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봉래각을 뒤로하고 다음 답사지인 치박시 방면 서쪽으로 고속도로로 295km를 달리는 중에 비가 세차게 내려 걱정하였는데, 고차박물관을 보고 나오니 비가 그친다.
(이동 거리 457km, 호텔 : 济南和颐至尚酒店 0531-8167-9999)
▶고차박물관(古車博物馆) : 고속도로 공사 중 발견된 말 순장 유적(후효 마갱)으로 중국 10대 고고학 발견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값어치가 크다. 지하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뼈와 거대한 마차의 규모를 보고, 약 2,600년 전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발전된 군사력과 장례 문화, 정교한 마차 제작 기술, 전차 바퀴 자국, 말 유해, 마구간 유적이 잘 보존된 말 순장 터 등을 둘러보면서 감탄하였다.
2층 전시실에는 상나라부터 한나라까지의 고대의 말과 전차의 모형, 부속품, 진·한 시대의 청동 전차 모형과 정교한 말 장식 등이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서진(西晉, 302년) 무덤에서 출토된 유약 도자기 말과 동진(東晉) 초기의 등자를 갖춘 도자기 말은 기병 장비의 발전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전시물을 둘러보면서 당시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국력이 부럽기도 하고, 전차가 전쟁, 운송, 일상생활에서 전차와 말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 1호 갱 : 춘추시대의 말 제사 터로 길이 32m, 너비 5m에 전차 10대와 말 32마리가 매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전차 6대는 말 4마리씩, 4대는 말 2마리씩 끄는 형태로 작은 전차는 전투용, 큰 전차는 물자 운반용으로 사용하였다. 말의 뼈가 잘 보존돼 있으며, 머리와 목에 있는 장식이 매우 정교하고 다양하여 인상적이었다.
○ 2호 갱 : 길이 8m, 너비 3m로 전차 3대와 말 6마리가 묻혀 있다. 전차가 아래에 말이 위에 따로 매장된 것이 특징이다. 마차의 목재는 썩었지만, 황토에 바퀴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구리 장식은 원래 위치에 보존되어 당시의 마차 구조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 제3 전시관 : 시대별 특수 수레를 전시하였다. 소가 끄는 여성용 수레, 황실에서 사용된 호화로운 당나라 마차, 코끼리가 끄는 명나라 마차, 요나라의 큰 낙타가 끄는 수레와 공성 전차, 화전 전차, 사다리 전차, 성문 봉쇄 전차 등 군사용 마차도 전시되어 있다.
▶강태공 묘(姜太公祠, B.C.1156년경~B.C.1017년경, 치박 (淄博, 쯔보시) : 강태공은 낚시하면서 때를 기다렸다는 전설로 지혜와 인내를 상징하는 인물로, 주(周)나라를 건국한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망시켰다. 동해 사람으로 여(呂)씨 성을 가진 강(姜) 씨였다. 제(齊) 나라의 시조로 봉해진 군사이자 정치가 본명은 강상(姜尙)이다. 봉신전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 강태공의 유품을 묻은 의관총(衣冠冢) 앞에 새겨진 글자의 뜻은 周師齊祖(주사제조) 주나라의 스승이자 제나라의 조상이다. 대문 양옆에는 청룡, 백호 두 신과 의관총, 사당, 구목공 사당(강태공의 후손 제나라의 공신), 봉신유락궁(도교를 결합한 신선과 도사들의 인물상을 전시)이 있다.
잡초가 무성한 의관총을 왼쪽을 강태공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각 성씨의 종친회에서 세운 8개의 기념 비석 있었다. 여(呂), 구(丘), 고(高), 최(崔), 연(連), 정(丁), 노(盧), 낙(駱) 씨다. 또 오조전에는 도교의 다섯 선조를 모셔 놓아 강태공 사당은 전체적으로 군사와 도교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있다. 의관총을 둘러보면서 강태공의 인내와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강태공 사당에 있는 인물]
○ 제환공(齊桓公)과 관중(管仲) : 강태공의 12대손으로 제나라의 경제적ㆍ군사적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자신을 죽이려 했던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하는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를 남기고 춘추시대의 첫 번째 패권자가 되었다.
○ 제정공(齊丁公) : 강태공의 아들로 제나라의 기틀을 다진 군주이다.
○ 손무(孫武) : 오나라에서 《손자병법》을 썼지만, 그 뿌리는 제나라 귀족 출신이다.
○ 손빈(孫臏) : 손무의 후손(손자 혹은 5대손),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부활시킨 인물이다.
○ 은작산(銀雀山) 한묘에서 출토되어 죽간 박물관에 전시된 《손자병법》과 《손빈병법》 죽간은 제나라의 강력한 군사적 전통이 후대까지 이어졌음을 증명하는 유물이다.
[오조전(五祖殿)]
1. 왕현보(王玄甫 東華帝君, 도교의 근원) : 전진교 시조로 노자(태상노군, 太上老君)에게서 도를 얻어 곤륜산에 은거하며, 삼계(欲界, 色界, 無色界)를 관장했다. 도교의 다섯 조사 가운데 첫 번째로 남성 신선을 거느린다. (여성 신선은 서왕모가 거느린다.)
2. 장도릉(張道陵, 張天師) : 도교의 창시자로 후한 순제시기 쓰촨성 허밍산(鶴鳴山)에서 오두미도(五斗米道)를 창시했다. 이 종파는 천사도(天師道)라고 불렀다. 도교를 체계적인 종교의 형태로 발전시킨 인물로 '장천사'로 존경을 받는다.
3. 왕중양(王重陽) : 전진교(全眞敎) 창시자, 48살에 여동빈(呂洞賓)을 만나 신비한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고, 종남산에서 9년 동안 수련했다. 그는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 합일을 주장하며, 온전한 정신을 단련하고 속세를 떠나 도를 닦는 것을 강조했다. 출가 수행자는 살생, 육식, 음주를 금하고 혼인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4. 여동빈(呂洞賓) : 민중의 신선으로 도교의 정통성을 잇는 인물로 팔선(八仙) 가운데 한 명, 본명 여암(呂岩), 자는 동빈(洞賓), 도호는 순양자(純陽子), 산시성 영제현 사람으로 여산(廬山)에서 한종리(漢鍾離)에게 도를 전수했으며, 친근하고 정의로운 신선이 되었다.
5. 구처기(丘處機) : 도호는 장춘자(長春子), 산동성 등주(登州) 사람으로 19세에 왕중양의 제자가 되었고, 왕중양이 죽은 뒤 20년 동안 은거 수련하여 도를 이루었다. 1,222년 칭기즈칸의 초청을 받아 서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칭기즈칸에게 도를 닦아 장수하는 법과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설파했다. 구처기를 대원사(大元師)로 봉하여 전진교가 국가의 보호를 받아 교세를 확장했다.
▶제문화박물관(济文化博物館) : 산둥성 쯔보(淄博)시에 있는 제문화박물관은 제나라의 건국부터 번영, 그리고 그 뿌리가 된 동이족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전시 규모가 크고 방대하여 꼼꼼히 살피기에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지만, 산동성이 동이족 문화의 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제남시로(济南) 이동하였다.
화이부동(和而不同) : 논어에 나오는 말로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고 무턱대고 동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나라 경공이 우산(牛山)으로 유람을 떠났을 때, 안자에게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자는 거(경공의 총신)뿐이구나"라고 말했다. 이에 안자는 "그것은 화(和)가 아니라 동(同)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여 생긴 고사다.
○ 태호 복희 씨(太昊) : 동이족의 선조이자 수령으로, 팔괘(八卦)를 창제하고 그물을 만들어 고기잡이와 사냥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삼황의 으뜸'으로 불린다.
○ 치우천황(蚩尤) : 동이족의 수령으로 구리와 투구, 화살 등 무기를 제조할 줄 알았으며, 용맹함으로 인해 후대에 전쟁의 신으로 숭배받는다.
○ 소호 금천 씨(少昊) : 태호의 법을 수정한 동이족의 수령, 봉황 등 각종 새를 토템으로 삼아 관직을 나누었으며, 사회화 수준이 높았던 시기를 상징한다.
○ 순임금(舜) : 동이족의 수령으로, 인자함과 효심이 지극했던 상고시대의 성군이다. 역법을 수정하고 형법을 세우며 치수에 힘을 썼다.
○ 고요(皐陶) : 순임금 시절의 사법관(司法官)으로, 중국 최초의 법전인 《옥전(獄典)》을 제정했다고 전해진다. 공정한 판결로 '사법비조(司法鼻祖)'라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