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96년 강원도 양구군 우망리장을 구경하러 가 보자. 많은 장사치와 백성들이 장터에 모여 있다.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물건을 사고파는 게 아니다. 운집한 군중 가운데에 한 사람이 소리를 크게 질러 무언가를 읽고 있다. 《독립신문》이다. 사람들은 신문을 들으러 이 장터에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양구군 군수였다. 군수는 일부러 시장을 열고 친히 장터에 와서 시국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한다. 이어서 부하로 하여금 신문을 낭독하게 하는 것이다. 양구군 원님만 훌륭했던 건 아니다. 장터 마을에 사는 백성 김기서, 조성룡, 김리선은 이런 글을 《독립신문》(1896년 4월 7일)에 보냈다. 요사이 군수가 장터를 열고 친히 장에 나와 장사치와 인민이 많이 모인 곳에서 시국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소리를 크게 질러 《독립신문》을 읽게 하니, 오는 사람과 가는 손님이며 장사하는 사람과 온 백성들이 어깨를 비비고 둘러서서 재미를 붙여 듣고 모두 찬탄하더라. 이후부터는 물건 매매하는 상인들뿐 아니라, 《독립신문》 들으러 오는 백성들이 멀고 가까운 곳을 헤아리지 않고 귀를 기울이고 다투어 모여들어 서로 말하여 가로되,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우리네 세상에는 소설 같은 일들이 넘실댄다. 다음 광경은 어떠한가? 1897년 어느날 필립 제이슨(Philip Jasohn)이라는, 국적은 미국이고 직업은 서양의사인 사나이가 조선의 길거리에서 신문팔이를 하고 있다. “한 장에 한 푼인 신문이오! 읽고 나면 창호지도 되고 밥상 덮는 상보도 되는 신문 한 장에 한 푼이요.”(이규태, <이규태 코너:서재필 정신>, 조선일보 1994.4월5일 5면 / 강준만의 《한국근대사 산책》 제3권 55쪽에서 재인용) 그의 한국 이름은 서재필(1864-1951)이다. 스무 살 때 불끈, 혁명(1884년 말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대역죄인이 되어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갔던 그 사람. 그가 다시 조선에 돌아와 독립문과 독립협회를 세우고 <독립신문>을 창간할 그때 고국에 혈육붙이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죄다 처형당했기에. 전라도 보성이 고향이며 미국 여자를 아내로 둔 이 의사는 자신이 창간한 <독립신문>을 지금 길거리에서 목청 높여 팔고있이다. 신문을 직접 우리의 눈으로 보기로 하자. 1899년 3월 15일(수) 자 제55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