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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양반전'의 무대 정선 아라리촌을 아시나요?

 [우리문화신문 = 전수희 기자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 / 올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이는 널리 불리는 정선아리랑 가운데 하나이다. 정선아리랑의 노랫말은 자그만치 700800여 수나 된다고 하는데 상당수는 전설을 품은 노랫말이 많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정선을 찾아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없는 산길이다. 지금 시대에도 굽이굽이 산길이 멀고 험하게 느껴지는데 그 옛날에는 어땠을까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정선아리랑의 가사들이 그렇게 구슬픈 것인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 정선읍에 다다랐다.
 
   
▲ 소박한 모습의 정선 아라리촌 정문
 
정선은 연암 박지원이 쓴 <양반전>의 무대이다. “양반은 비록 가난하여도 늘 존귀하고 영화로우나 나는 비록 부유하여도 비천하니 참으로 욕된 것이다. 지금 양반이 가난하여 관곡을 갚을 수 없으므로 양반을 보전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내가 사서 가지겠다.”라며 마을의 부자가 몰락한 양반의 지위를 사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러한 <양반전>의 무대가 정선 아라리촌안에 있다.
 
   
▲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내용을 묘사한 동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선읍내에 자리한 정선 아라리촌2004년 문을 열어 <양반전>의 무대를 재현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대마의 껍질을 벗겨 지붕을 이은 저릅집과 소나무를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얹은 너와집을 비롯하여 굴피집, 돌집, 귀틀집 따위의 정선 고유의 전통민가를 구경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정선의 민속촌이다.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19일 오후에 찾은 아라리촌은 날씨 탓인지 찾는 이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소박한 정문을 들어서면 마치 시골집 마당에 들어 선 듯 편안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눈앞의 모과나무에는 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달려 방문객을 맞이한다. 뿐만 아니라 흐드러지게 달린 산수유의 빨간 열매들도 지난봄의 화려했던 순간을 말해주는 듯 속삭인다.
 
   
▲ 정선의 민속촌인 아라리촌 안에는 강원도 특유의 집들을 볼 수 있다. 귀틀집, 돌집, 저릅집, 너와집 (위로 부터 시계방향)
 
이제 막 초겨울로 들어서는 아라리촌은 추수가 끝난 황량한 겨울 들판처럼 조금은 썰렁했지만 아라리촌 안에 있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있는 곳은 제법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무엇을 하기에 사람들이 몰려 있나하고 가보았더니 정겨운 양반증서 체험하기 코너가 있다. 이곳에는 아라리촌의 터줏대감 문화관광해설사 변상근(74) 씨가 양반증서를 신청한 사람들에게 붓글씨로 정성껏 이름을 써주고 있었다.
 
야비한 일을 딱 끊고 예를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할 것이며 입으로 구차스러움을 남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늘 새벽에 일어나 학문을 익히며 밥을 먹을 때 국을 먼저 훌쩍 거리며 떠먹지 말고 화가 나더라도 성내지 말며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돈을 가지고 노름을 말 것이며 모든 품행이 양반 신분에 어긋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는 양반증서의 내용이다. 반증서는 제법 그럴싸한 도톰한 종이에 인쇄된 증서로 아라리촌장이 발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기자도 재미로 한 장 받았다.
 
   
▲ 변상근 문화관광해설사가 양반증서를 정성껏 써주고 있다
 
이곳에 나와 관광객들에게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은 물론이고 정선 아리랑 등 정선의 역사와 문화를 해설해주는 일이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닙니다. 또한 아라리촌을 찾는 분들에게 양반증서를 써드리는 일도 기쁜 일 가운데 하나지요라며 푸근한 미소를 짓는 변상근 문화관광해설사는 생의 마지막 봉사처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구김살 없는 얼굴에서 엄숙한 사명감마저 느끼게 한다.
 
양반증서에 붓글씨로 이름을 써넣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물어보니 그의 서예 솜씨는 강원지역 예술대회에서 수차례의 입상 실력이 있었으며 2004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작품 전시를 할 정도의 경지였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변상근 문화관광해설사의 정선 사랑이었다. 정선문화와 역사의 해박함은 물론이고 자신이 나서 자란 정선에 대한 강한 애착과 자부심이 몸에서 배어남을 느끼면서 존경심까지 들었다. 각 지역을 다니다보면 더러 문화관광해설사들의 무성의한 해설과 얄팍한 역사인식에 불쾌감이 들 때도 있었기에 정선 아라리촌의 변상근 문화관광해설사의 열정은 단연 돋보였다.
 
   
▲ 관광객 가운데 한 사람이 받은 양반증서
 
초겨울이라 조금 썰렁한 느낌이지만 정선 아라리촌의 정경이 마치 시골집에 온 느낌입니다. 특히 문화해설사의 친정한 안내가 인상 깊었으며 우리 손자 주려고 만든 양반증서가 맘에 듭니다. 정선 아라리촌은 다른 어느 곳에서 체험하지 못한 <양반전>의 무대 정선만이 갖고 있는 정서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겨울철에도 장터가 열려어 국밥이라도 먹을 수 있게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딜 가도 장터 없는 곳은 없는데 아라리촌만 장터가 없군요
 
서울에서 정선에 단체로 관광 왔다가 들렸다는 장순희(57, 신림동) 씨는 작지만 알찬 아라리촌 안에서 국밥이나 빈대떡이라도 먹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라리촌을 둘러보니 장터 식당이 있는데 겨울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이런 쌀쌀한 날씨일수록 구수한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마실 수 있는 상설 장터 식당이 그리웠다.
 
정선아리랑의 고장 정선에는 정선오일장 등 볼거리도 많고 산채 먹거리도 많은 곳이다. 하지만 양반전의 무대인 아라리촌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나름 의미가 깊은 곳이다. 특히 정성껏 이름 석 자를 넣어 현대판 양반증서를 정감 있게 만들어주는 변상근 문화관광해설사가 관광객을 반기는 아라리촌에 들러 양반증서 하나쯤 받아와도 재미난 추억이 될 듯싶다.
 
<정선 아라리촌>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애산로 37 , 입장료 어른 3000(입장료는 정선아라리촌과 정선전역에서 현금처럼 사용가능하다)
*문의 : 033-563-3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