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경복궁 서쪽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조선시대 왕비의 혼례식 때 왕비관처럼 썼던 왕비의 가채머리장식이다. 신라와 백제시대 왕릉에서 발굴된 임금과 왕비의 금관장식과 견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데, 오늘은 혼례식 때 머리에 왕비의 관처럼 썼던 왕비의 가채머리를 올려본다. 요즈음 한류가 여러 방면에서 세계에 떨치고 있는데, 한국인의 빼어난 디자인 감각으로 발전시켜 만들어낸 조선시대 왕실의 혼례식 때 쓴 왕비의 가채머리장식은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요즈음에도 여인들은 집안의 행사가 있으면 미장원에서 한참 머리손질을 하여 자신의 얼굴을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지만, 조선시대 왕실에서도 왕비가 되는 여인을 돋보이게 하고자 오랜세월 발전시켜왔던 다양한 장신구들을 귀한 보석으로 장식하여 머리에 꽂았다. 자세히 보면 매우 복잡스럽지만 전체적으로 보아도 아름답고, 하나 하나 떼어서 살펴보아도 아름답다. 각각의 장식품에는 그 나름대로 좋은 의미(부, 귀, 수명장수)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것 들을 모두 모아 가장 아름다운 왕비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왕비의 머리에는 다양한 모양의 비녀들이 상하좌우로 꽂혀있고, 영롱한 구슬들이 매달려 있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왕실 이야기. 예나 지금이나 최고 권력자 주위의 이야기는 세간의 관심을 끈다. 밝은 빛처럼 시선을 모으는 권력의 속성처럼, 임금과 그 주변의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역사에 기록되고 회자하였다. 다만 정보의 통제가 엄격했던 옛날에는 덜 알려지고, 지금은 더 많이 알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박영규가 쓴 이 책, 《조선시대 왕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왕실 사람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임금과 세자는 어떻게 지내고 왕후와 후궁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자세히 알려주는 책이다. 막연히 사극으로만 보던 왕실 사람들의 생활을 마치 옆에서 보듯이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왕비 간택과 외척에 관한 이야기다. 간택은 왕실에서 혼인을 앞두고 혼인 후보자들을 대궐 안에 불러 배우자를 뽑던 제도다. 고려 때만 해도 이런 제도 없이 상궁을 앞세워 중매하는 형식으로 혼인했지만, 조선시대 들어서는 간택을 통해 일종의 ‘선발’을 했다. 태종은 신하 이속이 왕실과의 중매 혼인을 거부하자 괘씸하게 여기고 ‘간택령’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왕실의 혼인을 위해 간택을 할 때는 먼저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비슷한 나이의 자식을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소장 조규형)는 왕비의 침전(寢殿)인 교태전이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이후 199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지 올해로 30돌을 맞아 오는 5월 8일부터 6월 27일까지 내부를 특별 개방한다. * 행사기간 : 5.8.(목)~6.27.(금) 기간 내 매주 수, 목, 금요일 개방(총 22일, 1일 10회차 운영) (1회차) 10:00~10:20, (2회차) 10:30~10:50, (3회차) 11:00~11:20, (4회차) 12:30~12:50, (5회차) 13:00~13:20, (6회차) 13:30~13:50, (7회차) 14:00~14:20, (8회차) 14:30~14:50, (9회차) 15:00~15:20, (10회차) 15:30~15:50 * 회차별 20분, 자유 관람 이번 특별 개방에서는 왕비의 생활상을 재현한 전시와 함께, 처음으로 공개되는 교태전의 부속 전각 ‘건순각’에서 부벽화를 주제로 한 실감영상을 만날 수 있다. 교태전에서는 대청, 온돌방, 회랑을 왕비의 시선을 따라 관람하게 된다. 대청에서는 지난해 제작ㆍ공개된 2점의 부벽화 모사도인 화조도(암수가 한 쌍을 이루는 앵무새의 다정한 모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왕비로 산다는 것. 뭔가 제목에서부터 잔잔한 엄중함이 느껴지는 ‘왕비’라는 자리는, 참 높고도 어려웠다. 한 나라의 왕비 역할을 잘 해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음은 고금의 예에서 잘 알 수 있지만, 복잡한 정치 셈법이 얽혀 있었던 조선의 왕비는 특히 더 어려웠다. 이 책 《왕비로 산다는 것》의 지은이 신병주는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주부들이여 왕비가 되자’라는 주제의 특강 요청을 받고, 왕비를 주제로 한 강의를 할 수는 있지만 제목을 ‘왕비로 산다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실제로 그렇게 강의했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도 조선의 왕비는 동화나 사극 속 왕비처럼 아름답고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누릴 수 있는 것보다 제약이 더 많았고, 엄격한 궁중에서 비슷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힘든 직업이었다. (p.8-9) 왕비는 권력과 부가 보장되는 지위라기보다 정치적 상황에 휩쓸려야 했고 답답한 구중궁궐에서 왕의 내조에 전념하는 역할을 요구받는 위치에 있었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에 있는 인공 정원 아미산이나 궁궐 후원을 산책하는 일 또는 궁궐에서 독서를 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왕비의 숨통을 터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임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