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학년이 바뀌고 처음 맞는 조회시간 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방학 동안에 학생들이 얼마나 국민교육헌장을 잘 외웠는지 알아보기 위해 무작위로 몇 명을 지목하여 교단으로 불러올리셨다. 두 번째 학생이 막 외우기 시작 할 무렵 갑자기 머릿속에서 윙하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하늘이 캄캄해졌다. 내가 지구의 자전을 따라가지 못 했는지 아니면 역회전을 하였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잠깐의 우주유영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였을 땐 나는 급우들에 의해 나무 밑으로 옮겨져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내게 물을 먹이고 계셨다. 조회가 끝나자 담임께서는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데리고 가서 얼음처럼 차가운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기도 좀 먹고 과일도 먹어야 할 텐데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쉬어.하며 조퇴를 하라고 하셨다. 3월 초라고는 하지만 봄이 일찍 찾아와 벌써 개나리가 노란 물감을 입안에 머금었고 아스팔트엔 아지랑이가 하늘거렸다. 어지럼증 여파로 가로수에 기대어 있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버스에 오른 나는 눈이 얼음판에 자빠진 소 눈만큼 휘둥그레졌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이 비 그치면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 짙어오것다 이수복 시인은 왜 풀빛이 서럽다고 읊었는지 모르겠으나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서럽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착 가라앉고 우울해 지는 건 사실 인 것 같다. 착잡하면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창밖 화초에 맺힌 빗방울이 바람에 흩어졌다 다시 맺히는 그 순간에도 기억의 편린들로 제작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지금이야 흔한 게 우산이지만 1960년대와 70년대엔 비닐우산도 귀했다. 그 시절엔 보슬비 정도는 맞으며 걸어가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우산을 든 사람은 비를 맞고 가는 사람에게 우산 씌워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 했었다. 그때 나는 귀밑솜털이 채 벗겨지지 않은 중학생이었다. 벚꽃낙화가 거리를 하얗게 색칠하던 봄비 내리는 날, 난생처음 사랑의 열병이란 걸 경험하게 된다. 하교 길에 버스에서 내린 나는 우산이 없어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돌아보니 내가 가끔 들르던 문방구집 딸이었고 그녀는 이미 여고생이었다. 심장은 마구 뛰었고 머릿속은 텅 빈 듯하였다. 한 가지 분명한건 그녀는 자기 집을 훨씬 지나쳐 우리 집까지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