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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백년편지] 한국의 노블레스오블리주, 우당 이회영 선생께 -황지영-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중국 하면 북경, 상해와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여행하기 불편한 곳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도시 이외의 장소는 아무리 유명한 곳이어도 아직 여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에도 딱 한 곳은 가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살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백두산을 방문할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회사의 사장님의 권유였습니다. 저희 회사는 어린이, 청소년 대상의 금융교육을 진행하는 교육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희 사장님께서 2명의 직원에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진행하는 ‘제10기 독립정신 답사단’으로의 참가를 권한 것입니다. 역사, 독립운동 등에 큰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 코스 중에 ‘백두산’이 있음을 알고, 기꺼운 마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참여한 답사 일정 중 제 마음을 이끈 것은 백두산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선생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여순감옥에서 선생의 동상과 사진을 접하고 남모를 마음에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저는 선생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에서 이어진 ‘경희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남들과 비슷하게 캠퍼스가 예쁜 학교라는 인식만을 가지고 입학한 경희대학교는 여성적인 매력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들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경희대학교의 전신이 바로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던 ‘신흥무관학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선배들은 ‘신흥무관학교’를 찾아 만주로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어리기도 했고, 신흥무관학교도 선생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번 답사에 앞서 대학생 단원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는 마음에 찾아본 여러 자료들 중 선생님에 대해서 그리고 신흥무관학교에 대해 찾은 자료는 저에게 제가 졸업한 모교에 대해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선생님의 뜻이 이어진 학교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흐름이 어떠한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정신이 살아있는 학교라 생각하니 제가 졸업한 학교가 조금 더 좋아졌습니다.

선생님은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조선 최고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집안은 당시 8만석을 거두는 대부호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나라가 망하자 선생의 6형제는 지금으로 따지만 약 600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정리하고, 중국 만주로 향하게 되었지요. 그 엄청난 재산으로 설립한 것이 바로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 였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를 양성함은 물론, 독립 이후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문과 무를 겸비함은 물론 인재양성을 위한 정신교육도 놓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 신흥무관학교에서 배출한 독립군들이 후일 청산리와 봉오동전투의 승리를 이끈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님과 가족들은 당대의 흐름에 맞춰 자신의 부를 지켜온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선생님과 그 가족들의 선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조국을 잃어버린 아픔 속에서도, 조국을 찾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해방된 조선을 마주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다롄 항구에서 일제에 의해 체포되고, 여순감옥에서 고문 끝에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못내 속상하기만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번 답사단 참여를 통해서 아쉬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가졌습니다. 아쉬움은 선생님과 가족이 애썼던 그 곳에 선생님을 기념할만한 이정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만난 것도 여순감옥 내 기념관이었지요. 안도감은 제가 참여한 답사단과 하루 차이로 대학의 몇몇 선배들이 ‘신흥무관학교’를 방문하기 위해 나름의 여정을 진행했다는 것입니다. 경희대학교를 다니면서 학교를 통해 선생님과 신흥무관학교에 대해 배운 적은 없지만,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이에 대해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선생님과 신흥무관학교를 더 가까이 찾기 위해 신흥무관학교 터를 찾아 갔으나, 마땅한 이정표를 찾지 못해 넓은 옥수수 밭만 한나절 헤맸다는 이야기를 뒤에 들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언젠가 그 터에 ‘신흥무관학교’를 기념하는 이정표가 세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번 답사를 통해서 선생님을 비롯한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은 분들이 계시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서, 겉으로는 답사 전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지난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를 좀 더 자세히 배워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실천으로 연결하고자 합니다.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의 평안함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황지영


경희대학교 경제통상학부 졸업

현, 이티원 경제교육센터 근무

2014년 제10기 독립정신답사단 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