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극히 절제된 전통가무극 노가쿠(能樂)를 관람하고…
* 일본 한자는 구자체를 썼습니다.
오-오-잇(합창소리) 타타타탁(북소리) 오-오-잇(합창소리) 타타타탁(북소리)
“북잽이들의 북 치는 소리도 절도가 있지만 그들이 내는 소리 역시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 내는 소리처럼 획일적인데다가 질러내는 소리가 각이 져서 마치 사무라이들의 칼싸움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말은 한국인들이 노가쿠(能樂)를 함께 보고 나오면서 내뱉은 첫마디이다. 나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출연자들의 바로 코앞에 앉아서인지 유달리 북잽이의 절도 있던 손놀림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키나 분라쿠(인형극) 등은 일본에서 여러 번 볼 기회가 있었지만 노가쿠 공연은 좀처럼 볼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얼마 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처음 보는 기회를 얻었다. 일본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 타츠미만지로(辰巳滿次郞) 씨 등 노가쿠시(能樂師) 일행의 한국공연 소식을 알려준 천안 순천향대학 교수인 후지타 선생은 나와 오랜 지인으로 순천향대학에서 노가쿠 특강을 마친 뒤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공연이 있으니 함께 보자고 권유해와 보러 간 것이다.
노가쿠(能樂)는 1,0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가무극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인정받은 예술이다. 그러나 노가쿠란 말이 널리 사용되게 된 것은 1881년 노가쿠샤(能樂社)의 설립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에도막부에서 식악(式樂, 의례용 음악)을 담당하던 사람들은 주로 사루가쿠(猿樂, 노가쿠의 원형)를 하던 배우들이었는데 명치유신으로 인해 이들이 실직위기에 처하자 이와쿠라도모미(岩倉具視)를 비롯한 정부 요인들이 자금을 내 노가쿠샤(能樂社)를 만들고 공연장도 지어주게 된다.
노가쿠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시테(주인공), 지우타이(합창), 피리, 소북, 대북, 태북(太鼓) 연주자들이다. 이번에 한일전통문화교류 공연으로 내한한 타츠미만지로 선생은 4살 때 데뷔하여 200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받은 노가쿠시(能樂師)로 한국인들에게 선보인 노가쿠는 하고로모(나뭇꾼과 선녀) 외 4가지였다. 보통 연극에서는 배우들이 맘대로 움직이는 것과는 달리 노가쿠에서는 걸음걸이라든가 동작 하나하나가 매우 절제된 움직임이라 관객들은 숨쉬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내용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타츠미만지로 선생은 통역을 세워 몇 가지 동작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실연(實演)도 해보였는데 그의 친절한 설명과 동작에 관객들은 큰 손뼉으로 화답했다. “노가쿠의 동작은 오랜 세월 동안 걸러지면서 잔가지나 복잡한 동작을 잘라버려 아주 극도의 동작만을 남긴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노가쿠는 그 옛날 한반도의 영향을 입은 것”이라고 타츠미만지로 선생은 노가쿠의 정의를 간단명료하게 내려주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자꾸 일본의 전통 예술도 접하다 보면 나름대로 깊은맛을 느낄 것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자주 한국인들을 위해 일본의 전통문화가 소개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