받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가운데 KBS가 10월 문화의 달을 맞아 새로운 K-컬쳐 주자를 통해 한국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국어로 한국 가곡을 부른다는 조건은 음악적 기량뿐 아니라 언어적 감수성과 문화적 이해를 요구한다. 이번 방송의 성공은 한국 가곡의 선율과 서사가 세계적 감성으로 확장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확인해 주었고 특히 기존의 K-콘텐츠 영역을 넘어, K-가곡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열어준 시도로 박수를 받는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나라 밖 각국의 성악가들을 통해서도 이제 K-가곡은 급속하게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KBS가 오랜만에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다. 이번 'K가곡 슈퍼스타'는 단 한 번의 방송이었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부른 가곡이 낯설지 않았고, 그 진심이 전해졌다는 점에서 한국 음악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진짜 K콘텐츠의 확장판"이라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1회성에 그쳐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KBS가 "앞으로도 가곡을 세계에 알리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겠다"라고 밝혔으니 그 약속이행을 응원하며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