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국악과의 정해임 교수가 이끌고 있는 고령의 ≪대가야 가야금연주단≫이 창단 10주년 기념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창단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축적된 연주단의 성장 모습을 보이고 평가와 함께 격려와 축하를 받는 기념 잔치를 열겠다는 것이다.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흘렀으니 연주단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들로서 음악사에 남을 굵은 선 하나 그리고자 하는 의욕이 어찌 없겠는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지역 고령은 옛날 가야국이었다. 가야국 하면 제일 먼저 가야금이 떠오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가실왕이 나타나며 가야금을 잘 탔다는 악성 우륵선생이 연상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우륵과 진흥왕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 있다.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가 가야금 한 틀을 가슴에 품고 신라에 들어가 매일같이 가야금을 타며 세월을 보낼 적에, 때마침 진흥왕이 이 음악을 듣고 계고, 법지, 만덕 등 3인에게 선생의 음악을 배우도록 하였다. 이들의 음악이 어느 정도 익어갈 무렵 진흥왕은 좌우에 늘어선 신하들과 함께 감상하고는 신라의 대악(大樂)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펼치자 신하들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대의 이유는 “망한 나라의
가곡의 노래 말은 초장, 중장, 종장으로 짜여진 3장 형식의 시조(時調)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래 말을 가곡에 얹어 부를 때에는 5장으로 분장한다. 남창의 26곡, 여창의 15곡 전체가 동일하게 5장으로 나눈다. 가령, 우조 ‘초수대엽’에 얹어 부르는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되는 시조시를 가곡으로 나눈다면 제1장은 시조의 초장 안귀의 동창이 밝았느냐이고 제2장은 초장의 바깥귀인 노고지리 우지진다이다. 가곡의 제3장은 시조의 중장인 소치는 아희 놈은 상긔 아니 일었느냐이다. 시조의 중장 전체가 가곡에서는 3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4장은 종장의 첫 3음절인 재 넘어이고 나머지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는 제5장으로 나뉜다. 다시 정리하면 시조의 초장은 가곡에서 1장과 2장으로 분장이 되고, 시조의 중장 전체는 가곡의 3장이 되며 종장의 첫 3음절만이 가곡의 제4장, 나머지는 제5장으로 나뉜다는 말이다. 이러한 형식이 바로 시조창과 가곡창의 큰 차이점이다. 간혹 시조의 중장이나 종장이 정형에서 벗 어나 길게 확대된 엇시조라고 해도 이를 별도의 장으로 늘리지 않고 모두 5장 내에서 처리하는 것이 가곡의 형식이다. 반주 악기군이 먼저 대여음(大餘
전통가곡에 관한 속풀이를 하다가 잠시 다른 장르로 옮겨 갔다. 이번 주부터는 다시 가곡의 멋에 관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전통가곡은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으로 대별되고 있다. 남창 가곡은 우조 음계(흔히 서양음악의 장조 음계로 비교 됨)로 된 11곡과 계면조(단조에 비교 됨)로 만들어진 13곡, 그리고 중간에 조가 바뀌는 2곡 등 모두 26곡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비하면 여창 가곡은 우조가 5곡, 계면조 8곡, 그리고 변조의 2곡 등 모두 15곡이 모두 불리고 있다. 남창의 곡수에 비해 여창의 곡수가 적은 셈이다. 남창이든, 여창이든 간에 이들 가곡은 부르는 순서가 거의 정해져 있다. 느린 빠르기의 긴 호흡으로 부르는 곡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빠르게 진행되는 순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간에 몇 곡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으나, 절대로 앞뒤 악곡을 뒤바꿔 부르지 않는다. 창자 임의대로 순서를 바꾸지 않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순서를 정해 놓고 순서대로 부르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전 시대 가곡의 명인들, 즉 이주환이 엮
김동석 씨는 미국의 명문대학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UCLA)에서 한국음악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이다. 대학에서는 Donald Kim 교수로 알려져 있으며 미 서부지역에서는 한국 전통음악과 춤의 대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얼마 전, 그가 한국인 최초로 Durfee Foundation의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는데, 이 재단은 미국의 소수민족들이 지니고 있는 예술성 높고 학술적 가치가 있는 음악을 보존하려고 2년에 한 번씩 소수민족 음악인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제공해서 연구사업을 후원해 주는 기관이다. 그동안의 수상자들로는 일본의 샤미센(三味線) 연주자, 남미의 인디오 뮤직 연주자, 스페인의 전통기타 연주자 들이었다. 그는 연구 사업으로 약 70분이 소요되는 대곡 성금연 류 가야금산조를 한 장의 음반으로 담아 낼 것을 계획하였고 그동안 연주해 오던 가락들을 다듬어 이번에 완성하였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내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공생하고 있다. 한인 동포의 수는 약 200만을 넘는데, 그 중 LA지역에만 약 50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전통음악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
지난주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정순임 명창은 해마다 여름, 경주 보문관광 단지 내에 있는 야외무대에《유관순 열사가》를 비롯한 《이차돈》, 《놀보전》과 같은 창극을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려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8월 초, 경상도 일대에 국지성 소나기가 예고되어 있어 가슴을 졸이는 가운데, 단원들은 수궁가를 바탕으로 마당극 개념을 도입한 《약 일래라, 토끼 간이 약 일래라》를 총연습하고 있었다. 시민들을 위한 무료 봉사였기에 하늘이 도왔는지 끝날 때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경주에서 창극이 공연될 수 있는 배경은 정순임의 열의와 경상북도의 지원, 그리고 그를 돕는 스태프와 제자들의 의욕이 충족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극을 오페라 혹은 가극이라 부른다. 창극은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이다. 경기소리나 서도 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극은 창극이라 부르지 않고 경서도 소리극이라 부른다. 창극의 기본은 판소리이다. 소리가 어느 정도 익어야 창극이 가능한 것이다. 소리가 익지 않으면 아무리 연기가 훌륭하고 사설을 재미있게 옮긴다 해도 가슴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정순임은 제자들에게 소리공부를 가장 중요하다고
지난 7월 초, 중국 연변에서는 한국전통음악학회와 중국 연변예술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13회 전통음악교류회가 열렸는데, 학술 토론과 공연 교류 행사에 국내 유명 교수들과 명인명창 40여 명이 참가하여 교류회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긴 바 있다. 이 행사에 참가했던 판소리 명창 정순임 씨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을 실연하였는데, 소리도 소리이려니와 멋들어진 발림(사설에 맞는 몸동작)으로 객석의 열띤 갈채를 받았다. 중국의 연변지역이란 곳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중조(中朝)변경지역이다. 폭 30~40m의 두만강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환상적인 푸른 물이 아니라 뿌옇다 못해 완전히 죽어 버린 강이 되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인 중국의 도문 시와 남쪽인 북한의 남양 땅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이다. 이 연변지역은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언어나 음식의 불편이 거의 없다. 거리의 간판은 모두 한글을 먼저 쓰고 밑에 한문을 달아 무엇을 하는 건물인지 무슨 물품을 파는 곳인지 알 수 있어 딴 나라 같지 않고 친숙하다. 연변은 전통문화를 비롯해 여러 방면으로 북한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그
18. 공자는 정(鄭)나라의 음악을 미워했다 지난주 속풀이 17에서는 정악(과거 아악이라고 부르던 음악)과 민속악의 용어를 설명하면서 양자의 관계는 상하의 개념이나 우열의 대비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음악적 환경이나 성격, 또는 표현방법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 한국 전통음악의 양대 산맥을 이루어 온 상대적 관계로 마치 자전거의 앞, 뒷바퀴와 같은 존재임을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아악이란 무슨 말인가? 아악이란 말은 세 가지 의미가 있는 용어이다. 첫째는 아정(아담하고 바른)하고 고상한 음악이라는 의미, 둘째는 중국 고대의 음악으로 고려조에 들어온 이후 국가의 각종의식에 쓰였던 음악, 셋째는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아악, 당악, 향악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아악이라 함은 세 번째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과거 임금이 거처하던 궁궐 안에서는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온 아악도, 당악도, 그리고 고려나 조선을 통해서 작사 작곡된 향악도 연주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국가 조정에서는 중국에서 들여 온 아악을 쓰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기존의 아악, 당악, 향악을 묶어 넓은 의미로 아악이
17. 정악과 민속악의 관계는 자전거의 앞 뒤 바퀴와 같다. 지난 금요일, 독자가 쓰는 얼레빗은 서도소리를 전공하는 학생의 글로 정악과 민속악에 관한 개인의 의견이 재미있게 소개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이를 자칫 잘못 이해하게 되면 정악은 바른 음악, 존귀한 음악이고 이에 반해 민속악은 바르지 못한 음악, 저속한 음악으로 이해하는 독자가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양자는 우열의 개념이 아니다. 정악은 음악을 표출하는 방법이 민속악에 비해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매우 단아하게 들린다. 그래서 예부터 아정하다는 의미로 아악(雅樂)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아악이라는 용어 대신 정악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는 아정(雅正)하다는 말에서 아악이나 정악을 동의어라 보기 때문이다. 민속악은 속된 음악이라는 뜻이 아니다. 원래 ‘속(俗)’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풍속, 바램, 이어감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의 풍속이며 백성이 이어가는 순수한 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얼레빗 독자들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국악용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중국 당 나라에서 당의 악기나 음악이
지난주에는 어렵사리 연변예술대학과 첫 교류 음악회를 갖게 된 과정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도 연변의 조선족 음악 이야기를 계속해 보도록 하겠다. 어렵게 성사된 연변대학에서의 교류 음악회를 끝낸 그날 밤,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되어 목이 터져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우리의 만남을 서로 자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만남은 다음날 ‘들놀이’ 행사로 이어졌다. 연변대학의 교수와 직원들은 우리 일행을 위해 먹을거리를 다양하게 준비해서 강가로 나가 하루를 즐긴 것이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포 음악인들이라 해서 그런지 너무도 따뜻하게 대해 주는 그들의 태도에서 순수한 인간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90년 7월, 연변 예술대학을 방문하던 그 해, 우리의 초청을 계기로 연변예술학원은 중대한 구조 조정을 단행하였는데, 바로 음악학부 내에 민족음악과, 줄여서는 민악과로 부르는 학과를 새롭게 신설한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의 국악과혹은 한국음악과와 같은 것이다. 한국은, 1959년도에 신설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제외한다면 70년대에 와서야 겨우 한양대, 이
필자는 얼마 전, 중국 연변예술대학에서 열린 한ㆍ중 학술 및 실연 교류회에 37명의 회원과 함께 참가하였다. 국악속풀이 이번 주에는 올해로 13회를 맞게 된 한ㆍ중 실연교류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한다. 한ㆍ중 학술 및 실연 교류회는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의 전통음악학회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는 연중행사이다. 말 그대로 한국의 전통음악과 중국 연변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조선족 음악에 대한 학술적인 강연과 토론을 통해서 학문적 교류를 하고 그리고 겸해서 양쪽에서 연행되고 있는 전통음악의 실연을 통하여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연구모임이다. 이 교류행사는 200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최초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1990년 7월에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한국과 중국의 수교가 체결되기 직전, 필자는 국내 저명 국악인 20여 명과 함께 처음으로 연변 예술학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은 죽(竹)의 장막이어서 조선족 음악에 대한 정보는 접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조선족들이 어떤 악기로 어떤 노래를 부르며 지내는지? 또한, 어떤 음악인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더욱이 민족음악을 지도하고 있는 대학이 있는지? 있다면 교육체계는 어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