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공묘(孔廟)ㆍ공림(孔林)ㆍ공부(孔府) : 곡부 성안에 있는 공묘를 찾았다. 유교의 시조인 공자(孔子, B.C. 551~479)는 춘추시대의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다. 공자의 ‘자(子)’는 '선생님'을 뜻하는 존칭이다. 그는 젊은 시절 여러 나라를 떠돌며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 했으나 당대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년에 고향인 노(魯)나라로 돌아와 후학 양성하였다. 그의 사상은 맹자와 순자를 거치며 유가(儒家) 사상으로 발전했으며, 동아시아 전역의 정치ㆍ사회ㆍ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공묘의 중심인 대성전(大成殿)은 궁전처럼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곳은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자 유교 문화의 상징적인 장소다. 오늘날에도 유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고 교육하는 장소다. 또,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여러 나라에도 대성전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올리는데, 공자와 유학자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으로, 유교의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공림(孔林)은 공자와 그 후손들의 가족 묘역으로 터가 매우 커 좁고, 구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순사당(舜祠, 12km, 40분) : 순임금은 요(堯)임금, 우(禹)임금과 함께 상고시대 성군의 상징인 오제(五帝) 가운데 한 명으로, 덕치와 효를 바탕으로 백성을 잘 다스린 이상적인 군주다. 순사는 유교 문화의 역사적 뿌리와 도덕적 값어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적지다. 시내에 있어 일찍 찾아갔는데, 9시에 문을 연다고 하여 사당 주변 상업과 문화 중심인 관후리(宽厚里) 고거리를 걷다가, 고을 현감 집 '김가대가(金家大院)'에 들어가 명ㆍ청 시대의 건축 양식을 둘러보고 사당으로 갔는데, 10분이 지나도 문을 열지 않아 아쉽지만 태안시 대묘로 출발하였다. [참고 자료] ○ 고대 제왕들의 계보 : 소호 금천 씨, 전욱 고양 씨, 제곡 고신 씨, 제요 도당 씨(요임금), 제순 유우 씨(순임금,), 우임금(禹)은 하(夏)나라의 시조 ○ 삼황오제 : 하 → 상 → 주 → 진(秦) → 한 → 삼국 → 진(晉) 나라로 이어진다. 1) 사씨(四氏) : 유소 씨, 수인 씨, 복희 씨, 신농 씨 2) 삼황(三皇) : 복희, 여와, 신농<삼황본기>, 복희, 신농, 황제<제왕세기>, 수인, 복희, 신농<상서대전>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봉래각을 뒤로하고 다음 답사지인 치박시 방면 서쪽으로 고속도로로 295km를 달리는 중에 비가 세차게 내려 걱정하였는데, 고차박물관을 보고 나오니 비가 그친다. (이동 거리 457km, 호텔 : 济南和颐至尚酒店 0531-8167-9999) ▶고차박물관(古車博物馆) : 고속도로 공사 중 발견된 말 순장 유적(후효 마갱)으로 중국 10대 고고학 발견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값어치가 크다. 지하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뼈와 거대한 마차의 규모를 보고, 약 2,600년 전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발전된 군사력과 장례 문화, 정교한 마차 제작 기술, 전차 바퀴 자국, 말 유해, 마구간 유적이 잘 보존된 말 순장 터 등을 둘러보면서 감탄하였다. 2층 전시실에는 상나라부터 한나라까지의 고대의 말과 전차의 모형, 부속품, 진·한 시대의 청동 전차 모형과 정교한 말 장식 등이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서진(西晉, 302년) 무덤에서 출토된 유약 도자기 말과 동진(東晉) 초기의 등자를 갖춘 도자기 말은 기병 장비의 발전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전시물을 둘러보면서 당시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국력이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봉래각(蓬莱阁, 5km) : 신선이 사는 전설 속 누각, 강북 제일각(江北第一阁)으로 1,061년 북송 때 건립, 단애산(丹崖山) 해안 절벽에 건설한 중국 10대 명루 가운데 하나이다. 여덟 명의 신선이 바다를 건넜다는 팔선과해(八仙過海) 전설과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의 '봉래'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진시황과 한 무제가 불로장생약을 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하며, 바다 위로 신기루 현상이 자주 나타나, 인간선경(人間仙境)이라고 불린다. 백운궁(白雲宮), 삼청전(三清殿), 용왕궁(龍王宮), 천후궁(天后宮), 미타사(彌陀寺) 등과 바다 그리고 해안 절벽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이다. 도교의 신선 사상이 품은 이상의 세계는 봉래, 여주, 방장으로 신선이 사는 섬이다. 봉래각에는 용왕신, 마조상(여자, 해신)을 주신으로 모셨고 또, 팔선전에는 8신선이 바다를 건넜다 하며, 주요 신으로 소동파, 여동빈을 모시는 전각이 있다. 도교는 신선처럼 살자는 뜻에서 화약과 연금술이 나와 불로장생을 기원하였다. 봉래각은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백성들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지 못하였는데, 이들의 정신적인 사상은 불교였지만, 불교의 이론인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2025년 10월 27일(월)~11월 3일(월) 7박 8일, 총 이동 거리 2,260km) 글ㆍ사진 : 안동립(고조선유적답사회 회장, 동아지도 대표) 참여자 : 안동립, 고재성, 김종택, 김지환, 문부산, 배국환, 백은희, 엄수정, 이우언, 이일걸, 장형순, 정운채, 황현규, 황현득, 안내 염용철, 손광휘 고(옛)조선유적답사회, 다음 카페 : http://cafe.daum.net/map4u7 2025년 세 번째 답사인 '전설적인 인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7박 8일 동안 중국 산둥성 일주를 하였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산동성의 이번 답사는 태산, 노산 등산과 장보고, 소동파, 강태공, 치우 천황, 태호 복희 씨, 순임금, 공자, 제갈량, 조조, 진시황 등 40여 명의 위대한 인물의 사상과 정신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배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1일 차 : 2025년 10월 27일 월요일 아침 8시 인천국제공항 제1 여객터미널 L카운터에 모였다. 제주항공 7C 8501편으로 인천공항에서 10시 50분 출발하여 50분 만에 중국 위해 공항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열하일기를 따라서, 답사 10일 차 일자 : 2025년 4월 28일(월요일) 북경공항으로 이동하여, 북경 출발~인천 도착 (10:40~13:50) 예정인 아시아나 항공 OZ332편은 관제탑 지시로 기내에서 80분을 대기한 끝에 12시 5분에 출발하여 14시 40분에 인천제1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답사단이 10일 동안의 강행군으로 2,390km를 달렸습니다. 단동부터 흥성고성까지는 국도로 이동했습니다. 작은 마을을 통과하다 보니 오토바이, 승용차, 농기계, 자전거, 개, 사람의 무단횡단 등으로 무질서하게 뒤엉켜 급정거와 서행을 반복하며 일정이 늦어졌고, 이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달려도 날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버스로 이동하여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창대와 장복은 5달 동안 7,620리(3,048km) 길을 짚신 신고 걸었으니,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암의 예리한 관찰력과 시대를 앞선 기록 정신에 깊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실학을 통하여 청나라가 받아들인 서양의 과학기술과 선진 문물, 종교까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소개되어, 새로운 문화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리 고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열하일기를 따라서, 답사 9일 차 일자 : 2025년 4월 27일(일요일), 이동 거리 234km 호텔 : 북경풍영군화(北京丰荣君华, 010-8146-3366) 열하에서 황제를 만나다 1780년 8월 13일, 건륭제의 만수절에 참석하기 위하여, 열하에 간 조선 사신단의 규모는 사신 10명, 수행원 64명으로 모두 74명이었고 말 55필이었습니다. 열하는 정치·군사적, 전략적인 필요로 건설되었으며, 몽골과 연합하여 준가얼 세력까지 점령했습니다. 해마다 만주 팔기군과 몽골 팔기군이 목란에 사냥터를 조성하여 군사 훈련을 겸한 무력시위를 하였습니다. 열하의 입구 여정문(麗正門)에 도착하니, 어제 만나서 취재하던 승덕시 관광국 관계자와 기자들과 관련 공무원 여러 명이 이른 아침인데도 나와 저희를 맞이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오늘까지 이국복 교수가 안내하였습니다. 여정문 앞에서 우측 화단에 중국 정부에서 설치한 연암 박지원 비석을 찾았습니다. 큰 돌 한쪽 면을 다듬어 박지원의 공로를 소개한 비석을 세워 두었는데, 가이드 황일만 사장이 사전에 답사하여 비석을 찾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였습니다. 한문으로 새겨진 '朴趾源'이라는 이름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열하일기를 따라서, 답사 8일 차 일자 : 2025년 4월 26일(토요일), 이동 거리 167km 호텔 : 승덕열하부주점(承德热河付酒店, 0314-2208-666) 금산령 만리장성에 올라서 이른 아침, 고북구에 있는 금산령 만리장성을 올랐습니다. 해발 380m 정도의 높이지만, 산꼭대기에 설치된 여러 개의 장대(將臺, 장수의 지휘대)와 산 능선을 따라 굽이치는 거대한 벽돌 성벽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합니다. 성벽을 따라 오르는 계단 양옆이 아찔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힘차게 뻗어 나가는 성벽의 줄기는 아름다웠습니다. 《열하일기》에 “1780년 8월 7일, 밤 삼경에 조선 박지원이 이곳 장성에 이름을 쓰려고, 패도(佩刀)를 뽑아 벽돌 위의 짙은 이끼를 긁어내고 붓과 벼루를 행탁(行橐, 여행할 때 노자를 넣는 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성 밑에 벌여놓고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물을 얻을 길이 없었다. 밝은 별빛 아래에서 먹을 갈고, 찬 이슬에 붓을 적시어 연암은 글자를 썼다.”… 1780년 8월 11일 돌아오는 길에 고북구에 들렀습니다. “내 저번에 새 문을 나갈 때는 마침 밤이 깊어서 두루 구경하지 못하였더니, 이제 그와 반대로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열하일기를 따라서, 답사 7일 차 일자 : 2025년 4월 25일(금요일), 이동 거리 199km 호텔 : 고북구고원금색주점(古北口古源金色酒店 010-6903-2388) 북경의 거리는 깨끗하고 빌딩 숲으로 세계 일류도시로 변모하였나, 도로에는 구걸하는 사람이 목에 건 정보무늬(QR코드) 인식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거지도 최첨단 슬기말틀(스마트폰)로 결재를 받는 모습을 보며, 중국 사회의 변화에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연암은 1780년 8월 1일부터 5일까지 자금성 남서쪽에 있는 조선 사신이 묵는 조선관에서 머물며 여러 기록을 남겼습니다. 필자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지만, 그 규모와 화려함에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살아있는 박물관 자금성 천안문 자금성(故宫博物院 紫禁城)을 보려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7시에 출발했습니다. 8시 40분경 천안문이 보이지도 않는 ‘전문대가’에서부터, 줄 서서 지하차도 두 개를 지나고, 소지품과 가방을 철저하게 뒤지고 검색대를 통과했습니다. 안면 인식과 입장권을 확인하고서야 오전 10시 20분경 천안문 광장에 진입하여 자금성에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사에서 입장권을 살 때 여권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열하일기를 따라서, 답사 6일 차 일자 : 2025년 4월 23일(목요일), 이동 거리 383km 숙박 : 북경금봉대주점(北京金凤大酒店 010-8459-6363) 우리가 묵은 리조트식 호텔은 북대하(베이다이허) 지역으로, 해변이 은모래로 발해만에 길게 뻗어 있는 중국 가장 큰 여름 휴양지이며, 해마다 베이다이허에서 양회와 같은 정치 행위가 열리는 곳입니다. 식사 뒤 호텔 부근 해변에 있는 진시황이 방문했던 작은 포구를 찾아갔습니다. 소문대로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 있었는데, 저는 늦잠을 자서 해변 산책을 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 노룡두와 산해관 노룡두(老龙头)는 발해만으로 연결되는 만리장성 끝으로,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합니다. 산해관 장성(山海关长城)을 찾아갔습니다. 이곳부터 관외 지역과 관내 지역으로 나뉘며, 북경까지 순탄한 도로가 건설되었습니다. 당 태종은 안시성에서 양만춘이 쏜 화살을 눈에 맞고 도망쳐 이곳에 와서야 안심했다고 전해집니다. 작년 실크로드 답사 때 장성의 서쪽 끝 가욕관(광화문)을 찾았는데, 올해 동쪽 끝인 산해관을 답사하니 감격스러웠습니다. 중국 최대 관광지답게 인산인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