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해주는 월하 명인의 이야기 <3>으로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 앞에서 부채춤도 추고, 할머니의 흉내도 내면서 재롱을 부려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렸다는 이야기, 교육 연수원에서 청중들에게 시조창을 지도하실 때 할머니의 멋진 모습은 잊을 수가 없으며, 할머니는 항상‘몸가짐을 반듯하게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는 이야기, 제자들을 지도하실 때도“ 악보에서 눈을 떼고, 내 입모양을 보면서 손으로 이어가는 박자의 한배를 잘 보라”고 하시던 모습들이 기억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이어서 이번 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하는 월하 명인의 이야기 <4>로 이어간다. 윤서 가객이 전하는 말이다. “제가 대학 2학년 말, 겨울이었어요. 외부 행사를 마치고 귀가해 보니, 할머니가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는 거예요. 이유는 혼자서 팥죽을 드시다가 팥죽 속에 옹심이가 목에 걸려 주위의 도움으로, 급히 응급실로 가셨는데, 다행히 위급사항은 면했지만,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회복이 바로 안 되셨다고 합니다. 그 뒤, 1년여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1996년 1월 1월 익산 원불교에서 작고하셨습니다. ” 손녀, 김윤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할머니와 손녀딸’로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도 살아온 젊은 가객, 김윤서를 통해, 월하 여사의 일상(日常)과 근검절약 정신, 사회 이바지, 곧 소년소녀 가장 돕기, 장학금 지원, 원불교 기도원 신축 기금, 특히 <월하문화재단>의 설립을 위해, 전 재산을 쾌척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의 신문 방송들이 “바느질, 공연 수입으로 모은 재산, 사재 털어 문화재단 설립”, “인간문화재 김월하 씨, 후진양성 50억 희사”, ”평생 모은 전 재산, 후학 위해 내놓아“, ”바느질삯, 강사료 아껴 수십억 원 전 재산” 등등으로 대서특필했다는 이야기, 등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김윤서 가객이 전해주는 할머니, 월하 명인의 이야기 <3>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 어린 시절,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노래나 흉내 내기 등, 재롱잔치를 펼쳤던 경험이나 일화가 있다면? “낙원동에서 살 때인데, 아래층에 국악학원이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민요창, 대금소리, 또는 춤 반주 음악 등등이 다양하게 들려왔지요. 어느 날, 그 학원에서 버린 소품들을 가지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할머니 앞에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월하 여사의 손녀, ‘김윤서가 들려주는 할머니, 월하 명인의 이야기<1>’을 소개하면서 할머니는 근면한 생활태도와 선(善)한 심성(心性)의 소유자였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할머니는 잘못했을 때, 특히 늦게 귀가할 때,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하며 평생, 근검절약을 일상에서 실천해 오신 경험담도 일부 소개하였다. 이번 주 이야기도 글쓴이가 묻고, 명인의 손녀, 김윤서가 당시 경험을 소개하는 형식의 월하 명인 이야기 <2>를 진행한다, - 월하 선생의 근검절약은 널리 알려진 미담이다. 관련하여 일상에서 경험한 실례가 생각난다면? “휴지 한 장, 빈 상자도 재활용하셨고, 버릴 물도 여러 번 거치고 거쳐서 쓰신 다음, 마지막으로 버리시고, 휴지를 써도 일일(一日) 달력을 뜯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쓰셨지요. 흔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몸이 불편하다’거나 특히 ‘다리가 아프고, 피곤한’ 자기를 위해서 택시를 타시는 경우가 있지 않겠어요? 또는 좋은 옷을 사서 입거나, 맛있는 비싼 음식도 드시고 싶지 않겠어요?. 월하 선생님, 아니 우리 할머니는 이런 것들이 일체 허락되고 용납되지 않으셨다니까요.” 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산책로에서 만나게 된 월하의 시조(時調)가락”이라는 제목으로 정가의 명인, 김월하 여사가 시조와 만나게 된 인연, 그리고 동호인들을 통해 정가계의 대가들을 만나게 된 배경을 소개하였다.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삯바느질 일을 하다가 위궤양을 앓게 되었고, 위기는 넘겼으나, 후유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 그래서 매일 새벽, <구덕수원지>에 올라, 새벽 운동을 하며 시조창 동호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들을 통해 당대 유명한 사범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과 사제의 연을 맺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랬다. 당시, 30대 중반의 월하 여사는 피난민이자, 환자였고, 매일 새벽 산책길에 나서며 동호인들과 만났다. 또한 그들을 통해 시조창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정가(正歌)의 대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움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회가 마련되었기에 훗날 그가 으뜸 명인 자리(예능보유자, 속칭 인간문화재)까지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은 전혀 계획되고, 준비되었던 결과가 아니었다. 모든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지만, 그가 노력한 결과는 인정되어야 했고, 그 위에 본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젊은 가객, 김윤서와 월하 여사가 <손녀딸과 할머니>로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맺기 위해 당시 5살이었던 김윤서 어린이를 마주하면서 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경기도 고양군(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 보광동)에서 5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고, 2살 되던 해에 유행병으로 할머니, 어머니, 두 오빠 등, 가족 4인을 잃고 고아가 되었으며, 이모 댁에서 종로구 사간동 유씨 부인의 수양딸로 들어가 <유정환>이란 이름으로 살다가 자신의 이름이 <김덕순>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사실, 16살에 혼인하였으나, 6, 25사변으로 남편과 생이별했다는 아픈 이야기 등을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아픈 역사, 6.25 전쟁은 밀고 밀리는 남과 북의 불행한 동족싸움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北進),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하여 남쪽의 승리를 굳히는 듯했지만, 해가 바뀐 1월 4일, 중공군이 가세하여 인해(人海)전술로 밀고 내려온 것이다. 그 공세에 밀린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까지 내주게 되는, 그래서 그 추운 겨울, 어쩔 수 없이 후퇴하게 되는 상황을 일러 <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곡 달꽃을 피우다” 발표 무대에서 <계면, 중거-中擧>, “산촌에 밤이 드니”를 불러 객석의 공감을 얻은 김윤서 가객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노래 역시, 이수대엽에서 파생된 곡이고, <중거>라는 이름은 ‘초장(初章) 중간 부분을 높게 들어 올린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중허리 드는 잦은한잎>, 또는 <중허리>라고 부른다는 점, 그 이름에서 잦은=삭(數), 한=대(大), 잎=엽(葉)을 뜻한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이 노래는 산촌(山村)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개 짖는 소리를 통해, 견공(犬公)과 함께 하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의 풍류를 떠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 이 곡은 여창의 맑고, 높은 속 소리로 이어감으로써 현대사회에 엉켜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는 이야기, 그리고 김윤서와 월하 여사는 사제(師弟)관계이기도 하지만, 그가 5살 때, 월하 선생과 가족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그 뒤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당시, 김윤서는 처음 월하 선생을 뵈었을 때, “너무도 곱고 밝으셔서 할머니를 보고, 따라갔다”라는 추억담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변진심이 부른, 계면조 <이수대엽>의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계면조-界面調>란“ 그 소리를 듣고, 슬프거나 비애를 느끼게 되어 얼굴에 경계(境界)가 생긴다”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란 점, 그가 시조창을 배우다가 월하 스승과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 서울지방의 무형 유산, <경제(京制)시조>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가 말하는 월하 명인의 매력은 꿋꿋하면서도 꽉 찬 성음(聲音)과 무대에 오르면 꽉 차는 듯한 무게감 등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변진심 명창은 앞으로 <여창가곡>과 <경제(京制)시조>의 확산을 위해, 더더욱 열(熱)과 성(誠)을 다하겠다는 의욕을 보인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 이야기는 당일 발표무대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젊은 김윤서 가객의 <계면, 중거-中擧>이야기로 이어간다. <우조, 중거>는 앞에서 이미 얘기한 바 있는 것처럼, 이번 주에 소개할 <계면-중거>도 이삭대엽(貳數大葉), 또는 <이수대엽>에서 파생되어 나온 악곡의 이름이다. 이 곡을 <중거>라 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반우반계(半羽半界)로 이루어진 <반엽(半葉)>이란 노래를 불러 발표회의 분위기를 바꾸어 준 강권순의 이야기를 하였다. 한 곡 내에서 그가 부른 노래처럼 변조(變調)하는 까닭은 단조로운 분위기를 변화시키기 위함이나, 또는 이어갈 악곡을 자연스럽게 예비한다는 이유라 했다. 그는 <반엽>의 노랫말 가운데 「남하여 -」로 시작하는 가사를 골라, 깊은 발성과 특유의 호흡으로 역동미(力動美)를 느끼게 해 주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몇 해 전, 월하 명인에게 전수한 여창가곡 전곡을 「천뢰(天籟), 하늘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완창하고, 음반 출시를 한 바 있는데, 전문가들로부터 “여창가곡의 대(代)를 이을 보배로운 소리꾼”이라고 평가받았다고 전했다. 다음 이야기로 이어간다. 강권순은 여창가곡의 전통적인 계승에만 열심인 가객이 아니다. 오히려 타고난 성량과 후천적인 노력으로 남다른 소리 세계에 도전해 왔음을 알게 하는 창자(唱者)인데, 무엇보다도 정가의 전통적인 계승 작업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는 현대적 정가의 확장을 위해, 서양음악 등 다른 장르와의 결합이나 협업을 통해서 정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곡, 달 꽃을 피우다〉 무대에서 우조평거(羽調平擧)를 불러 객석의 호응을 끌어냈던 조일하의 이야기를 일부 소개하였다. 대학에 합격한 뒤, 월하선생 댁을 방문하면서 그의 인생길이 정해진 듯했다는 이야기나, 월하 명인의 육성(肉聲)과 가성(假聲), 강약을 통한 감정 표현 등등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으며, 또한 스승은 항상 눈으로 <안 된다>, <괜찮다>, 또는 <잘했다> 등의 평가를 해 주었다는 대목 등등이 인상 깊다. 가곡 한바탕의 흐름 속에서 그가 부른 노래, <우조 평거>는 여창가곡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안정된 구조와 흐름을 지닌 곡이며 과장된 감정 없이 담담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미묘한 강약과 호흡의 결을 조율하는 노래다. 그가 부른 평거, 처음 부분의 「일소(一笑)」는 짧은 웃음이란 뜻이다. 곧 그 웃음에 담긴 정(情)을 노래하면서도, 그 이면(裏面)에 깃든 이별의 시간까지도 함께 품고 있는 곡이어서 담담해 보이기도 하지만, 노랫말의 뜻을 새기면서 부른다면, 그 속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깊은 여운도 남기게 되는 곡이다. 당일, 조일하의 노래는 과장되지 않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영기와 함께 월하 스승에게 전수 장학생으로 인정받고, 가곡 공부에 전념해 온 이승윤의 이야기를 하였다. 김영기가 공연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 오면서 가곡의 지평을 넓혀 왔다면, 이승윤은 가곡의 후진들을 열심히 양성해 온 가객이란 점에서 견줄 수 있다는 점, 그는 공연 당일, 우조(羽調) <중거(中擧)>를 불렀는데, 그 곡은 <이수대엽>에서 파생되어 나온 변주곡의 이름으로 <중허리>, 또는 <중허리 드는 자진한잎>으로도 부른다는 점, 초장 중간 부분을 고음(高音)으로 들어낸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란 점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전통가곡을 감상할 때, 가령, 우조 <이수대엽>이라든가, 또는 우조 <중거>와 같은 낯선 이름을 대하게 되는데, 악곡의 이름도 친숙하지 않은 편이거니와 곡명 앞에 붙여 소개하는 <우조>라고 하는 이름도 어떤 뜻을 지닌 용어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간단하게 정의하면, <우조(羽調)>라고 하는 말은 <웃조>, 곧 높은 악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낮고 평평한 악조인 평조(平調)에 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