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지 팥죽 - 전병윤 동지는 눈보라와 함께 몰아쳐 온다 눈이 쌓여 오도 가도 못한 사람들이 굶어 죽어서 못된 짓 하는 역귀(鬼)가 되었다. 그는 피를 보면 바들바들 떤다. 그래서 피 대신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리면서 악귀를 쫓는다. 집과 나라 안에 재앙이 없도록 해 달라시던 할머니는 "사색당파싸움, 임진왜란, 동학란도 역귀의 작란이다"고 하셨다. 그래 삼팔선의 철조망, 이스라엘이나 이라크의 전쟁도 역귀의 작란이 틀림 없겠다 이제 그만, 역귀 없는 세상을 위해서 한솔 푸지직푸지직 끓어오르는 평화의 팥죽을 쑤어야겠다. 오늘은 24절기의 스물둘째 절기 ‘동지(冬至)’로 명절로 지내기도 했던 날이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곧 ‘작은설’이라 하였는데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른 다음 차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옛사람들은 이날을 해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잔치를 벌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그래서 동지를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했다.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데 원래 팥죽은 붉은색으로 귀신을 쫓는다는 뜻이 들어있다. 동짓날 팥죽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도 둑 - 택당(澤堂) 이식(李植) 姦宄無常産(간귀무상산) 간사한 도적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데다가 飢荒又一時(기황우일시) 굶주림과 가뭄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어서 近村聞警急(근촌문경급) 이웃 마을의 위급한 소식 들어보니 相識有創夷(상식유창이) 알고 지내는 이들도 약탈당했다네 自幸囊中淨(자행낭중정) 다행이구나! 주머니 속이 깨끗하니 應無棟上窺(응무동상규) 당연히 대들보 위에서 엿보는 사람 없으리라 穿墉何足磔(천용하족책) 좀도둑들이야 어찌 나를 죽이리 城社有狐狸(성사유호리) 도성과 종묘에 여우와 살쾡이 있으니 이 시는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1628년 충주목사에서 파직되어 택풍당(澤風堂)으로 물러난 여름에 지은 것으로,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 노래한 한시다. 이식(李植)은 이정구ㆍ신흠ㆍ장유와 더불어 한문4대가(漢文四大家)로 꼽히는 뛰어난 학자며, 문장가로 문풍을 주도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이식은 1623년 인조반정 뒤 이조좌랑이 되었고, 1632년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 지냈다. 특히 임금의 종실을 사사로이 기리고 관직을 이유 없이 높이는 일이 법도에 어긋남을 논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 간성현감으로 좌천되기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가운데 줄임)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러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10월 20일 노무현시민센터 지하 2층 공연장에서는 민족작가연합, 한국민족춤협회가 주관하고 평화통일시민연대 등 10여 개 단체가 함께 주최하는 제3회 통일예술제가 열렸다. 또 이날은 고 김남주 시인의 30주기를 기리고, 시 낭송과 노래, 춤, 통일 발언, 정세 해설을 통하여 통일 의지를 공유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특히 고 김남주 시인의 일대기를 장숙자 명창이 판소리로 녹여냈다. 고 김남주(金南柱, 1946년~1994년) 시인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시민ㆍ사회 운동가다. 유신을 반대하는 언론인 《함성》을 펴냈고 인혁당 사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첫눈 편지 - 장인성 첫눈이 내렸습니다 단풍이 다 지기도 전에 홍시가 다 덜어지기도 전에 첫눈이 왈칵 내렸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밉기도 합니다 천지를 하얗게 덮은 날도 임은 소식이 없습니다 홍시가 익으면 따달라고 했는데 온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내심 기다려는 보지만... 한해가 다 저물어 갑니다 흰 눈 덮인 홍시는 더욱더 빨갛습니다 임이 안이 오시면 까치밥이 됩니다 임도 첫눈이 온 줄 아실 덴데 그 임이 더욱더 미워집니다. 며칠 전 첫눈이 내렸다. 그것도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그 탓에 곳곳에선 교통사고가 나고 출근하는 이들은 지각하기 일쑤였다. 어렸을 때는 눈이 오는 게 그렇게 반갑더니 이제 교통 걱정을 먼저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늙기는 늙었나 보다. 하지만, 첫눈이 오는 소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24절기의 여덟째인 소만(小滿) 무렵 어떤 이들은 손톱에 봉숭아를 물들이고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빠지지 않으면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첫눈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첫눈은 단풍이 다 지기도 전에, 홍시가 다 덜어지기도 전에 왈칵 내려버렸다. 장인성 시인은 그의 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용한 날들 2 - 한강 비가 들이치기 전에 베란다 창을 닫으러 갔다 (건드리지 말아요) 움직이려고 몸을 껍데기에서 꺼내며 달팽이가 말했다 반투명하고 끈끈한 얼룩을 남기며 조금 나아갔다 조금 나아가려고 물컹한 몸을 껍데기에서 조금 나아가려고 꺼내 예리한 알루미늄 세시 사이를 찌르지 말아요 짓이기지 말아요 1초 안에 으스러뜨리지 말아요 (하지만 상관없어, 내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그렇게 조금 더 나아갔다 24절기 가운데 동지, 이날 우리 겨레의 가장 흔한 풍속으로는 팥죽을 쑤어 먹는 일이다. 팥죽에는 찹쌀로 새알 모양의 단자(團子) 곧 ‘새알심’을 만들어 죽에 넣어서 끓여 만드는데, 식구의 나이 수대로 넣어 끓이는 풍습도 있다. 원래 팥죽은 붉은색으로 귀신을 쫓는다는 뜻이 들어있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 형초(荊楚, 지금의 후베이ㆍ후난 지방)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나온다.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염병귀신을 쫓으려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겨레는 단순히 귀신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올라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이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지정해 경기도 내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 처리된 소설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이 그동안 우울했던 우리의 마음을 가을 하늘처럼 푸르게 했고, 언론에는 관련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 한강 작가는 지난해 《채식주의자》로 "아름다움과 공포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노벨 문학상 다음가는 세계 으뜸 문학상 ‘부커상’을 받았다. 그뿐만이 2014년에 내놓은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에 쓰러진 열여섯 살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펴낼 때 "소설을 쓰는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 세 줄 쓰고 한 시간을 울기도 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별 - 신경림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검정 대리석에 새긴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이 있다. 이 각석의 크기는 높이 200.9㎝, 두께 11.8㎝, 너비 122.8㎝다. 조선 왕조를 수립한 태조 이성계는 왕조의 정통성과 권위의 표상으로 새로운 천문도 갖기를 염원했는데 이에 1395년(태조 4) 권근 등 12명의 천문학자는 천문도를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에 새겼다. 이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동아시아의 전통시대에 제작된 석각천문도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이 천문도는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1241년)’ 각석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인데, 새겨진 별의 숫자에 있어서는 순우천문도의 1,434개를 넘어 1,467개의 별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순우천문도’와는 달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 절로 붉어질 리가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 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니 둥글게 만드는 것 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이제 추분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이 되었다. 그 사이 벼는 익어 고개를 숙이고 농촌 마을에는 여기저기서 붉은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아름답다. 그뿐이 아니다. 대추는 역시 붉게 물들어 단맛이 입안에 쏴 하니 퍼지는 때다. 충청북도 보은군에서는 오는 10월 11부터 10월 20일까지 보은읍 뱃들공원과 속리산 일원에서 <보은대추 축제>를 연다고 밝혔다. 보은은 예로부터 왕실에 진상하는 대추의 명산지로 《세종실록 지리지》 <충청도 청주목 보은현> 편에도 “토공(土貢)은 꿀ㆍ밀[黃蠟]ㆍ느타리ㆍ석이ㆍ종이ㆍ칠ㆍ지초ㆍ대추ㆍ족제비털ㆍ호도ㆍ잣[松子]ㆍ노루가죽ㆍ삵괭이가죽이요, 약재는 연꽃술ㆍ인삼ㆍ오가피ㆍ백복령ㆍ승검초뿌리[當歸]ㆍ수뤼나물[葳靈仙]ㆍ북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늙은 고양이 이야기(이노행-貍奴行) - 정약용 南山村翁養貍奴(남산촌옹양리노) 남산골 늙은이 고양이를 기르는데 歲久妖兇學老狐(세구요흉학노호) 해가 묵자 요사하고 흉악한 늙은 여우되었네 夜夜草堂盜宿肉(야야초당도숙육) 밤마다 초당에 두었던 고기 훔쳐 먹고 翻瓨覆瓿連觴壺(번강복부연상호) 항아리 단지 뒤집고 잔과 술병까지 뒤진다네 지난 2021년 대학교수들은 그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를 뽑았다. ‘도둑을 잡은 자(고양이)가 도둑(쥐)과 한통속이 됐다.’라는 뜻이다. 그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와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ㆍ로비 의혹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그때 고양이의 발톱은 무뎠다. 특히 대장동 사건은 화천대유가 정계와 법조계에 로비했다는 ‘50억 클럽’의 의혹이 터졌어도 실체 규명 수사는 3년이 지난 지금껏 지지부진하다. 다산 정약용은 ‘감사론(監司論)’에서, “토호와 간사한 아전들이 도장을 새겨 거짓 문서로 법을 농간하는 자가 있어도 ‘이것은 연못의 고기이니 살필 것이 못 된다.’ 하여 덮어두고, 효도하지 않고 그 아내를 박대하며 음탕한 짓으로 인륜을 어지럽히는 자가 있어도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일어나라 열사여 - 이철규 열사 조가 - 작사ㆍ작곡ㆍ노래 정 태 춘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 싸늘한 주검 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이 검붉은 피로, 썩은 살로 외치는구나 더 이상 욕되이 마라 너희 멸사봉공 외치는 자들 압제의 칼바람이 거짓 역사되어 흘러도 갈대처럼 일어서며 외치는구나 (아래 줄임) 한국의 피트시거(미국의 전설적인 포크 자작가수자 사회운동가)로 불리는 정태춘 씨는 1978년 1집 ‘시인의 마을'을 발표하며 호평을 받고 여러 방송사에서 상을 받은 가수다. 그는 음반 사전심의제도 때문에 가사를 부분 수정해서 발매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1990년, ‘아, 대한민국…’ 음반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부하고 대학가와 공연장에서 배포했다. 이 음반은 사전검열 제도에 공식적으로 저항한 첫 음반으로 한국 음악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음반도 전통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강렬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태춘 씨는 1991년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의 의장이 되어 사전검열제도와 일선에서 맞섰다. 1993년에도 ‘92년 장마, 종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