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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채색의 마법사 고구려 담징스님과 법륭사 1

고대 일본의 한국 스님들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비단 옷 걸친 천사 하늘을 난다
걸림 없이 이승 세계를 박차고
훨훨 서방정토 찾아 가는
그 얼굴에 살짝 드리운 미소"
-이한꽃 비천’- 

   
▲ 고구려 담징스님이 그린 법륭사 벽화 ‘비천(飛天)’

담징스님의 금당벽화가 그려져 있는 법륭사(法隆寺, 호류지)는 인구 27,000명의 소도시 나라현(奈良県) 이카루가정(斑鳩町)에 있다. 서기 607년에 지어진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데 이웃해 있는 법기사(法起寺)와 함께 1993년 법륭사지역의 불교건조물(仏教建造物)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이 절을 지은 목수들과 벽화를 그린 스님 그리고 이 절에 주석했던 스님들은 모두 한반도 출신이다. 이들 백제출신 장인들에 대해 와세다대학의 미즈노유(水野祐) 교수는 기기와사원(記紀寺院)이란 책에서 고대 도래인들은 일본 내의 절을 짓고 불교 발전을 위해 건너 온 인재 집단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지은 절 가운데 특히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에 지어진 사천왕사, 광륭사, 법륭사, 약사사, 동대사 등은 이들 한반도계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사서들은 앞 다투어 적고 있다. 

또 이러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해주는 곳이 있다. 바로 일본 최대의 사사(寺社)건축회사인 금강조(金剛組, 곤고구미)이다.

바다건너 백제국에서 3명의 장인이 일본에 초대되어 왔습니다. 이 가운데 한 분이 금강중광(金剛重光)입니다. 607년 창건된 법륭사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목조건축의 최고봉입니다. 이 절은 금강중광과 함께 백제에서 건너온 장인의 손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본사를 오사카시 천왕사구 (大阪市 天王寺区 四天王寺 1丁目1429)에 둔 금강조 건축회사는 창업일을 아스카시대 578으로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일개 건축회사가 근거 없이 주장하는 게 아니다. 이미 백제 장인들이 일본에 건너간 기록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법륭사 서원 가람 모습

일본서기승준왕(崇峻天皇, 588)조에 보면 백제국에서 불사리(佛舍利)와 승려 그리고 기술자 집단이 무더기로 건너갔음을 알리는 기록이 보인다. 당시에 건너간 백제 스님들과 기술자 집단은 다음과 같다.  

혜총(恵総, 이하 일본발음 에소우), 영근(令斤, 료콘), 혜숙(恵宿, 에슈쿠), 영조율사(聆昭律師, 료쇼릿시), 영위(令威, 료우이), 혜중(恵衆, 에슈)도엄(道厳, 도곤), 령개(令開, 료우케) 등 스님 8, 건축 기술자 태랑말태(太良未太, 다라미다), 문가고자(文賈古子, 몬케고시), 로반박사(鑢盤博士, 탑의 상륜부를 만드는 장인), 장덕백매순(将徳白昧淳, 쇼토쿠하쿠마이쥰) ,기와박사(瓦博士) 마나문노(麻奈文奴, 마나몬느), 양귀문(陽貴文, 요우쿠이몬), 석마대미(昔麻帯弥, 샤쿠마타이미), 화공(白加, 뱌쿠카)” 

하나의 건축을 완성하기 위해서 여러 장인들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지붕공사를 위한 기와기술도 빼 놓을 수 없다. 일본의 기와기술이 한반도에서 태동했음을 알리는 사람들이 있어 소개한다. 일본 효고현(兵庫県)남부의 아카시(明石)해협에 면한 아카시시(明石市)에는 아카시원인(明石原人)이라는 모임이 있다.

명석원인(明石原人)이란 일테면 북경원인(北京原人)처럼 구석기 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으로 이 지역이 그만큼 역사가 깊음을 시사한다. 이 모임의 회장인 야마네(山根金造)씨는 2005226도시만들기 시민 강좌,(まちづくり市民塾)’에서 아카시의 기와산업에 대해 발표 했는데 여기서 그는 기와의 전래를 백제에 두고 있다. 

백제로부터 건너온 4명의 기와박사가 588년 법흥사에서 기와를 구웠다. 스이코왕 32(629에는 46개의 절이 지어졌고 지통왕 4(690)에는 전국에 545개사가 완공 되었으며, 나라시대의 700개 절에서 이 기와가 쓰였다. 이는 오랫동안 대사원 전용품으로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근대의 축성(築城) 때부터 겨우 쓰이게 되어 에도시대(1603~1868)부터 일반 민가에도 기와를 사용하게 되었다 

일본 건축에서 기와 사용에 대해 이처럼 명료한 설명도 없을 것이다. 야마네 회장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명석원인회(明石原人会)모임은 100% 일본인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조그만 지방도시에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이들이야말로 사실(史實)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역사학자들 보다 낫다. 근현대사의 날조도 그렇지만 일본학자들의 고대사 날조와 왜곡은 심각한 상태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왜곡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제스님 8명과 함께 건너간 여러 장인들의 눈부신 활약을 소개한 명석원인회(明石原人会) 회원들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절을 지을 때 백제장인들이 대거 활약했음에도 건축당시에 쓰인 자가 고구려자(高麗尺, 고마샤쿠)라는 점이다. 중심인물들이 백제인임에도 건축현장에서는 고구려자가 쓰인 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건축술도 이미 일본 땅에 들어 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구려인과 백제인들이 법륭사 건축현장에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해진다.

   
▲ 백제출신 목수들이 지은 법륭사 금당과 오중탑

이 금당 안에 담징스님은 무려 50면의 벽화를 그렸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성덕태자의 스승인 고구려 혜자와 백제 관륵스님이다. 고구려 혜자스님은 일본의 성자(聖者)로 알려진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20년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했던 분이다. 백제 관륵스님 역시 성덕태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또한 벽화를 그린 담징스님도 성덕태자가 초대하여 이카루궁(斑鳩宮)에서 함께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남북한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경직된 체재 하에서 반목하고 지내지만 천여 년 전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스님들은 일본땅에서 함께 주석하면서 사이좋게 불사(佛事)와 불법(佛法)을 전수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담징스님은 언제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