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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차는 녹차가 아니라 그냥 “차(茶)”다

[한국문화 재발견] 전통차 이야기 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곡우(穀雨), 봄비가 내려 백 가지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날이다. 그래서 이 무렵 농가에서는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근다. 또 곡우 무렵부터는 찻잎을 따서 덖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즈음 언론들은 이를 취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죄다 “녹차”라며 보성 차밭만 취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녹차는 우리 고유의 전통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여러 차 관련 문헌을 봐도 “차(茶)”라고만 나오지 “녹차(綠茶)”는 없다. 그 까닭은 우리 전통차가 녹차와는 다를뿐더러 예전부터 그냥 차라고만 했기 때문이다.

 

   
▲ (그림 뉴스툰 제공)

 

2천 년 전통차와 일본 역수입 녹차

전통차와 녹차는 우선 품종이 다르고 가공 방법이 다르며, 우려내면 빛깔이 다르다. 먼저 전통차는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야생으로 맥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가공방법은 솥에 열을 가하면서 비비듯 하는 덖음방식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차를 우려내면 빛깔은 다갈색을 띈다.

그러나 우리 차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토착화 과정을 거치며 녹차가 되었다. 가공방법은 찐차(증제차)이고 차를 우리면 연두빛을 띈다. 그래서 녹차(綠茶)라 부르는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역으로 들어온 녹차는 주로 보성지방에 심으면서 대량생산 체제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전통차가 야생이어서 우선 양이 적은 탓에 값이 조금 비싼 것이 흠이라면 녹차는 대량생산이 가능해 비교적 싼값에 즐길 수 있어 장점이 되기는 한다.

 

녹차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전통차라고 하지 말아야

살아있는 차의 성인이라 불리는 순천 금둔사 지허스님(76)은 말한다. “녹차는 일본에서 역수입된 차입니다. 분명 전통차는 따로 있습니다. 물론 녹차를 없애자는 것도,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녹차를 전통차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 살아있는 차의 성인 금둔사 지허스님

 

지허스님은 여기에 덧붙인다. “녹차는 일본에서 개량한 야부기다종으로 뿌리가 얕고, 잎이 무성합니다. 그래서 대량생산 하는데 아주 좋을 것입니다. 어쩌면 값싼 차를 마시는데 장점이 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뿌리가 얕으니 비료를 줄 수밖에 없어서 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토종 야생차는 뿌리가 곧고 땅 위의 키보다 3~4배가 깁니다. 그래서 암반층, 석회질층에 있는 담백한 수분, 무기질을 흡수하여 겨울에 더 푸르고, 꽃이 핍니다. 그래서 녹차에 비해 우리의 전통차가 깊은 맛이 있는 것입니다.”

지허스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나고 있는 차나무는 일본 수입의 야부기다종이 85% 정도, 변종이 10% 정도이며, 토종은 5% 내에 불과하다고 한다. 순천 선암사를 비롯, 벌교의 징광사, 낙안의 금둔사, 보성의 대원사 주변에 남아 있는 것이 토종야생 차일 뿐이라는 것이다.

 

   
▲ 순천 선암사 뒤편에 펼쳐진 야생차밭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왜곡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서 녹차를 마치 우리의 전통차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이다. 녹차라고 해서 거부할 까닭은 없다. 다만 녹차는 녹차고 전통차는 전통차임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보성지방을 중심으로 퍼진 녹차를 전통차처럼 생각한다면 홍차를 들여와 많이 생산하고 소비한다고 해서 우리 전통차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일본에서 들어온 다도와 진정한 차 마시기

차생활에서 한 가지 더 짚어볼 것이 있다. 마치 엄격한 다도(茶道)를 알아야 차를 마실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다도는 원래 일본의 풍속이며 우리 것이 아니다.

 

   
▲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는 차로 맺어진 벗이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우리는 예전 죽은 조상이나 부처님께 바치는 헌다례(獻茶禮)는 있었지만 평상시의 차생활은 엄격한 모습이 아니고 그저 즐기는 것이었다. 차로 벗을 삼았던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이 차를 마실 때 무릎을 꿇고 마셨다고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엄격한 차 마시기가 전통차의 보급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