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건축형식과 시대적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안성 청원사 대웅전(安城 淸源寺 大雄殿)」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안성 청원사 대웅전」은 창건연대가 명확하지 않으나, 1854년(철종5년) 대웅전의 공사 내용을 담고 있는 상량문을 통해 그 이전에 건립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포작*의 세부 장식이나 구성수법 등을 통해 건립연대를 조선전기로 추정할 수 있으며, 수종 분석과 연륜연대 분석을 통해 15세기의 부재로 특정할 수 있다. * 포작: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 대웅전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맞배지붕 형식이다. 건물 앞면은 기둥 상부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배치한 다포계 공포*로, 뒷면은 기둥 위에 돌출된 부재(출목)와 끝부분을 날개형태로 조각한 부재(익공)를 함께 사용한 출목 익공계 공포로 구성하여, 하나의 건축물에 두 가지 공포 양식이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 공포: 지붕의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 기둥 위에 설치하는 목조 임진왜란 이전에 건립돼 현존하는 건물 사례가 드물다는 점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장(청장 허민)은 조선시대 불교 건축과 절 운영의 변화를 보여주는 「안동 광흥사 응진전(安東 廣興寺 應眞殿)」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하였다. 안동 광흥사는 남북국시대(통일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특히 조선전기에 불경 간행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안동지역의 유서 깊은 절이다. 「안동 광흥사 응진전」은 창건연대가 명확하지 않으나, 망와*에 기록된 글을 통해 1647년(인조 25년) 기와 공사를 하였음을 알 수 있어, 그 이전인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827년과 1946년 절에 난 큰 불로 주불전이었던 대웅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탔으나, 응진전은 중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어 화를 면한 뒤 사실상 광흥사의 중심 불전 기능을 수행하게 된 보기 드문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 망와: 지붕 마루 끝에 세우는 암막새 기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정면의 공포*는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한 다포 형식으로 화려하게 조성되었으며, 옆면과 뒷면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두고, 꽃 무늬가 그려진 화반*으로 장식하여 정면을 강조하였다. * 공포: 기둥머리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현재 전하는 경수연도(장수 축하ㆍ기원 잔치인 경수연을 그린 그림) 가운데 유일한 원본인 「신중엄경수도첩」을 비롯해 「영산회상도」,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제10권하」, 「묘법연화경 권3」, 「구례 화엄사 동종」,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영축사’명 영산회상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하였다. 고령신씨영성군파 문중에 전해오는 「신중엄경수도첩(申仲淹慶壽圖帖)」은 1601년 80살이 된 신중엄(申仲淹, 1522~1604년)의 아들 신식(申湜)과 신설(申渫)이 아버지의 장수를 축하하며 개최한 경수연을 기려 만든서화첩이다. 경수연은 1601년 12월 12일 처음 연 이래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열렸다. 이 잔치는 서대문 인동(仁洞)에 위치한 신중엄의 자택에서 열렸는데, 당대의 주요 관원과 명문장가, 명필가 등이 참석하였다. 신중엄경수도첩에는 맨 앞에 허목의 전서*체 글씨 <경수미정(慶壽眉鼎)>ㆍ<경수도첩(慶壽圖帖)>이 쓰여 있으며, 화공(畫工)에게 부탁해 그린 <경수연도(慶壽宴圖)>ㆍ<서문구모도(西門舊茅圖)>ㆍ<용산강정도(龍山江亭圖)>ㆍ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불교의 힘을 빌려 몽고의 침입이 끝나기를 기원하며 만든 「고려 오백나한도」를 비롯해 「세종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유항선생시집」, 「휴대용 앙부일구」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하였다. 「고려 오백나한도(高麗 五百羅漢圖)」는 13세기 몽고의 고려 침입 시기에 국난 극복을 위해 일괄로 제작된 오백나한도 500폭 가운데 한 폭으로, 제329원상주존자(圓上周尊者)를 표현한 것이다. 2016년 보물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오백나한도와 함께 제작되었다. * 원상주존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깨달음을 얻은 수많은 수행자를 의미하는 오백나한 가운데 한 분임. 한 폭에 한 나한만을 담은 형식으로, 너른 바위에 걸터앉아 화면 왼쪽 위에 있는 용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나한의 얼굴과 자세에서 느껴지는 강인함과 역동감, 필선의 능숙한 구사, 자유롭고 다양한 농담 표현 등 뛰어난 화격을 갖추고 있다. 또한 화면 위 양옆에 적힌 화제(畫題)를 통해 존명(나한의 이름)을 명확히 알 수 있으며, 아랫부분 가운데 화기(畫記)에는 제작 배경, 제작 연대(1235년), 발원자(김희인), 시주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조선 후기 국가의 발전과 부흥을 위한 개혁과 개방의 방법론이 담긴 「박제가 고본 북학의」를 비롯해 「구례 화엄사 벽암대사비」, 「대혜보각선사서」, 「예기집설 권1~2」, 「벽역신방」, 「합천 해인사 금동관음·지장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창원 성주사 석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강화 전등사 명경대」, 「삼척 흥전리사지 출토 청동정병」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하였다. (모두 9건) 《북학의》는 박제가(1750~1805년)가 1778년 청의 북경을 다녀온 뒤, 국가 제도와 정책 등 사회와 경제의 전 분야에 대한 실천법을 제시한 지침서다. 내외편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내편은 각종 기물과 장비에 대한 개혁법을, 외편은 제도와 정책에 대한 개혁안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박제가 고본 북학의」는 작성 시기가 초기본에 가장 가깝고, 박제가의 친필 고본(稿本)이라는 점이 분명하여 값어치가 탁월하다. 다른 사람이 옮겨 베껴 쓰는 필사본의 저본(底本)이 되어 자료적 값어치가 있고, 첨지(籤紙, 책에 무엇인가를 표시하거나 적기 위해 붙이는 종이)의 주석과 본문의 첨삭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甘露王圖)」, 「양양 선림원터 출토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를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螺鈿菊唐草文箱)」는 2023년 국가유산청(전 문화재청)이 일본에서 환수한 유물로, 뚜껑과 몸체, 안쪽에 공간을 분리하는 속상자로 구성되어 있다. 침엽수 계통의 나무로 만든 백골 위에 천을 바르고 그 위에 골회(骨灰)를 입혀 자개를 붙인 다음 여러 번 옻칠하여 마감하는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제작 방식인 목심저피법(木心紵皮法)으로 제작되었다. 표면에는 전체적으로 모두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배치하였고, 부수적으로 마엽무늬(麻葉文, 원을 중심으로 한 수평, 수직, 사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무늬), 귀갑무늬(龜甲文, 거북의 등딱지 모양을 띤 무늬), 연주무늬(連珠文, 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하여 만든 무늬)를 썼다. 표면을 장식하고 있는 국화넝쿨무늬는 얇게 갈아낸 자개를 오려내어 붙인 줄음질 기법으로 표현하였고, 부속무늬로 사용된 마엽무늬와 귀갑무늬는 자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浦項 寶慶寺 五層石塔)」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浦項 寶慶寺 五層石塔)」은 포항 보경사 경내 적광전 앞에 있는 높이 약 4.6m 규모의 석탑으로,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석(塔身石, 몸돌)과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으로 구성된 탑신부가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석과 복발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 상륜부(相輪部) : 석탑의 꼭대기에 세워 놓은 장식 부분 * 노반석(露盤石) : 탑의 상륜부 가장 아래에 상륜을 받치기 위한 방형(사각형)의 돌 * 복발석(覆鉢石) : 탑의 노반 위에 엎어진 사발 모양으로 장식해 놓은 돌 1588년 사명대사 유정이 지은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慶寺金堂塔記)」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현종 14년(1023년)에 절에 탑이 없어 청석(靑石)으로 5층탑을 만들어 대전 앞에 놓았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은 1023년에 건립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석탑의 1층 탑신석 정면에는 석탑 내부에 사리가 모셔져 있음을 의미하는 문비형과 자물쇠, 문고리 조각이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시대에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조선 후기에 편찬된 관찬 지리지(관의 주도로 펴낸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해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좌상((石造三藏菩薩坐像) 및 목조시왕상(木造十王像) 일괄」, 「‘천수원(薦壽院)’ 글씨 청동북」,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권6~10 」 등 모두 7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하였다. (재)한국교회사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여지도서(輿地圖書)》는 조선 영조 때 각 군현에서 작성한 자료를 각 도의 감영을 통해 모아 완성한 지리지로, 각 군현에서 작성하다 보니 기록 내용이 통일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자료를 작성한 시기는 대체로 1760년대 무렵으로 추정되며, 각 《읍지》의 호구(戶口ㆍ전결(田結) 등의 내용으로 볼 때 1759년(조선 영조 35)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 지리지와 달리 《여지도서》는 각 군현의 《읍지》 앞에 지도를 붙였다. 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1면 혹은 2면에 걸쳐 그려져 있는데, 경기도와 전라도를 뺀 6개 도의 도별지도와 영ㆍ진지도 12매, 군현지도 296매가 포함되어 있다. 지도가 그려진 형식, 구성 방법, 채색은 군현마다 다르지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합천 해인사 홍하문」 등 절 일주문 6건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했다. 일주문(一柱門)은 조선시대 절의 삼문(三門) 체계가 성립되면서 나타나는 절 진입부의 첫 번째 건축물이다. 대부분 다포*계의 화려한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조선전기에서 후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시기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동안은 절의 주불전(主佛殿) 위주로 지정되어, 2021년까지 일주문 중에는 「부산 범어사 조계문」이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 다포: 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꾸며 놓은 건축양식 이에 문화재청은 2022년부터 전국 절 일주문 50여 건에 대한 일괄 조사한 뒤, 전문가 검토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값어치가 높은 것을 골라 지난해 12월 「순천 선암사 일주문(順天 仙巖寺 一柱門)」 등 4건을 보물로 지정하였으며, 이번에 6건의 일주문을 보물로 추가 지정하게 되었다. 「합천 해인사 홍하문(陜川 海印寺 紅霞門)」(경남 합천군)은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1457년(세조 3)에 중수*하여 지금까지 다섯 차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세조의 지원 아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종묘 신실에 봉안되어 전승된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御寶ㆍ御冊ㆍ敎命)」을 비롯해 「근묵(槿墨)」, 「아미타여래구존도(阿彌陀如來九尊圖)」,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順天 桐華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등 서첩 및 조선시대 불화, 불상 등 모두 4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보물 「조선왕조 어보ㆍ어책ㆍ교명」은 조선이 건국한 139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1910년까지 조선왕조의 의례에 사용된 인장과 문서다. 어보ㆍ어책ㆍ교명은 해당 인물 생전에는 궁궐에 보관하였고, 죽은 뒤에는 신주와 함께 종묘에 모셔져 관리되었다. 어보란 임금ㆍ왕세자ㆍ왕세제ㆍ왕세손과 그 배우자를 해당 지위에 임명하는 책봉 때나 임금ㆍ왕비ㆍ상왕(上王)ㆍ왕대비ㆍ대왕대비 등에게 존호(尊號), 시호(諡號), 묘호(廟號), 휘호(徽號) 등을 올릴 때 제작한 의례용 도장이며, 어책은 어보와 함께 내려지는 것으로 의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신분과 재질에 따라 어보는 금보(金寶)ㆍ옥보(玉寶)ㆍ은인(銀印) 등으로, 어책은 옥책(玉冊)ㆍ죽책(竹冊)ㆍ금책(金冊)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