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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세연정과 동천석실에서 한 사람을 그리다

해남 녹우당에 이어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답사 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국(水國)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 닻 들어라 닻 들어라 / 만경창파에 실컷 배 띄워 가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인간 세상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 -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 ‘가을’ 가운데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이 시를 지은 것은 64살 되던 1651년(효종2) 9월로 보길도 세연정(洗然亭)에서다.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단정하여 마음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뜻이다. 고산의 발자취를 따라 서울에서 해남 고택으로 달렸다가 다시 보길도로 가기 위해 차를 몰아 완도 화흥포항에 닿았다. 이곳에서 노화도행 배를 타고 동천항에서 내려 배에 실었던 차를 타고 다시 보길도로 내달았다. 교통이 좋아진 지금도 전혀 쉽지 않은 땅끝마을 보길도(甫吉島)에서 고산은 여생을 마쳤다. 초가을이지만 여전한 무더위 속에 세연정으로 가기 위해 원림(原林)을 걷는다. 가뭄이 들어 원림 속 계곡물은 말라 있었고 숲속 늦매미 울음소리가 더 무덥게 느껴졌다. 평일에 찾아서인지 세연정에는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고즈넉한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다는 기쁨에 시선을 연못쪽으로 돌리니 부용동팔경(芙蓉

자연이 들어온 한국정원, 윤선도의 보길도 원림

부용동 계곡, 크고 작은 자연암반이 계곡에 놓여있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1587년에 태어나 5살 어린시절, 임진왜란을 겪으며 자란 윤선도는 조선 후기 음악가, 시인, 풍수사, 의사로 한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윤선도는 본관이 해남인으로 정치인으로 고위 관직에도 올라 효종이 죽은 뒤 발생한 예송논쟁의 중심인물로 송시열의 반대편에 서서 논쟁에 가담하였다. 그 과정에서 서인의 맹공에 오랜세월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윤선도는 소현세자, 봉림대군(후에 효종)과 현종의 세자시절 이들의 사부였던 덕에 사형은 면하고 유배생활만 하게되었다. 윤선도는 병자호란 중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항복 화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욕되게 생각하고 평생 은거를 결심하고 제주도로 향하였다. 그런데 제주로 가던 중 보길도에 이르러 지금의 부용동 계곡의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되어 제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 머물며 부용동이라 이름짓고 낙서재라는 정자를 짓고, 산과 바다를 벗삼아 조용히 살고자 하였으나, 인조의 피난 행렬에 호종하지 않았다는 모함에 탄핵받아 경상북도 영덕으로 유배되었다. 유배가 끝난 뒤 다시 보길도로 돌아와 부용동의 자연에

잊지 말아야 할 일제 강점기의 가혹한 일상

한국국학진흥원, 일제강점기 사진 공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79돌 광복절을 맞아 민간이 소장했던 자료 속에서 찾은 일제 강점기 뼈아픈 역사를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한 지 2~30년이 지난 1930~40년대 학교와 마을에서 당연한 듯 이루어진 신사 참배나 군사 훈련,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동원되며 찍은 사진들은 그래서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신사 참배와 군사 훈련 현장 1930년대 중반, 공립 이리농림학교의 학생들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 교내에 있는 일본 신사를 참배하고, 경성(서울)에 수학여행 간 학생들이 남산에 있는 신사를 참배한 뒤 찍은 사진이다. 학교에 다니는 내내 이루어진 신사 참배나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인 남산 신사 참배는 은연중 일본이 원하는 신민이 되어가는 수순이었다. [사진1, 2] 1930년대 중반 공립 이리농림학교 교내에서 군사 훈련을 하며 모의 전쟁으로 진지를 탈환하는 장면을 연출한 사진, 일본 욱일기가 걸려 있고 멀리 산 위로 신사가 보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군사 훈련하고 찍은 사진, 1940년대 초 관립 경성법학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이 군사 훈련을 받기 전에 일본 훈련대장의 훈시를 듣는 모습, 1941년 강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