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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재산 다툼하는 두 아들을 그린 사이카쿠의 “쇼코쿠바나시”

 

 

           

 

 

“욕심 때문에 가문과 형제를 버리는 일은 세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로 시작되는 사이카쿠 쇼코쿠바나시(西鶴諸國ばなし, 권2-7화)의 이야기는 320여 년 전 일본의 이야기지만 21세기인 오늘 한국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시나노 지방에 사는 여든여덟 살 되는 노인이 아들 둘을 불러다 앉히고 유언하기를 집안의 재산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골고루 사이좋게 나눠가지되(작은 왕겨라도 나누라) 특히 집안의 보물인 칼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팔아치우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아버지가 죽고 첫이레가 되기 전에 재산 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당시 에도시대(1603-1868)의 유산상속은 대개 유언에 따랐으나 상황에 따라 달랐다. 이 두 아들은 아버지 유언대로 똑같이 재산을 나눴지만 아버지가 아끼던 소중한 칼 한 자루에 이르러 다툼이 일었다. 칼을 두 쪽으로 나눌 수 없기에 둘 중에 하나가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집안 문중 사람들이 중재하기를 나머지 재산은 똑 같이 나눴으니 칼은 형인 장남이 갖는 게 좋겠다고 했으며 형 역시 칼이 몹시 갖고 싶었다. 그러나 동생이 승복을 안 하는 바람에 형은 칼 한 자루를 차지하기 위해 동생과 나눈 재산을 몽땅 동생에게 건네고 칼을 차지하였다.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면서 절대 팔지 말라한 칼을 차지한 형은 그 길로 칼을 교토의 감정소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칼을 팔아 자신의 팔자를 고치려는 큰 기대감으로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으나 감정 결과 이 칼은 조잡하고 무딘 칼이라 값은커녕 거저 줘도 쓸모없다는 판정을 받고는 이내 집으로 달려가서 어머니에게 따지듯 이 칼을 어째서 아버지가 애지중지 했는가를 묻는다.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어느 해 여름 가뭄이 심해 논에 물을 못 대고 이웃동네 사람들과 싸움이 붙었다. 그때 아버지는 이 칼로 이웃동네 사람을 죽이려 했으나 칼이 무뎌 살인죄를 면했다. 이후 아버지는 이 칼이 잘 듣지 않은 것을 기뻐하며 살인죄를 면하게 한 생명의 은인이라 생각하여 가보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야기는 이후 복잡한 양상을 띠며 결론을 내지만 욕심쟁이 두 아들이 재산 다툼하는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으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쓴 이하라 사이카쿠(井原 西鶴, 1642-1693)에 대해서는 지난 일본이야기에서도 한 번 다뤘지만 51살로 삶을 마감하면서 시와 소설 등 많은 작품을 남겨 17세기 일본 문예부흥기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특히 사이카쿠의 소설에는 당시의 사회상이 잘 반영되어 있는데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 1682)은 환락가를 다룬 그의 많은 소설 가운데 처녀작으로 주인공 요노스케(世之介)가 겪은 6살 때의 조숙한 경험에서부터 60살 때 여인의 섬(女護島)으로 떠날 때까지의 호색적인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비슷한 성격의 작품 중에 호색5인녀(好色五人女, 1686)도 높은 평을 받는 작품이다. 에도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인 이하라 사이카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 사는 세상의 애환은 시대와 국경을 뛰어 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