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영혼의 부딪힘》, 김민성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큐레이터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헬레나와이즈앤컴퍼니라는 예술과 의료를 연결하여 마케팅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의 대표로 있는 김민성 대표가 《그림, 영혼의 부딪힘》이란 책을 냈습니다. 그림, 영혼의 부딪힘? 그림을 본다는 것은 열망하는 화가의 영혼의 부딪힘을 목격하는 매우 특별한 일이어서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저하고는 성공회대 인문공부 11기 동기입니다. 김대표가 이번에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서양화가들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할 때에, 그동안 이런 류의 책은 꽤나 많이 나왔고, 저도 이런 책은 틈틈이 읽어보았기 때문에 솔직히 책을 펼치면서는 그 동안의 미술사 관련 서적에 또 하나의 책을 얹는 정도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선 김 대표가 화가에 대해 얘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기존의 책과는 달랐습니다. 김 대표는 한 화가의 인생 스펙트럼에서 한 가지 점을 주제로 잡으면 우선 그에 관한 자신의 경험이나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부터 풀어나갑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그 비밀의 정원 속으로 들어가보자든가, 그 시간으로 떠나보도록 하자면서 본격적으로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아침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언뜻 눈을 뜨니 내 옆 2층 침대에 서양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순간 상황파악을 못하고 당황스러워하다가 어제 우리 일행이 2층에 전부 같이 투숙한 것이 생각난다. 아하! 그렇지! 프레디(Fredi Luedi)와 수잔(Susanne Rasmussen) 부부가 저기서 잤었지. 나도 서둘러 옷을 입고 아침을 먹기 전 얼른 근처를 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숲속의 오솔길을 헤치고 섬 위의 광장으로 올라가니 높다란 관음상이 숲을 지나 호수 너머 먼데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다. ▲ 1.남조풍정도의 관음상 ▲ 2.배를 타고 남조풍정도에서 건너옴 관음은 이곳 차안(此岸)에 서서 피안(彼岸)을 바라봄인가? 저 관음상은 242개의 대리석을 붙여 만들었다는데, 대리석을 붙여 만들었기에 더욱 하얗게 빛이 난다. 그런데 아름다운 미소에 허리는 들어가고 젖꼭지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꼭 여자 같다. 관음보살이 여자일 것 같지는 않은데... 관음보살은 자비의 보살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모성애에 견주어 여신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네. 그래서 저 관음상을 여신상으로 표현한 것이구나.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박물관을 나온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타고 오늘 머무를 대리에 있는 얼하이 호수의 섬 남조풍정도로 향한다. 차는 다시금 고속도로를 올라 타 한참을 달려 대리로 들어선다. 대리시는 얼하이 호수의 서쪽 가에 자리 잡은 도시로 우리가 익히 아는 대리석이 바로 이곳 대리에서 나오는 것이었기에 돌 이름도 대리석이 되었지. ▲ 대리시 북쪽에 있는 얼하이호(耳湖)의 모습 대리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얼하이(洱海)는 중국에서 6번째로 큰 넓이 249평방킬로미터의 호수로 호수가 바다처럼 넓고 귀처럼 길쭉하다 하여 洱海라는 이름이 붙었다한다. 해발 1,973m의 고지에 어떻게 이런 큰 호수가 생겼을까?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는데 좌우로는 호수의 끝을 알 수가 없어 洱海라는 이름이 실감난다. 남조풍정도는 호수 건너편에 바짝 붙어 있어 배는 호수를 횡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호수는 바다라고 부르는 만큼 파도도 있고 바람도 세다. 건너가는 동안 우리가 호수를 무슨 바다라고 하느냐 했더니, 洱海는 자기를 얕잡아봤다고 당장 박 선생님의 모자를 호수 위로 날려버린다. 그 모자에는 선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현인 선생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를 속으로 되뇌면서 이 글을 씁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습니다. 영화는 초반부의 과거로의 회상 장면에서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 철수 현장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굳세어라 금순아가 떠오른 것이지요. 1.4 후퇴 때 미 함정에서 내려준 그물망 같은 줄을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는 소년 덕수, 그의 등에는 어린 여동생 막순이가 꼭 붙어 있습니다. 덕수는 막순이에게 여기는 운동장이 아니다. 꼭 붙잡으래이!라고 신신당부 합니다. 그러나 거의 함정 위에까지 다다랐을 무렵 막순이는 그만 다른 피난민에 떠밀려 떨어지고 맙니다. 동생을 애타게 부르는 소년 덕수의 피 토하는 아우성. 여기서 굳세어라 금순아 1절 후반부 가사가 다시 떠오릅니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먼저 배에 올랐던 덕수 아버지는 딸을 찾으러 배를 내려가면서 덕수에게 내가 없으면 장남인 네가 가장이다. 어머니와 두 동생을 잘 보살피거래이라는 말을 남기는데, 그게 그
[한국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잠을 3시간 자는둥마는둥 하였는데 모닝콜의 전화벨은 사정없이 울린다. 아침을 먹고 운남역을 향하여 출발하여 가는데, 차가 잠시 서고 검사원이 올라온다. 혹시 정원을 초과하여 승객을 태운 것은 아닌지, 또는 차에 법정비품은 비치하고 있는지 등을 검사하는 것이란다. 이들을 보니 예전에 검문하러 차에 올라오던 우리나라의 경찰관과 헌병이 연상된다. 독재정권 시절 이들이 차에 올라타 나를 쳐다보면 괜히 움츠려들곤 했지. ▲ 곤명에서 대리까지 타고 간 버스 앞면 사진, 버스 유리창에 '차마고도'를 한자로 쓰여있다. ▲ 검문받기 위해 멈춘 사진 ▲ 가는 도중에 차가 검사를 받기 위해 들른 곳,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휴게소 같은 곳에 차량 검사소가 있다. 차가 다시 도로를 달린다. 그런데 운전사가 우리 일행이 운행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만 돌아다녀도 위험하다고 당장 앉으란다. 꽤나 안전에 신경 쓰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러는 당신은? 운전사는 맞은편에서 차가 옴에도 마구 추월하여 우리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덕분에 맨 앞에 앉은 나는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가 나중에 밥을 먹을 때에는 저절로 손이 떨릴 정도. 보다 못한 외국 작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이번 양승국 변호사의 연재는 지난 2011년 8월 박병욱 작가가 주관하는 국제적인 예술 단체 나인드레곤헤즈를 따라서 운남성의 차마고도, 샹그릴라, 라싸의 포탈라궁, 조캉 사원 , 팅그리 등을 돌아본 여행기입니다. 과연 그런 유서 깊은 문화유적들을 돌아보며 양 변호사는 어떤 느낌을 갖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 편집자 말 ) 1. 첫날(한국 중국 곤명) 2011. 8. 2.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 차는 영종대교 위로 바다를 건너간다. 오늘부터 장장 16박17일의 예술여행을 떠난다. 나인드레곤헤즈(nine dragon heads)의 예술가들을 따라서... 나인드레곤헤즈는 박병욱 작가가 주관하는 국제적인 행위예술가, 설치미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등의 모임이다. 나는 이병욱과 어울림의 이병욱 교수의 권유에 나인드레곤헤즈가 16번째 행사로 떠나는 여정을 참여자로 따라가는 것이다. 바다를 건너는 버스의 창밖을 보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비가 조금 일찍 왔으면 버스 타러 가는 동안 이 여행가방 끌며 곤욕을 치룰 뻔 했군. 다행이다 싶었는데, 결국 오늘 이 비 때문에 곤욕을 치루긴 치렀다. 약속된 장소로 가니 반가운 얼굴들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전에 제주 재판 갔을 때 가보았던 4.3 평화공원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때 평화공원 사무실에서 4.3과 평화라는 잡지를 받았었는데 글 중에 저승사자 탁성록이란 글이 눈길을 끄는군요. 탁성록은 당시 제9연대 정보참모로 중위였는데,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증언은 비위에 거슬리면 빨갱이라고 몰아 죽였다거나 여러 여성을 겁탈했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탁성록은 아편중독자였군요. 아편에 취하니 눈에 뵈는 게 없었나봅니다. 탁성록은 제주에서만 만행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고향 진주로 돌아가 특무대장을 지내며 고향 인근의 주민들을 보도연맹원으로 몰아 집단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는군요. ▲ 제주의 저승사자 탁성록 같이 근무했던 김정무 대위도 훗날 이렇게 증언합니다. 탁성록은 마흔이 다 된 사람인데 정보참모의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도 아니고 군악대에서 나팔 불던 놈인데 어떻게 특채됐는지 나보다도 먼저 대위를 달았어요. 이런 저런 구실을 달아 여자들 성폭행을 많이 했어요. 이 정도 인간이라면 우리가 많이 볼 수 있는 비열한 인간상이니까 제가 이 정도만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전에 책을 읽다가 1887년 조선 주재 프랑스 초대 공사로 부임한 빅토르 꼴랭 드 플랑시와 결혼하였던 궁중무희 '리심'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아리따운 리심을 알게된 플랑시는 고종에게 리심을 요구하여 리심을 선물 받은거죠. 당시 궁중무희는 노비 신분이고, 더구나 왕의 명령이니 플랑시는 어렵지않게 리심을 손에 넣은 것입니다. ▲ 1887년 조선 주재 프랑스 초대 공사로 부임한 빅토르 꼴랭 드 플랑시 그런데, 날이 갈수록 리심의 아름다움과 지적인 총명함에 빠져든 플랑시는 3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무렵 리심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리심을 데리고 프랑스로 귀국하여 결혼을 하지요. 아마 리심이 최초로 프랑스 땅을 밟은 조선여인이 아니었을까요? 그 후 리심은 플랑시가 모로코 공사로 부임하자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 땅도 밟습니다. 이 역시 아프리카에 상륙한 최초의 조선여인? 조선여인 리심에 비친 서양세계는 어떠했을까요? 또 낯선 백인들 땅에 유일한 조선여인 리심의 외로움은 어떠했을까요? 리심의 행복은 1896년 플랑시가 다시 조선 공사로 부임하면서 막을 내립니다. 고종이 리심을 미끼로 프랑스의 힘을 빌리고자 플랑시를 회유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요즈음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요? 12. 11.부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더니 지금까지 그 기세를 몰아오며 100만 관객을 돌파하였습니다. 이 기세대로라면 독립영화로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워낭소리의 기록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15일(월) 저도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하니까, 흐~음~~ 영화가 뜬다고 하니까, 평소 영화 잘 안 보는 양변까지 영화를 보는구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물론 그런 점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 영화를 감독한 진모영 감독과의 개인적 인연이 저를 더 영화관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나눔문화라는 시민단체 회원으로 있는데, 나눔문화 회원들 중 같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여행를 같이 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여행을 통해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오랫동안 친교를 나누며 지내오고 있지요. 그렇기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극장에 걸리면서, 당연히 같이 모여 영화를 보았는데, 저는 그때 다른 일정이 있어서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5일 송년모임에서 진감독을 만날 텐데,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않
[한국문화신문 = 양승국 변호사] 지난 토요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 크누아홀에서 카포크누아(CAPOKnua) 제2회 정기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카포크누아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최고경영자 문화예술과정을 마친 동창들 중 합창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모여 만든 합창단입니다. 저도 테너로 합창단에 참가하고 있지요. 사실 연주회 얼마 전까지도 제대로 음악적 수준에 안 올라왔다고 백경화 지휘자 - 국립합창단 부지휘자 - 로부터 질책을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대부분 관객들은 작년보다 좋았다고 하더군요. 하긴 그런 것은 질책하면서 우리를 이끌어준 지휘자 선생님의 덕분이지만요. 유경미 에스비에스 아나운서의 사회로 막을 올린 연주회에서 우리는 비발디의 글로리아로부터 시작하여 총 16곡을 1, 2부 순서로 나누어 불렀습니다. 앵콜로 2곡을 더 노래했으니 총 18곡을 이 날 부른 것이네요. 18곡이나 되는 악보 파일을 다 들고 노래하려니 팔이 아파서, 2부 순서 들어갈 때는 1부에 부른 노래 악보는 다 빼고 들어갔지요. 노래는 종교합창곡, 한국 가곡, 민요, 외국 애창곡, 춤곡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아마추어들이 모여 이 많은 다양한 곡을 무대에 올려야 했으니,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