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처럼 젖어드는 시간, '시나브로'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세상이 온통 ‘빠름’이라는 홀림에 걸린 듯합니다. 인공지능이 눈 깜짝할 새 답을 내놓고, 짧은 움직그림들이 우리의 눈길을 훔쳐가는 때입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은 마음졸임에, 우리는 늘 숨 가쁘게 열매만을 쫓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바뀜이 없으면 허탕이라 단정 짓고, 어제와 같은 오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들볶곤 합니다. 서른 해 가까이 토박이말의 숨결을 지켜온 저는, 오늘 이 조급한 발걸음들 앞에 아주 고요한 낱말 하나를 놓아두려 합니다. 바로 ‘시나브로’입니다. 본디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쌓였던 눈이 햇살에 녹아 흐르는 소리, 철이 바뀌며 나뭇잎의 빛깔이 옅어지는 모습처럼, 온누리가 일구어내는 가장 참된 속도를 말합니다. 거창한 외침도, 요란한 소문도 없이 세상의 밑바탕을 바꾸어 놓는 끈덕진 힘이 이 말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바뀜’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시나브로’가 일구는 놀라운 일을 믿지 않습니다. 한 번의 투자로 큰 부자가 되길 꿈꾸고, 한 달의 공부로 실력이 부쩍 늘기를 바랍니다. 거치는 길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