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 전기 문신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이 쓴 《미암일기(眉巖日記)》 1575년 10월 29일 기록을 보면 다락방의 책을 중당(中堂, 집 가운데의 마루)으로 옮기는데 모두 3,500권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암일기》에 여러 차례 걸쳐 책을 옮기는 얘기가 있는 것을 보면 이 3,500권은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책 구하기가 쉬운 요즘에도 개인이 책 3,500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흔치 않아 3,500권만 해도 엄청난 양이지요. 조선시대 책의 인쇄본은 중앙의 교서관(校書館)과 지방의 감영, 군ㆍ현 등에서 찍는 소량일 뿐입니다. 또 그것마저 교서관에서 찍은 것은 일부 진상하고, 일부는 중앙부처가 간직하게 하며, 그 나머지가 종친이나 높은 벼슬아치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교서관이나 지방관에게 부탁하여 별도로 후쇄본을 찍기도 하지만, 인쇄본을 얻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또 어떤 이는 중국에 서장관으로 가는 이에게 부탁하여 사 오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게 인쇄본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책을 일일이 베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베끼는 것도 남에게 부탁해야 하므로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흥선대원군(1820∼1898)의 관복에 달았던 ‘기린무늬 자수 흉배’가 있습니다. 가로 21.5㎝, 세로 21㎝ 크기의 이 기린흉배는 구름무늬 비단 바탕에 약간 검은 빛이 도는 청색 단에 금실과 은실로 수를 놓았지요. 기린은 봉황, 거북이, 용과 함께 영험한 동물을 상징해왔습니다. 기린은 인(仁)을 존중하고 의(儀)를 지키는 명철한 동물로 어진 덕의 세상에 출현한다고 합니다. 흉배는 조선시대 임금과 문무백관의 집무 중 입는 옷에 붙이는 것으로 품계에 따라 무늬를 달리하는데 자수의 섬세함과 다양한 무늬는 옷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단종실록》 12권, 단종 2년 12월 10일 치 기록에 따르면 흉배의 무늬를 대군(大君)은 기린(麒麟), 문관 1품은 공작(孔雀), 무관 1, 2품은 호표(虎豹, 범과 표범), 대사헌(大司憲)은 해태(선악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하응은 영조의 증손인 남연군의 아들로, 순조 20년(1820)에 태어났습니다. 헌종 9년(1843) 흥선군으로 봉해지고 철종 14년(1863) 임금이 죽자 그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올라 고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길목 - 하영순 일 년 24절기 중 동지 지나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길목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비라도 쏟아 졌으면 겨울 가음이라도 해갈하련만 날씨만 우중충하다 수은주는 내려가고 서민의 고뇌는 높아만 간다. 냉기류는 정가나 재계나 풀릴 기미가 없다 뭐가 그리도 원한이 많아 칼을 가는지 얼어붙은 이 땅에 봄은 언제 오려는지 꽁꽁 언 얼음장 밑에도 물은 흘러만 간다. 소한에서 대한으로 가는 길목 어제는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으로 한겨울 추위 가운데 혹독하기로 소문난 날이었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라는 말처럼 소한 추위는 예부터 대단했다. 예전 사람들은 매서운 추위가 오면 땔감이나 옷이 변변치 않았기에 견디기 참 어려웠고 동사(凍死) 곧 얼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쯤이면 추위가 절정에 달했는데 아침에 세수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당기면 손에 문고리가 짝 달라붙어 손이 찢어지는 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뿐만 아니다. 저녁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으로 한겨울 추위 가운데 혹독하기로 소문난 날입니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소한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라는 말처럼 소한 추위는 예부터 대단했습니다. 예전 사람들은 매서운 추위가 오면 땔감이나 겨울옷이 변변치 않았기에 견디기 참 어려웠지요. 그래서 동사(凍死) 곧 얼어 죽는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춥고 눈이 많이 와야만 그해 풍년이 들었다는 걸 생각하면 소한 추위라는 것은 꼭 있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또 추위를 겪어야만 따뜻한 봄날의 고마움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고 추사는 자신의 그림 세한도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다행히 이번 소한은 추위가 누그러졌습니다. 겨울철 겨울나기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우리는 따뜻한 차와 신맛이 나는 과일을 권합니다. 한방에서는 ‘총백’이라고 부르는 ‘파뿌리’를 물에 넣고 끓여 마시면 땀을 내주고 기침, 가래를 삭여주며, 항균 작용도 있어 감기 예방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전주박물관은 오는 2월 26일까지 특별전 “깨달은 수행자, 나한: 전라도와 강원도 나한의 만남”을 열고 있습니다. 나한(羅漢)은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을 다해 수행하여 아무 괴로움도 없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던 불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열반(涅槃)에 드는 것을 미루고 중생 곁에 머물며, 불법(佛法)을 지키고 모든 사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보살폈습니다. 원래 강원도 영월 창령사(蒼嶺寺) 터에서 2001년 오백나한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오백나한은 국립춘천박물관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 부산박물관에 이어 이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특별전을 열고 있는데 이곳 전주박물관은 영월 창령사(蒼嶺寺) 터 오백나한상과 함께 담양 서봉사(瑞峯寺) 터 나한상, 나주 불회사(佛會寺) 나한상, 남원 실상사 서진암 나한상도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강삼혜 학예연구관은 “이상하게도 오백나한상 앞에만 가면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발길이 오래 머무르곤 했다.”라고 말합니다. 나한은 바로 우리와 닮은 친근한 모습으로 바로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며, 언제나 복을 내리고 신묘한 도움을 주는 존재이기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밝아온 2023년 계묘년은 검정 토끼의 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토끼라면 흰토끼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디 이 땅에 살던 토끼는 멧토끼로 회색, 갈색 털을 가지고 있으며, 흰색 털의 토끼는 색소결핍증[Albino] 토끼이거나 20세기 전반에 수입된 외래종입니다. 따라서 가끔 보이는 흰색 토끼가 옛사람들의 눈에는 퍽 신기했을 것이고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 “토끼는 1천 년을 사는데 5백 년이 되면 털이 희게 변한다고 한다”라고 기록했습니다. 흰토끼에 장수의 의미를 불어 넣은 것이지요. 토끼의 지능은 50으로 45인 호랑이, 20인 거북이에 견줘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겨레는 토끼를 꾀 많은 동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판소리 <수궁가>와 한글소설 《별주부전(鼈主簿傳)》에서는 부패한 권력을 풍자하는 슬기로운 백성의 대변자로 나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옛날이야기에서 작고 힘없는 토끼는 산중의 왕인 호랑이를 골려주는 영리한 동물로 나오기도 하지요. 우리 겨레는 그렇게 토끼가 장수의 상징이면서 슬기로운 동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정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얼굴을 감추고 싶다 - 허홍구 철없고 겁 없던 시절 모자라는지도 모르고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마구 쏟아 놓은 말과 글 여물지 못한 저 쭉정이와 가볍게 휩쓸리는 껍데기 이제 지워 버릴 수도 없고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건방 떨던 못난 짓거리 아직도 이리저리 흩어져 죽지도 않고 돌아다닌다. 어이쿠, 부끄러워라 부끄러운 흔적 어찌 지울까요 하느님, 부처님, 독자님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사슴>의 시인 노천명은 인터넷에 ‘193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어 있다. 노천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청년들의 적극적인 전쟁 참여를 권유하는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출정하는 동생에게’, ‘병정’ 등을 발표하고,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산하 부인대(婦人隊) 간사를 맡을 정도로 친일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천명에게는 웃지 못할 일화가 따라다닌다. 그것은 광복 직전인 1945년 2월 25일 펴낸 시집 《창변(窓邊)》에 관한 이야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 중기의 문신 유몽인(柳夢寅 : 1559~1623)이 임진왜란 뒤 민간에 설화와 야담을 모아 펴낸 책으로 《어우야담(於于野譚)》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논개(논개(論介, ?~1593))’는 진주의 관기로 제2차 진주성 전투 때 일본 장수를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것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국립진주박물관에는 <논개 초상>으로 김은호가 그린 것과 윤여환이 그린 것 두 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김은호의 <논개 초상>은 1955년에 그린 것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지요. 하지만, 김은호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일본 미인도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여럿 그렸습니다. 특히 1939년에 그린 <춘향상>은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논개 초상>은 <춘향상>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김은호가 친일 여성단체인 애국금차회가 일본군사령부에 금비녀와 패물, 현금 등을 헌납하는 사건을 기념하는 〈금차봉납도〉를 그리는 등 친일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인물입니다. 또 이 초상의 문제점이 하나 더 있는데 16세기의 인물인 논개의 저고리를 기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2월 22일 뉴스를 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주재한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바로 레귤레이션이다. 마켓에 대해서 정부는 어떻게 레귤레이션 할 거냐, 마켓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그 마켓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영어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영어 사대주의는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윤 대통령의 영어 사랑에 관한 기사는 전에도 자주 눈에 띄었지요. 지난 6월 11 오마이뉴스에는 “내셔널 파크'라고 하면 멋있다고? 윤석열의 영어 사대주의”, 6월 28일 치 경남도민일보에는 “'열등감 보상'에서 발현된 윤석열의 영어사랑”, 또 7월 22일 오마이뉴스엔 “윤석열 대통령의 지극한 '영어 사랑'... 이쯤되면 '사대주의’”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였습니다. 심지어는 디지털타임즈 12월 25일 치엔 “‘사람이 먼저다’ 정철, 윤 저격…‘산타할아버지, 여기 영어 하는 사람 제발 가져가시라’”라는 기사까지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말에 쓰는 단어 대부분을 영어나 외국어로 대체하고 토씨만 우리말을 쓰는 문체를 ‘보그체’라고 하고, 그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은진미륵불 - 한하운 비원에 우는 사람들이 진정소발(眞情所發)을 천년 세월에 걸쳐 열도(熱禱)하였건만 미륵불은 도시 무뚝뚝 청안(靑眼)으로 세월도 세상도 운명도 그렇게만 아득히 눈짓하여 생각하여도 생각하여도 아 그 마음 푸른 하늘과 같은 마음 돌과 같은 마음 불구한 기립(起立) 스핑크스로 세월도 세상도 운명도 집착을 영영 끊고 영원히 불토(佛土)를 그렇게만 지키는 것인가. 오늘은 성탄절 전날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세상에 오시는 크리스마스이브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지만 헐벗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고 그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원할 구세주 사상도 있다. 서양에 구세주 신앙이 있다면 우리에겐 미륵신앙이 있었다. 미륵신앙은 미륵보살이 사는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과 말세인 세상을 구하러 미륵이 오시기를 바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기독교 신앙의 천국에 가는 것과 구세주를 맞이하는 것에 견줄 수 있다. 특히 미륵사상이 있었던 우리나라 바닷가에는 미륵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던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고, 그 표식인 매향비(埋香碑)가 곳곳에 서 있다. 그 매향비들은 1309년(충선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