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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과 다암시첩

[라석의 차와 시서화] 1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우리문화신문은 이번 주부터 차(茶)문화와 관련된 연재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해당 연재의 필자는 '한국불한선차회' 라석 손병철 박사께서 맡아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손병철 박사는 오랫동안 차와 함께 한 시인으로 글뿐이  아니라 사진 또는 삽화도 함께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편집자 말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표적 사상가이자 행정가, 학자다. 그는 백성을 위한 정치와 제도개혁을 꿈꾸었고, 유배라는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학문과 사색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저서 《목민심서》 ,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은 오늘날까지도 공공 윤리와 행정 철학의 고전으로 읽힌다. 특히 강진 유배 시절에 머문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 그는 학문적 성취뿐 아니라 차(茶)와 자연을 벗 삼아 마음을 다스리고 삶을 성찰하는 정신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은 다산이 유배 기간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들과 교류하던 공간이다. 초당 뒤편으로는 숲이 둘러 있고, 약천(藥泉)이라 불리는 샘물이 흐르며, 차를 달이던 다조(茶竈, 착부뚜막)의 흔적도 전해진다. 이곳에서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고단한 유배 생활 속에서 마음을 씻고 사유를 깊게 하는 매개체였다.

 

 

《다암시첩(茶菴詩帖)》은 다은 다산이 차를 마시며 느낀 정취, 차를 둘러싼 공간과 자연, 고요한 일상의 풍경을 시로 엮은 작품들로 다산이 남긴 다시(茶詩)는 76수나 된다고 전한다. 차향이 가득한 차암(茶菴),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 매화 앞에 앉아 차를 달이는 고요한 풍경은 다산의 내면 풍경이자, 유배지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자유였다. 다산은 '차와 시서화'를 두루 잘했다. 그의 차시 한 수를 읽어보자.

 

茶香滿盒坐(다향만합좌) 차향이 차합 가득 퍼지고, 나는 그 곁에 앉아 있다.

流水穿石間(유수천석간) 흐르는 물소리가 바위 사이를 꿰뚫어 흐른다.

煎茗對疏梅(전명대소매) 차를 달이며 성긴 매화가지를 마주하고,

春色入心閑(춘색입심한) 어느새 봄빛이 고요한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이 네 구절은 차 한 잔을 매개로 한 ‘고요한 존재의 풍경’을 보여준다. 차향이 가득한 차합 앞에 앉아 있는 시인의 모습은 세속의 번잡함을 잠시 내려놓은 자아 성찰의 자리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는 시간의 흐름이자 자연의 리듬이며, 그 소리는 차를 달이는 손길과 어우러져 하나의 조용한 음악이 된다.

 

 

성긴 매화가지 앞에서 차를 끓이는 장면은 혹독한 계절을 견뎌낸 매화처럼, 유배라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으려는 다산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은유로 읽힌다. 마지막 구절에서 ‘봄빛이 마음속 한가함으로 스며든다’라는 표현은, 외부의 자연이 곧바로 내면의 평정으로 이어지는 다산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차는 그 매개이며, 자연과 마음을 잇는 조용한 다리다.

 

오늘의 다산초당을 떠올리면, 겨울 숲에 고요히 내려앉은 찬 기운 속에서 작은 초당이 더욱 단정하게 서 있는 모습이 겹친다. 얼어붙은 샘물 위로 희미한 김이 오르고, 차를 달이던 자리에 남은 따뜻한 기억만이 초당을 감싼다. 매화는 아직 봉오리로 남아 있고, 봄은 멀지만, 다산이 남긴 사유의 온기는 여전히 이곳에 머문다. 차 한 잔의 향처럼, 다산의 학문과 시정신은 겨울의 다산초당에 잔잔히 퍼져, 오늘의 우리에게도 고요한 사유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 2026.2.5. 불한산방에서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