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강장원 한국화가]
![]() |
||
▲ 설악운해 <강장원 한국화가 그림> |
설악산 높이 만 길이나 되니 / 雪嶽之山高萬丈
하늘까지 닿은 봉우리에 쌓인 기운 봉래와 영주까지 이어졌네 / 懸空積氣連蓬瀛
천 봉우리 쌓인 눈빛에 바다의 해가 화창하니 / 千峯映雪海日晴
아스라한 옥경에 상제들 모였구나 / 縹緲群帝集玉京
동봉노인이 그곳에 머물러 / 東峯老人住其間
고상하고 쇄락(灑落)한 기상 하늘에까지 닿았네 / 高標歷落干靑冥
바람을 부르고 비를 꾸짖어 귀신을 농락하고 / 嘯風叱雨弄神怪
불가(佛家)로 달아나 그 이름을 숨겼네 / 逃空托幻藏其名
도성문에서 걸식하며 경상을 멸시하고 / 乞食都門傲卿相
해학을 일삼아 저자의 아이들 놀라게 했네 / 縱謔飜爲市童驚
광태(狂態)를 부린 이유 고결하려는 것만이 아니니 / 猖狂不獨事高潔
이 마음 길이 일월과 함께 밝으리 / 此心長與日月明
위 시는 미수(眉叟) 허목(許穆) 선생의 문집인 《기언(記言)》에 있는 "강릉에 가는 도중에 설악산을 바라보고 감회가 일어 짓다" 라는 시 전문이다.
미수 허목 선생은 1595년(선조28) 서울 창선방(彰善坊)에서 태어나 1682년(숙종8) 경기도 연천(漣川)에서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벼슬과 인연이 없이 오직 한 사람의 학자로서 연구와 저술을 일삼는 한편, 각 지방으로 여행과 유람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55세 되던 효종(孝宗) 1년에 비로소 능참봉(陵參奉)으로 제수되었고, 64세에 지평(持平)으로, 그리고 65세에 장령(掌令)으로 임명되어, 여러 번 사양하다 못해 차차 관계(官界)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리하여 현종(顯宗) 1년부터 경연(經筵)에서 국왕을 가까이하면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였고, 숙종(肅宗) 1년 81세가 되던 해에 이조 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대배(大拜)하게 되었다. 늦게 출발한 관력(官歷)으로 인신(人臣)의 최고 지위인 삼공(三公)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또 그러한 예가 많았던 것도 아니다. 일반 과거 출신자로서는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미수는 산림(山林)으로 진출한 분이다. 산림이라는 것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임하(林下)에서 독서 강도(讀書講道)하는 선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가 강원도 강릉으로 가던 도중에 지은 설악산은 지금 문장으로는 조금 어렵지만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참조: 한국고전종합, 이우성(李佑成)의 "기언(記言)" 해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