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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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선생님,
한 말씀만 해 주소서!!
1920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위해 10여년간 모금활동을 하셨다는 기록을 보고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모금은 마음을 사는 일인데, 이미 100년 전에 하셨던 모금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음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 정정화 여사_상하이 시절 아들 후동(자동)과 함께
박원순시장님의 선거1, 2기를 치르며 후원회에서의 활동이 생각납니다. 구국은 위정자들만의 책무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달음은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행동’이 구국임을 알아갑니다. 그래서 소시민인 저의 삶과 실천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정정화 선생님, 선생님이 곁에 계시면 어떤 해법을 주실까요?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4월 16일 주간입니다.
세월호 1주기를 추모 하느라 광화문은 통곡 하고 있습니다.
18일 토요일과 19일 일요일에는 대답 없는 국가의 답을 듣고자 우중에도 많은 시민이 나와 노란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딱 1년 전 수학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새신을 신고, 새 가방을 둘러메고 나간 아이들이 295명 사망, 9명이 실종 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기울어져 가라앉는 배를 우리는 티비를 통해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무도 그 선체 안의 아이들을 구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비상 시스템은 작동 하지 않았고, 제각각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떠넘기다 골드타임은 지나가고, 우리를 기다리던 그 아이들은 수장 되고 말았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내가 어느 나라의 국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에게 국가는 무엇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런 애통함으로 1년이 흘렀으나 그 진도 팽목항에는 1년전과 같이 부표만 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가족과 실종자의 가족은 물론이고 그들을 위로하는 시민들도 모두 슬픕니다. 그 아이들이 총총 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별들이 뿌리는 눈물 비는 더욱 아리고 아려 아프게 파고듭니다.
5월18일은 5.18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체창등의 논란으로 3년째 유가족 없는 반쪽 기념식을 치르면서 갈등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군주의 거울’에 이어 ‘오바마의 거울’이 필요 합니다.
DAUM 창에서 “따끔한 충고조차 그리웠어요” ........스무살 처녀의 유치장 손 편지 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이 옥죄여 옵니다. 흔들리는 손으로 클릭 했습니다.
익산 경찰서 유치장에 엿새간 수감됐던 A씨에 대한 뉴스였습니다.
"저는 내일 교도소로 갑니다"라는 글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서 유치장 생활을 하면서 경찰관들에게 들은 따뜻한 위로와 따끔한 충고 덕분에 그동안 세상을 원망했던 앙금이 가셨다는 내용입니다. A씨는 편지에서 "너도 고생했다. 하지만 힘들어도 정직하게 살아왔어야지. 이 한 마디 따끔한 충고가 엄마, 아빠,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다 씻어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A씨는 세상을 살면서 '고생했다'는 말이 가장 듣고 싶었다고 합니다.
저는 영등포역에서 어두운 하늘을 지붕 삼아, 대문 없는 너른 대합실을 내 집으로 지내는 지친 이웃(노숙인)을 뵙고(상담) 있습니다. 그 분 들 역시 빵보다 진정으로 A씨와 같은 위로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그 위로가 참 어렵습니다.
100인 100색의 사연은 다르지만 삶에 지치고, 사람에 속아 범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자신의 존엄과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십니다.
저는 빵보다 이름을 불러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노숙인)의 권리를 부여하려고 노력 합니다. 그러므로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려면 자신을 관리하고 근로해야 한다고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역량을 발견 하도록 안내 합니다. 그런데 알수록 어렵고 힘이 듭니다.
이제 2년을 지나 3년차에 들어섭니다. 아직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그동안 잘 이겨내셨어요.” 하고 많은 분들에게 소리로 들려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23세의 장애1급 여성이 불러오는 배가 임신인지도 모른 체 대합실을 마실 다니듯이 놀러 다닙니다. 몰래 몰래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웁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또 정신병원에 입원 시킬 것(이미 10년 강제 입원 경험 있다고 함)이라며 인연을 끊고 싶다고 합니다.
40세의 미혼 청년은 전문대까지 학업을 마쳤으나, 유년시절 어머니는 간통으로 구속, 아버지는 재생불량성빈혈로 사망, 강남 비닐하우스 집의 방화로 화재, 누나의 카드빚(생활비) 독촉으로 누나 가출 , 임대아파트의 관리비 연체(어머니의 청소일 임금 받지 못해서)로 밀려나옴. 이러한 삶의 회오리는 누구도 피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마음 밭이 정직하고 선량하나 가족의 경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에 괴로워 쓰레기통을 뒤져 생활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은둔형으로 추락.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여 한번도 ‘행복’을 경험 하지 못한 이들이지만, 한번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단, 하루 만이라도........
정정화 선생님,
저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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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민 숙
전 탈북청소년대안학교 셋넷학교 교사
현재 햇살보금자리 아웃리치 상담사
행복설계아카데미 총동문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