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국의 5세기 초, 이른바 남북조 시대에 대륙 남쪽에는 송(宋)나라가 있었다. 당(唐) 이후 들어선 송(宋)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흔히 유송(劉宋)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에 단도제(檀道濟, ?~436년)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흔히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책략이다”라는 36계의 저자로도 알려진 이 장군은 군을 잘 통솔하며 국정도 잘 이끌어 북쪽에 있는 위(魏)나라도 어쩌지 못했는데, 혼자 너무 잘나간다고 시기한 송나라의 권신과 왕족들이 왕명이라고 속여 궁으로 부르자, 그 부인이 이상한 일이라며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단도제는 왕명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들어갔다가 살해되었다. 장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건을 내동댕이치며 “어찌 너희들이 만리장성을 스스로 허문단 말이냐(壞汝萬里長城)!”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북쪽의 위나라 사람들은 “이제 두려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고 하며 수시로 강을 건너 남쪽을 침범하였다. 1623년 3월 12일(음력) 김류, 김자점 등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옹립해 집권한 것이 인조반정인데, 서울에서 왕을 바꾸는 데 성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자동차는 이동의 수단이므로 일단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멈추는 것입니다. 멈추기를 못하면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산에 다니면서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하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먹을 수 있는 것에만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식물도 먹을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모르는 나물이라면 아예 채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산나물과 일생을 살아온 농부도 독초를 먹고 사망하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대부분 예쁘게 생긴 것이 독초인 경우가 많습니다. 꼭 뜯고 싶은데 약초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이 감별합니다. 식물을 뜯으면 절단면에 액이 나오는데 그것을 연한 피부에 바르고 잠시 있으면 독초면 두드러기가 생기거나 가렵거나 통증이 느껴집니다. 살갗에 반응이 없을 때는 혀끝에 조금 묻혀보되 절대 삼켜서는 안 됩니다. 아린 맛이나 화끈거리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이는 독초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몸에 가시가 많이 나 있는 식물은 독초가 아닙니다. 가시로 몸을 보호하고 있으므로 독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글씨를 볼 수 있다. 추사가 1856년 죽기 3일 전에 봉은사 주지의 부탁을 받고 쓴 ‘板殿(판전)’이란 글씨다. 당시 봉은사에서는 대장경을 보관할 판전을 짓고, 현판의 글씨를 추사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유학자가 어떻게 절 현판의 글씨 쓰기를 승낙했을까? 왕실의 내척(內戚)인데다가, 자기만의 서체(추사체)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날리던 추사는 1840년 윤상도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8년 동안 제주 유배생활을 한다. 겨우 유배지에서 돌아와서도 얼마 안 되어 1851년 다시 권돈인의 진종(眞宗) 예론(禮論)에 연관되어 또다시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다음 해까지 유배생활을 한다. 조선의 천재였던 추사는 이 두 차례의 유배로 남을 모함하고 공허한 탁상공론의 싸움만 하는 성리학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불교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리하여 집(현 과천시 주암동)에서 가까운 봉은사에 자주 왕래하면서 스님들과 친해졌다. 추사는 불경도 탐독하였고, 특히 유마경에 있어서는 스님들과의 토론에서 지지 않을 정도라 유마거사라는 별명까지 얻기까지 하였다. 이러니 봉은사에서는 당시 새로 지은 판전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오랜만에 외국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격조 높은 한국문화 책을 만났다. 전통공예를 다룬 좋은 책을 여럿 출판한 ‘수류산방’에서 ‘18세기 조선의 일상과 격조’를 부제로 펴낸 《한국전통공예(Traditional Korean Crafts)》 책이다. 물론 한국 전통공예를 다룬 외국어책은 많지만, 이처럼 귀빈에게 선물하기 좋은 ‘명품’ 느낌의 책은 흔치 않다. 일단, 책이 아름답다. 격조 높은 도록을 연상케 하는 붉은 표지와 넝쿨무늬를 닮은 특색있는 띠지는 첫눈에도 이 책이 품은 고아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낸다. 이렇듯 책인 듯 도록인 듯, 묘한 느낌을 자랑하는 이 책의 정체는 사실 도록이다. 2007년 7월 19일부터 8월 27일까지 한국공예문화진흥원과 주 국제연합 대한민국대표부의 공동 주관 아래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전시 <Traditional Korean Crafts>에 출품된 공예품을 담았다. 출품작들은 각 분야에서 수십 년간 헌신한 한국 최고의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들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지방 무형문화재, 명장, 전수자 등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최고의 장인들이 으뜸 기량을 발휘해 만든 최고의 작품들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봄처럼 비가 자주 온 해도 없었을 것이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어김없이 밤새 비가 온 흔적이 역력하고 낮이 되어서 잠깐 해가 나다가 밤이 되면 다시 어느새 빗방울이 뿌리는 날씨가 아마도 5월 한 달 내내 이어진 것 같고, 6월 들어 좀 바뀔까 해도 역시 또 그런 날씨가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장 좋은 봄의 핵심인 5월을,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19인지 뭐 때문에 출입과 사람 만나는 것이 제약을 받은 상황에서, 정말 가족, 친지, 친구들과 마음껏 회포도 풀지 못하고 이 좋은 봄을 그대로 보낸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봄을 보낸 이유가 우리와는 다르다 해도 봄을 덧없이 보내는 데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고금이 같은 것일까? 고려 최대의 시인인 이규보(李奎報, 1168 ~ 1241)도 '봄을 보내며(送春)'라는 시에서 비슷한 감상을 남겼다(동국이상국후집 제3권 / 고율시(古律詩) 春去去能不悲 봄이 가려 하니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非爾負吾吾負爾 네가 날 저버렸나 아니 내가 널 저버렸네 適我病中遭汝來 마침 병중에 너를 맞아서 未肯對花成一醉 꽃을 대해 한 번쯤 취해 보지도 못하였네 그래서 내년에 올 때는 늙은 것은 가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중에서 물고를 당했다’ *삼성국문; 의정부, 사헌부, 의금부의 관원들이 함께 패륜을 범한 죄인을 국문하던 일 소설의 실마리는, 《조선왕조실록》에 쓰인 여덟 줄이었다. 이 사건은 단 한 번, 효종 1년(1650년) 2월 27일 기사에 등장한다. 주인을 살해한 죄로 삼성국문(三省鞫問)을 받던 범인이 옥사했다는 기록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종이었던 범인이 자신이 한 남자를 찔러 죽인 것은 자복했으나, 그 남자가 자신의 주인인 것은 한사코 부인한 사실이었다. 작가 김별아는 이 대목을 수상히 여겼다. 그래서 《승정원일기》로 눈을 돌려 효종 즉위년(1649년) 11월 6일부터 사건에 관해 언급한 기사 40여 개를 찾아냈다. 조정에서 단순 살인사건을 이토록 여러 차례 다룰 리는 없기에, 그녀는 작가 특유의 ‘촉’을 발휘해 앙상한 사실의 뼈대에 풍부한 상상력을 덧댔다. 이 책 《구월의 살인》은 이렇듯 한 줌의 기록에서 탄생한 역사추리소설이다. 사실, 책장이 쉬이 넘어가진 않는다. 형사사건에서 쓰던 전문용어가 워낙 많고, 역사소설 특유의 예스러운 문체가 눈에 익을 때까지 시간이 걸린 탓이다. 그러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 이야기를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내야 할지 나 자신도 모를 지경이다. 그들은 성상을 부수고, 순교자들의 신성한 유물을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곳에 집어던졌으며, 구세주의 살과 피를 아무 데나 마구 뿌렸다. 이 적그리스도의 사자들은 성배와 성반을 빼앗아 보석들을 뜯어내고 술을 따라 마셨다....... 대성당에 대한 신성모독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였다. 그들은 주제단과 전 세계가 감탄하는 예술품들을 파괴하고 그 조각들을 자기들끼리 나눠 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말과 노새를 성당 안에까지 끌고 들어와서는 제기, 옥좌에서 뜯어낸 조각이 새겨진 금과 은, 연단, 문짝, 가구 등을 닥치는 대로 실어 날랐다. 짐의 무게를 못 이겨 말과 노새 몇 마리가 쓰러지자 가차없이 칼로 죽여 버리는 바람에 성당 안에는 온통 짐승들의 피와 악취가 가득했다. 한 매춘부가 총대주교의 좌석에 앉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상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음탕한 노래를 부르고, 신성한 장소에서 불경스러운 춤을 추었다............. 고결한 부인들이나 정숙한 처녀들, 심지어 신에게 봉헌된 처녀들에게까지도 전혀 자비가 베풀어지지 않았다..... 거리의 주택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영국의 식품회사인 워커스사는 2007년에 감자칩 한 봉지를 생산하는 전 과정에서 75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봉지에 표기하였다. 영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탄소발자국이 표시된 상품을 우선 구입하고, 탄소배출량이 적은 제품을 사서 지구환경보호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다른 회사들도 제품에 탄소발자국 표시를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탄소발자국이라는 용어 대신 ‘탄소성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2009년 2월부터 환경부 고시 <탄소성적표지 인증업무 등에 관한 규정>에 근거를 두고 탄소성적표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의 목적은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 및 수송, 유통, 사용, 폐기 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제품에 표기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시장 주도로 저탄소 소비문화 확산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다. 탄소성적표지제도는 법적으로 강제하는 인증제도가 아니라 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임의적인 인증제도이다. 이 제도는 1단계 탄소배출량 인증, 2단계 저탄소제품 인증, 3단계 탄소중립제품 인증의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차를 두고 시행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사랑하던 소년 아도니스가 산돼지에 물려 죽었을 때, 아도니스를 살리려 아프로디테가 급히 달려오다가 가시에 찔렸는데, 그 피가 흰 장미에 떨어져서 붉은 장미가 되었다는 그리스의 신화가 생각난다. 아파트 담장에 피어난 장미들의 붉은 색이 정말로 아프로디테의 심장에서 흐른 뜨거운 피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6월이다. 6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요즈음 서울 등 대도시에서 장미를 자주 많이도 보게 되는데, 잘 가꿔진 정원에 따로따로 심은 장미가 아니라 담장을 타고, 울타리를 타고 줄기가 끝없이 뻗어가는 넝쿨장미(rambling rose)다. 우리가 어릴 때는 찔레꽃은 어디에나 많이 피었지만, 장미꽃은 보기가 쉽지 않아, 이 장미가 유럽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는데, 울산에 사는 향토사연구가인 이양훈 씨가 이 덩굴장미는 원래 한반도의 해당화였다가 1750년 무렵 부산 초량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돼 거기서 개량되었고, 1809년에 영국의 무역업자 찰스 그레빌(Charles F. Greville)에 의해 일본에서 영국으로 보내진 뒤에 세계로 퍼졌다는 설을 전한다. 출전이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회기역에서 만나!” 우리는 날마다 지하철을 타고, 또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그 역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무심코 지나치는 지하철역에도 그 나름의 유래와 역사가 숨겨져 있으니, 그런 역사를 알게 된다면 날마다 오가는 지하철이 좀 더 정겹게 느껴질 터이다. 이렇듯 일상에서 역사의 향기를 접하게 해 주는 책이 있다. 바로,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역사강좌를 책으로 엮은 《지하철을 탄 서울 인물史》다. 서울 시민이 날마다 접하는 지하철역을 소재로 한 역사 이야기라니, 그 기획이 절묘하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지하철이라도, 숨겨진 역사를 알고 나면 달리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에 소개된 지하철역은 모두 16개다. 이 역들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 광복 이후 일본식 지명을 청산하기 위해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의 시호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역이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을 따른 을지로입구역과 을지로3ㆍ4가역,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공’을 따른 충무로역, 을사조약에 반발해 자결한 애국지사 민영환의 시호 ‘충정공’을 따른 ‘충정로역’이 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