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무렵 서울로 떠나는 시공여행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1875년께의 한양으로 시공여행을 떠나 본다. 여행에 앞서 8년 전에 돌아가신 역사학자 강재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근대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항상 유의해 온 기본 관점은 우리나라를 은둔의 나라, 정체의 나라로 보는 통속적이고 그릇된 사관을 타파하고, 거친 격랑 속에서 고투해 온 우리 선조들의 생동하는 숨결과 그 발자취를 밝혀서, 근대 민족운동사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민족의 얼은 만천하에 현창(顯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파란노도의 시대를 꿋꿋하게 살아가면서 사고하고 행동한 한국 민중의 애환을 되새기면서 그 역사적 의미를 깊이 파헤쳐 보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확인해 두어야만 하는 것은 극히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한국 근대사는….. 근대 일본의 대한관계사(對韓關係史) 속에 해소되거나, 한국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사 속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헤쳐 나간 발전의 역사라는 점이다. “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이 “한 조각의 자주성도 없는 괴뢰적 <친일파>인 양 결론 짓는” 일인 학자들의 주장을 강재언은 비판하면서 “한국사의 전과정을 일관하는 내재적 발전 법칙을 부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