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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먹는 재미로 가부키를 보러 가는 사람들














한국에 판소리가 있다면 일본에는 가부키(歌舞伎)가 있다. 둘 다 두 나라의 전통을 대표하는 예술이긴 하지만 둘의 성격은 다르다. 판소리가 큰 동작 없이 고수와 둘이서 소리를 하는 데 비해 가부키는 등장인물도 많고 춤과 노래와 연극적인 요소가 많다. 비슷한 점은 둘 다 공연 시간이 길다는 데 있다. 재미난 것은 가부키는 중간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하는 점이다. 아무리 판소리의 중간 쉬는 시간을 많이 준다 해도 소리꾼은 물 한잔 먹고 목을 추릴 시간이고 관객은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인데 견주어 일본의 가부키는 막간에 먹는 도시락 먹는 재미로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많이 다르다.

이때 먹는 도시락을 가리켜 마쿠노우치(幕の內)라고 하는 데 기모노를 입은 일본 친구와 가부키를 보러 가서 가부키 공연 중간에 도시락을 먹은 적이 있다. 그날 벤토(도시락)는 수수한 3,000엔짜리였고 가부키는 1등석이 1만 8천 엔이었다. 둘이 가부키를 보고 도시락 하나 까먹고 나오는데 1인당 2만 엔은 족히 써야 하니까 한국 돈으로는 26만 원쯤 된다. 물론 3등석이면 돈이 더 적게 들고 도시락도 주먹밥이면 더 싸게 먹히지만 더 비싼 도시락도 있다.






















가부키(歌舞伎)는 말 그대로 노래와 춤으로 이뤄진 일종의 연극인데 그 역사는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시대가 가고 1603년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선 이래 사람들은 지긋지긋한 전쟁놀음에서 해방구를 찾기 시작했고 때마침 귀여운 꼬마 아가씨 둘이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데서 유래한다는 기록이 있다. 《다문원일기(多聞院日記, 1582)》에 따르면 가가(加賀)는 8살, 쿠니(國)는 11살 먹은 아동으로 춤 잘 추는 이 두 신동 구경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또 한 전승에 따르면 이즈모(出雲) 출신의 무녀(巫女) 오쿠니(阿國)가 이즈모대사(出雲大社, 규모가 큰 신사)의 권진(勧進, 포교활동이나 불사 따위를 위해 보시를 받는 것)을 위해 여러 지방을 순회하면서 춤과 노래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느 것이 되었든 춤과 노래로 사람을 즐겁게 한데서 가부키가 유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가부키는 출연배우가 모두 남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뽀얀 얼굴 분장에 새빨간 입술연지를 찍은 모습이 요염한 여성 뺨친다. 거기에 화려한 의상과 교태스런 걸음걸이 그리고 섬세한 춤과 노래 등은 남자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여성스럽다. 가부키의 시작이 춤추는 여자아이들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초기에는 여자들이 공연했는데 도쿠가와 막부는 1629년 여자들의 가부키 공연을 금지하고 그 대신 미소년들이 여장을 하고 연기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고 지금 보이는 것은 남자가 여장을 하는 공연 형식으로 남았다. 그 까닭은 남녀가 뒤엉켜 가부키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다 보면 풍기문란이 발생한다 해서 아예 남자들로만 구성했다는 게 흥미롭다.

가부키 배우는 세습에 의해 대대로 배우가 되는데 오늘날 남녀가 함께 연극을 하는 시각으로는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가부키 배우는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 소리며 동작 등을 익히는 오랜 훈련을 거쳐 하나의 배우로 무대에 설 수 있는 만큼 사회적 지위도 높은 편이다.

가부키 공연의 주된 내용은 권선징악, 애절한 사랑, 복수, 부모 자식 사이의 사랑, 형제애, 의리 등으로 기본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우리가 판소리 대사를 잘 못 알아듣듯이 가부키 역시 옛말을 많이 쓰고 있어 이해가 어려운 편이나 줄거리를 아는 사람들로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가부키는 전국 곳곳에 가부키만 공연하는 전용 극장인 가부키좌라는 곳에서 연중무휴 상연될 만큼 꾸준히 일본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금 긴자의 유명한 가부키좌는 건물이 낡아 2010년부터 극장을 헐고 다시 짓고 있는데 2013년 개관이다. 그러나 도쿄에는 이곳 말고도 가부키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가부키 공연 표는 비싼 것은 1만 5천 엔부터 싼 자리는 2,000엔 전후도 있다. 큰 극장에서는 전 막(幕)을 다 보지 않고 1막씩만 관람할 수 있도록 좌석을 배치한 곳도 있을 만큼 관객을 위한 배려가 크다. 그래서 그런지 가부키좌에는 항상 유료관객으로 바글거린다. 덩치만 크게 만들어 놓은 텅 빈 공연장에서 일가친척 외에 유료관객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전통예술 공연장과는 아주 다른 가부키좌의 인기를 보면서 그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관심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